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왜 전쟁을 불사했는가?
평화의 제전으로 치러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직후 감행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미국을 위시한 유럽의 주요국과 세계 여론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푸틴 지도부와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제를 발표하며 즉각 철군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비난의 초점은 이번 전쟁을 전격 결정한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과 그의 의도에 맞추어져 있다. 실제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과 대규모 피난 행렬이 국제뉴스는 물론 각종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반전 시위가 벌어진 것으로 보도된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침공을 감행한 푸틴은 히틀러와 같은 2차 대전의 학살자 혹은 과거 소비에트 공화국의 부활 또는 그 이전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던 제정 러시아 시대로 돌아가려는 허황된 꿈을 꾸는 광기어린 지도자로 묘사된다. <호모 사피엔스>와 <21세기의 교훈> 등 인류 문명사에 관한 저작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 (Yuval Harari) 교수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2차 대전 이후 지난 70년간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인류의 역사적 반전운동(反戰運動)을 후퇴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제정치와 안보 전문가들 가운데에는 이번 사태가 옛 소련과 서구사이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나토 가입을 유인 내지 방관한 미국과 나토 동맹국의 안이한 정책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국제전문 대기자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이번 전쟁의 일차적인 책임은 푸틴에게 있지만, 냉전 이후 나토의 존속을 우려하는 러시아에게 위협이 되는 확장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미국과 서방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당시 미국 고위 관료들의 말을 빌려 증언하고 있다. 프리드먼과의 인터뷰에서 냉전 시기 미국 봉쇄정책의 틀을 세운 조지 케난(George Kennan)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와 발틱 3국에 대한 나토의 동유럽 확장을 치명적 실수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이들 구소련 위성국가에 특별한 안보 이익도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위협인식과 반감만 사는 나토 확장은 미국 건국의 선조들이 무덤에서 돌아누울 만한 무책임한 정책이었다는 주장이다.
국제 안보의 중요성과 현실주의 이론을 대표하는 시카고 대학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는 앞서 두 차례 소련 위성 국가들의 나토 가입 이후 2008년 4월 구소련의 영토이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선언한 부카레스트 선언은 푸틴과 러시아에게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며, 그해 8월 조지아와의 남오세티아 전쟁이 벌어진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친서방 군사 쿠데타로 친러시아 정권이 무너지자,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전격 시행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미어샤이머는 당시 이미 우크라이나가 향후 나토에 가입을 시도한다면 본격적인 러시아의 침공이 있을 것을 예견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그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서방과 친러시아 정책을 오가며 유럽과 나토 가입으로 기울고, 이 과정에서 미국이 군사물자 및 지원단을 파견하여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훈련시키면서 러시아를 자극하였다. 미어샤이머는 2021년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세력에 대한 공세를 가속화하고, 헌법에 나토 가입을 명시하면서 결정적으로 푸틴이 전격 침공을 감행하게 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미국이나 서유럽 나토국가들에게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하기보다는 러시아를 자극하여, 오히려 공동방위에 대한 부담만 가중시키는 조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미국이 나토 가입에 명확한 선을 긋거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현실적인 판단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지속되는 경고에도 양측 모두 전쟁 가능성을 안이하게 판단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70년 유럽평화의 후퇴, 그리고 무엇보다 무고한 우크라이나 시민의 희생과 엄청난 규모의 난민사태가 발생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전쟁의 향후 전망과 파급효과
푸틴은 전쟁초기까지만 해도 2008년 조지아와 2014년 크림 침공의 경우처럼 신속한 군사점령을 통한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략을 통해 쉽게 상황이 정리되리라고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는 준비가 부족했던 러시아군의 초기 작전 실패와 졸전,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군과 정부의 예상지 못했던 강한 저항과 응집력에 의해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 나토 국가들의 강한 제재 조치와 비판, 그리고 서방의 결집력이 이어지는 부작용도 겪고 있다. 세계적인 비난 여론과 국내의 일부 반전 여론도 푸틴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포기하거나 전쟁에서 후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국경을 인접한 우크라이나가 나토 동맹에 가입하는 것을 푸틴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에,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고 본다.
한편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이 아니기에 군사적 방어책임이 없는 상태에서 핵을 가진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불사하고,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군사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러시아의 무차별 공습을 막기 위한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제 여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군 전투기와 러시아군과의 군사 충돌 위험이 있는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 설정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대신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공미사일, 대전차 미사일 등의 무기 지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최대한의 경제압박을 통해 푸틴의 전쟁 의지나 노력을 약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푸틴이 쉽게 전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공식 포기하고, 푸틴과의 외교적 타협을 하는 것이 전쟁의 참화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실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몇 차례의 협상을 통해 전쟁 종결을 시도하였으나, 나토 가입 문제 외에도 크림반도와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통해 장악한 돈바스 지역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둘러싼 타협안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사이 푸틴과 러시아 지도부, 그리고 경제 전반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경제제재가 취해지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저항과 서구의 군사 지원에 대한 요구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 초기 작전 실패와 서방의 압박에 분노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도와 주요 도시에 대해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 초토화 작전을 펼치면서 전쟁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거 1999년 푸틴 집권 초기 인구 백오십 만 명의 체첸 공화국의 반란 진압과정에서 러시아는 약 7개월간 수도 그로즈니에 대해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을 벌이면서 전쟁을 종결지은 경험이 있다. 인구 4천4백만 명의 우크라이나가 지금처럼 결사 항전을 벌일 경우, 그 기간과 피해 상황은 훨씬 규모가 커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푸틴이 시리아의 경우처럼 생화학무기나 심지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나토가 비등하는 여론의 압박에 의해 간접 지원을 넘어 보다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하게 되고, 이것이 러시아와의 전면전 위기로 전개될 수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왈트(Stephen Walt) 교수가 초기 발칸반도의 국지 분쟁이 의도치 않은 1차 세계 대전으로 번진 역사적 사례를 비유하며, 이번 전쟁이 또다시 모두가 원치 않음에도 ‘몽유병’ 환자처럼 자신도 모르게 3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될 것을 경고하는 이유이다.
한편 이번 전쟁은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넘어 유럽과 세계 경제 및 정치에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영향과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석유와 천연가스는 물론 세계 식량의 주요 공급원인 두 나라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예상된다. 이미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한 재정 확대와 공급망 차질로 몇 십년 만에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더욱 가중되어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세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밝혔다. IMF는 러시아의 심각한 경기 불황을 경고하였으며, 더불어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과 공급망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또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300만 명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동유럽은 향후 난민이 더욱 늘어나면서 사회불안과 경제적 부담이 급속히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한편 미국의 대중 압박과 미중 경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전 세계 패권 경쟁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사태는 일견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수년간 미중 전략경쟁의 여파로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공고히 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일방적인 침공으로 인해 중국에 대해서도 비판적 여론이 나타나고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유일한 강대국 지도자로 방문한 푸틴을 극진히 환영한 시진핑 주석이 올림픽 이후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는 러시아와의 밀약설이 나도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에 연이어 대중 압박을 강화한 미국에 대항하여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온 중국도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세계 여론을 피하기도 어렵다. 전통적으로 타국의 내정간섭과 주권 침해를 비판해온 중국의 원칙과도 배치된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 위협 등의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대만과 미국과의 군사협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중국에게는 대만을 함부로 무력 침공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중국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와 유럽의 돌발 사태로 미국의 대중국 압박전략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대중국 견제를 위한 외교적, 군사적 노력이 당분간은 유럽 상황에 분산되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생겼다는 점이다. 둘째,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자유 진영의 러시아 제재가 중국의 협조 없이 실질적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다양한 무역 제재와 경제 고립화 노력이 가져오는 효과를 중국의 상품과 교역이 상쇄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 경제의 생명줄인 천연가스와 석유, 혹은 농산물 수출에 대한 서방의 제제는 오히려 중국에게 중요한 에너지와 식량 공급원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파산 위기에 처한 많은 러시아의 에너지 관련 회사들을 중국이 사들일 수 있다는 보도도 있다.
셋째, 중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원칙적으로는 비판하면서도 제제에는 동참하지 않는 중립적 정책을 추구하는 상황은 중국의 대서방 혹은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만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속되고 서구의 군사 개입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외교적 타협책이 모색될 것이다. 그 경우 양자 사이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중국이 중재 역할에 나설 수도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중국에게 외교적 협상을 중재할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해법을 놓고 나토 가입 포기는 물론 중립화, 크림반도 및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 편입을 주장하는 입장과 러시아의 침공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미국과 서방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할 경우, 중국의 중재 역할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2시간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경고하면서도, 양 정상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논의한 것은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방증한다.
넷째,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서방의 비난과 제재에 직면한 푸틴과 러시아가 중국과의 전략적 협조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경우, 역시 중국의 지정학적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위해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를 비난해온 미국에게 맞서는 중·러의 밀월 관계가 강화된다면,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대서방 대항축이 형성되면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던 미국의 세계전략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이러한 움직임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는 미중 데탕트를 통해 중국과 소련 간의 관계를 이간시키고 양자에 대한 미국의 지렛대를 높인 닉슨의 전략에 정확히 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고 분석한 바가 있다. 여기에 인도 역시 러시아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들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쿼드(Quad) 등을 통해 민주동맹과 비민주 진영의 대립각을 세우려던 미국의 세계전략에 동참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도 주목된다.
다섯째, 또한 푸틴도 이미 서방의 제제를 예상하며 대규모로 보유하던 미국 달러의 외환 보유량을 줄이고, 오히려 금과 유로화, 위안화로 그 빈자리의 60퍼센트 이상을 대체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더불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푸틴을 비롯한 중국이 기존의 미국 달러에 의존하는 국제통화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본격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이미 위안화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등 자원국들에게 결제망을 넓혀온 중국에 의한 새로운 국제 결제시스템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장기적인 패권을 지탱해온 원천으로 압도적인 군사력보다도 경제 체제가 더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의 전 세계적 지배력은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달러에 기반한다. 따라서 향후 미중 경쟁의 핵심은 중국이 어떻게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지에 달려있는데, 이와 같은 도전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일부 보도처럼 미국의 전통 우방이자 국제 달러 결제의 핵심 역할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중국과의 위안화 결제를 시작한다면, 미국의 달러 패권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여기에 21세기를 좌우할 4차 산업혁명 기술 분야의 혁신과 경쟁이 결합되어, 미중 패권의 향배를 가를 경쟁이 이제 본격화될 것이다.
한반도에 미칠 영향과 한국의 고려사항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에 가질 영향과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과 중국 모두 대만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군사적 긴장이나 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더욱 원치 않을 것이다. 미중 모두 코로나 이후 경제회복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는 세계적인 경제 불안정성과 석유 등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동북아를 위시한 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과 충돌은 세계 경제를 불안과 공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양국 각각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20차 전국 공산당 대회와 같은 중요한 정치 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경제위기나 군사 충돌은 가장 원치 않는 불안 요소가 된다.
둘째, 따라서 한반도의 안정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이를 위해 남북 모두에게 양국 지도부의 외교적 노력과 협력이 강조될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북 정책도 공세적 접근보다는 외교적 노력이 강조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상을 더욱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문제는 북한과 남한 정부의 태도이다. 현재 북한이 다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정부가 어떠한 자세로 반응하는지가 한반도 상황에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물론 북한의 도발이나 핵 능력 강화에 대한 원칙적이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북한을 먼저 자극하거나 긴장을 필요 이상으로 고조시키는 군사적, 외교적 대응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넷째, 장기적 미중 경쟁의 틀 속에서 한국에 대한 미중 양국의 구애와 협조 노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정치, 경제 문제에 집중하면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에게 아시아 동맹의 협조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최근 급부상한 한국의 정치, 군사, 경제, 외교적 위상을 고려할 때 한국의 협조는 일본과 호주의 협조 못지않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국 중시 정책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중국의 경우도 당장 미국의 강력한 압박을 받는 입장에서 주변국과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최근 한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반중 정서의 부작용을 절감하면서, 과거 사드 사태 등을 통해 악화된 한국 국민의 여론을 돌리려는 노력이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새로이 시도될 수 있다. 강대국 지정학에 휩쓸린 우크라이나 사태를 교훈삼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인정하고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는 신중하고 균형 잡힌 외교가 한국의 장기적 국익을 위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