기획특집: 아시아의 MZ세대와 사회변화(1)
다산 정약용의 공정론과 MZ세대

김 호 (아시아연구소)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 사회를 부(富)와 귀(貴)의 불공정한 분배로 인해 망국의 조짐이 엿보이는 난세로 규정했다. 그의 개혁안은 온통 공정 사회를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했다. 오랫동안 이상 정치의 상징인 요순시대를 탐구했던 다산은 능력과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우야말로 성왕(聖王)들의 성공 비결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덕과 능력을 함께 갖춘 이들을 공정하게 선발하고 임무를 부여한 후 그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산이 강조했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공정한 분배, 이는 오늘날 한국의 MZ세대들이 원하는 공정에 대한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의 3대 저서

조선과 일본

임란이 끝나고 조선은 일본과의 악연을 끊기 위해 사절단(조선통신사)을 파견했다. 조선의 학자들은 일본의 학인들을 만나 이러저러한 문제를 놓고 토론했는데, 흥미롭게도 많은 조선 지식인들이 에도 일본의 봉건제를 세습제라며 비판했다. 혈족에 의한 승계는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실력 없는 자들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조선은 과거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고 이들이 여러 관직에 나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인들은 일본은 사람을 귀하게 여겨 봉건의 세습으로 대우하고 이를 통해 충성의 마음을 이어가지만, 조선인들은 능력과 업적만을 평가하므로 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하들은 쉽게 조정을 버리고 왕도 신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바꾸어버린다고 비판했다. 조선의 충성심이 희미하고 나라가 취약한 이유가 과거제 때문이라고 맞받아쳤다.

과연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어디에 달려있는가? 대대로 세습하여 대접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능력에 따라 자원을 분배하지 않아서일까? 강진에 유배갔던 정약용은 흑산도에 머물던 형님 정약전에게 편지를 보내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극구 논의를 합치한 경우가 바로 봉건에 대한 비판이었다. 동아시아 이상 정치의 모범으로 알려진 요순시대의 제도가 모두 아름답지만 봉건제는 예외라는 것이다.

삼대의 법 가운데 모든 것이 좋지만 봉건제만은 천리가 아니다. 특별히 시세가 그러했을 뿐이다. 왜 그러한가?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번 공덕(功德)이 있으면 불초한 자손이 모두 부귀를 누리니, 어찌 우리나라의 세벌(世閥)에서 사람을 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여유당집』, 서울대 규장각본)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는 봉건과 같은 세습은 천리의 자연스러운 제도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러니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점차 부와 귀의 세습이 공고해지면서 ‘봉건’의 형세를 띠자 이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식기공(自食其功)

사실 능력에 따른 대우야말로 공평하다는 생각은 오랜 시간 조선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식이었다. 한마디로 능력있는 자에게 그리고 노력하는 이에게 ‘부와 귀’가 공정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이다. 비록 조선이 신분제 사회이지만 그래도 능력 있는 자들은 과거를 통해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산은 당대 사회가 어느 하나 문제가 아닌 데가 없지만, 특히 자신의 ‘노력과 업적에 따른 공정한 분배[自食其功]’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래 생민에게 욕망이 있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가 큰 욕망이 있으니, 첫째는 부(富)이고 둘째는 귀(貴)이다. 무릇 군자의 족속은 왕의 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귀하게 되는 것이다. 소인의 족속은 왕의 들판에서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유해지는 것이다. 관리의 임명에서 마땅함[宜]을 잃으면 원망과 비방이 귀족에서 일어나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 때 고르지[周] 않으면 원망과 비방이 소민에게서 일어나는데, 두 가지 모두 족히 나라를 잃게 할 수 있다. 국가의 치란과 흥망의 원인, 그리고 민심의 향배와 거취를 묵묵히 생각해보면, 원인은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으로 성인의 말은 모두 신중한 생각과 분명한 판단의 결과이다.(『상서고훈(尙書古訓)』)

이른바 나라의 운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두 가지 자원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데 달렸다. 관직을 나누는 데 편당의 마음을 먹고 공평하지 않게 되면 군자들이 원망하고, 부의 분배가 일부에게 집중되면 소인들이 울분한다. 다산은 역사의 치란(治亂)이 모두 여기에서 결정되었다고 강조했다. 만일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다산은, 차라리 왕과 함께 이 나라가 망했으면 하고 백성들이 바라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순정치의 비결

1834년 『상서고훈』을 완성한 다산은 하늘이 도와 완성한 책이라고 자평했다. 73세의 나이에 이루어낸 대단한 업적인 만큼 감회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죽기 전에 완성할 수 있어 다행이라 했을 정도였다.

이 책을 통해 다산은 요순시대의 이상정치야말로 <능력에 기초한 업적주의>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다산의 경세론은 그동안 알려졌던 대로 ‘균분(均分)’이라기보다 ‘능력과 노력에 따른 공정한 분배’였다. 다산의 가장 급진적인 토지개혁론으로 알려진 여전제 역시 공동생산, 공동 분배가 아닌 능력에 따라 그리고 노력한 만큼 나누어 가지는 구조였다. 함께 일하지만 나누는 몫은 각자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달랐다. 그는 평생동안 이러한 생각을 바꾼 적이 없었다.

다산은 노력에 따라 <부(富)>를 분배받고, 능력에 따라 <귀(貴)>를 배분함으로써만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노력 이상의, 능력 이상의 몫을 받는다면 바로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였다. 18세기 후반 조선은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는 데도 너무 많은 재산을 소유하거나 <능력>이 없는 데도 귀한 자리를 독차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었다. 일부가 지나치게 많은 부와 귀를 갖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해를 입을 뿐이었다. 다산은 능력에 따른 ‘부와 귀의 공정한 분배’야말로 조선 후기 개혁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했다. 공동체가 공생하는 방법은 오직 ‘능력과 노력에 따른 부와 귀’의 분배에 달려 있었다.

‘생생(生生)’이란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다. 무릇 많은 이들이 함께 살려면 <자신의 노력만큼 누려(自食其功)>야 하는데, 한두 사람이 많은 사람의 재화를 모두 모아들인다면 백성들이 해를 입게 된다.(『상서고훈(尙書古訓)』)

부(富)와 귀(貴)의 공정한 분배

먼저 부의 재분배는 ‘세금과 부역’ 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가능했다. 다산은 조선 후기에 이른바 대동법으로 대표되는, 토지에 지나치게 과다한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지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세원을 파악하여 국가의 재정 수입을 늘리고 이를 통해 국방은 물론 사회복지 비용을 감당하자고 강조했다. 다산은 토지를 포함하여 주택과 가축, 어장(漁場)과 염전 등 다양한 소유물에 대한 과세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요순의 시대는 궁민(窮民)들에게는 부역과 토공(土貢)을 덜어주어 민력을 펴게 했다고 주장했다. 노력한 만큼 부를 축적하지만 가진 만큼 과세하는 방안이었다.

다산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 가혹한 과세로 비판하지만, 이는 요순의 이상정치를 제대로 몰라서 하는 무지의 소치라고 일축했다. 다산의 고증학은 경전에 대한 단순한 고증이나 실증이 아니라, 현실 개혁을 위한 밑그림이었다. 조선 후기에 빈부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는 현상이야말로 국가 몰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간주했던 만큼 다산은 노력한 만큼 가지는 대신 소유한 것에 대해 과세해야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가의 모든 부를 ‘균분’하자는 주장이 아니었다. 부민들에게 공동체의 생생 즉 공생을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 부의 편중 현상과 더불어 일부의 관직 독점은 더욱 큰 문제였다. 많은 이들이 능력이 있음에도 걸맞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들의 낙담과 한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망한 이들이 천주교 등 서학에 몰두하여 전통적인 가치에서 멀어진다는 정조의 지적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산은 혈연이나 학연, 지연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자들을 널리 뽑아 등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때 조선에도 융성한 시절이 있었다. 다산은 조선이 번성할 때는 공경대신과 관각(館閣)의 신하들 가운데 먼 변경 지역의 출신들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직 관직에 오르는 사람은 서울 출신들 뿐이었다. 능력없는 이들이 관직에 오르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거짓으로 업적을 부풀리고 있었다. 공적이 제대로 평가될 리 없었으니 나라 또한 잘 다스려질 리 만무했다. 요순정치의 핵심을 담고있는 <홍범>을 해설하면서, 다산은 재능있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 관직을 주고, 열심히 일한 만큼 인센티브를 주어야 나라가 번창한다고 강조했다. 능력이 있는데도 쓰이지 못하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상응하는 보상이 없다면, 결국 아무도 열심히 일하려 들지 않을 터였다. 그것이야말로 망국의 조짐이었다.

다산, MZ세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공적이 많은 자는 당연히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라야만 했다. 그래야 더욱 힘을 내어 일할 것이었다. 이것이 다산의 ‘공정한 보상’이요 ‘공평한 사회’였다.

이미 다산은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에 바싹 다가서 있었다. 과연 ‘능력주의를 강조한 실학자’의 생각을 노골적인 신분제보다도 더 위험하고 악의적인 주장으로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오늘날 젊은 세대의 ‘공정한 보상’에 대한 욕구 역시 다산의 생각과 그리 멀지 않다. 2021년 2월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려 있다. ‘MZ세대의 성과급 공정성 논쟁’이다.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대기업 성과급 논쟁이 뜨겁다. 기존의 일반적인 임금갈등과 양상이 달라서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대기업 직원의 성과급이 문제가 됐다는 점, 젊은 직원들이 나서 ‘많이 달라’보다 ‘투명한 산정 기준 공개’를 주장한 점이 기존과 다른 점으로 꼽힌다. 재계에선 최근 성과급 논쟁의 촉발점 중 하나가 투명성과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와의 소통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기업의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고 논쟁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동아일보 2021.2.8.)

당시 SK하이닉스에서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직원은 CEO를 포함한 2만 8천 명에게 공개 질의 성격의 e-메일을 보냈고, 이에 수 많은 직원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한마디로 MZ세대들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중시하고,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으며, 익명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하다. 입사 전에 삼성전자와 비슷하게 성과급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면 이를 지키라는 요구, 아울러 임원과 직원들의 성과급 차이가 납득할만한 기준과 평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 설명하라는 요청 등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이에 걸맞는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새로운 세대의 공정 가치와 능력주의 이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년 전의 다산은 이를 가리켜 동아시아 이상 정치의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과연 능력주의야말로 공정하다는 이 ‘오래된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고 관리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미래를 위해 풀어야 할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신(新) 경세유표’가 절실한 시점이다.

(오늘날)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병통 아닌 것이 없는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 다음이라야 그칠 것이다. 이러하니 어찌 충신과 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을 것인가.(『경세유표』)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27호 (2022년 5월 23일)

Tag:
요순정치, 정약용, 공정사회, 능력주의, 부귀(富貴), 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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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준호 (2021). “[논어고금주] 를 통해 본 다산 정약용의 절차탁마 공부론.”『한국철학논집』 71호. 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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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권일 (2021). 『한국의 능력주의』. 이데아
  • 신재용 (2021). 『공정한 보상』, 홍문사
  • 김 호 (2020). 『정조의 법치』. 휴머니스트
  • 한영우 (2013). 『과거, 출세의 사다리』. 지식산업사

저자소개

김 호(kimho@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교수
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주요 저서: 『정조의 법치』 (휴머니스트, 2020)
『100년전 살인사건-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 (휴머니스트, 2018)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책문, 2013)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일지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