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2년 아시아 정세전망(9)
미얀마 사태로 나타난 아세안 민주주의 취약성과 점진적 발전 방향

최경희 (아시아연구소)

2021년 2월 1일 발생한 미얀마 군부쿠데타는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울했던 세계에게 다시 한번 충격으로 와닿았다. 2011년부터 시작된 미얀마의 자유화와 민주화는 세계를 향해 아직 ‘문’을 닫고 있는 국가들에게 좋은 사례가 되어서 기대감이 높게 회자되곤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다준 국내외적 위기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미얀마 군부쿠데타로 인해 아세안 내 회원국별 민주주의의 취약성 그리고 아세안 제도 내의 민주주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얀마 군부쿠데타는 태국에 대한 모방효과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시스템 한계를 보여주었고, 미얀마 상황 해결의 계속적 지연은 아세안의 건설적 개입을 통한 실효적인 문제해결을 창출해 낼 수 없는 아세안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리더십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는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점진적인 변화와 회복을 조심스럽게 기대해보고자 한다.

민주주의 위기 속 민주주의 정상회의출발, 기대와 우려

미국 바이든(Joe Biden) 정부는 2021년 12월 9일에서 10일 이틀 동안 ‘민주주의 정상회의(The Summit for Democracy)’ 비대면 회의를 개최했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을 포함하여 110개국을 초대했다. 지난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와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 바이든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서 ‘선거’를 통한 행동을 보여주기를 촉구했고, 전 세계 민주주의 위기 극복을 위한 약속도 취했다. 취임 이후 국내외적으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행보를 보였고, 취임 1주년을 기념하여 본 정상회의를 진행했다.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수호, 부패극복, 인권존중 증진 등 세 가지가 핵심 의제였다. 이 정상회의는 바이든 정부가 세계를 향해 전달하는 메시지이자, 미국 내부를 향한 경각심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정부는 취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악화되는 경제사정 및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지며 그리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또한 미국 민주주의를 수렁으로 몰고 갔던 트럼프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본 회의에 연설자로 나선 사람들은 글로벌 민주주의 향해 경종을 울리는 발언을 이어갔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네이선 로(Nathan Law)는 “홍콩이 경찰국가로 전략했다”며, “여러분 중 일부는 중국 시장을 잃고 싶지 않을 것이며, 일부는 우리의 민주적 가치에 대한 위협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일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화나게 하는 것을 우려한다”며 “그것이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라고 지적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인류가 민주주의와 함께 번영을 이뤘지만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가짜뉴스, 혐오와 증오 등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폐막 연설에서 “독재는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결코 꺼뜨릴 수 없다”라고 강조하고, “민주주의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반부패 활동가와 인권 옹호자의 매일의 작은 활동에도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과연 이러한 방식이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좋은 선택이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본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110개국 중에 아시아에서는 한국,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몽골, 동티모르 등이 참여하였다. 이 중에서 아세안 회원국에서 초청받은 국가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이다. 누가 초대되고 누가 초대받지 못하는가? 이것이 ‘민주주의 위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잃어버린’ 또는 상대적으로 취약해진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예상한 그대로이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며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데 이어 이번 정상회의까지 열자, 결국 중국은 이번 정상회의로 인해 세계가 더욱더 균열될 것이라고 강력한 비난을 했다. 즉, “미국이 전형적인 냉전적 사고 속에 편 가르기를 한다”라고 언급했다. 아세안의 경우, 역내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의 균형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싱가포르도 ‘초대받지’ 않은 불쾌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에 대한 균형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상황이다.

세계 민주주의 위기의 심각성

우리 모두가 현재의 상황이 ‘민주주의 위기’라는데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위협하고 있는 현재의’ 글로벌적 위기상황과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위협해 왔던 과거의’ 상황에 대한 경각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전자에 해당되는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오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제약적 요소와 상황들, 원활한 글로벌 백신 공급을 막고 있는 구조적 한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 위기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질 악화 등 2년 이상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일상적인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나타났던 세계 민주주의 위기 증폭 현상이다. 일명 ‘제3의 민주화 물결’의 여파로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이행과 확산의 과정에서 탄생한 ‘민주주의 저널(Journal of Democracy)’은 2020년 창간 30주년 맞는 기념호에서 ‘세계 민주주의 위기’를 대주제로 다루었다. 2006년부터 민주주의 확산의 역전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2015년 뚜렷한 민주주의 역전현상의 연장에서 2016년 브라질과 한국 민주주의 위기, 2016·17 한국의 촛불시위에 나타난 민주주의 요구,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태국 민주화 시위, 이란 민주화 시위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각종 위기적 증후들 그리고 올해 2021년 2월에 있었던 미얀마 군부 쿠데타 등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저널’이 주목하는 세계 민주주의 위기 중 한 요소는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자유민주주의 위기’ 자체이며, 또 다른 요소는 ‘권위주의의 반격’으로 표현되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권위주의의 영향력 확대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두 요소의 상호작용이다. 흔히 오늘날 전 세계 민주주의 위기를 후자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즉,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의 영향력 증대이고, 그중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가장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 중국만의 문제인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증가되고 있는 가장 단적인 부분은 ‘권위주의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 100년의 성과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난에 허덕인’ 중국 인민대중을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먹고 살만한’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을 전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국의 경제발전모델은 길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짧게는 탈냉전 이후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정한 많은 나라들에게 유혹적인 하나의 길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자유민주주의 모델로서 영향력을 보여주는 유럽과 미국이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등 이웃 국가들과 시민들에게 기댈만한 언덕이 되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과 해법처럼 매우 ‘글로벌 구조’ 안에서 작동되고 있다. 즉,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세계 모두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자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 심화시키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개별국가만의 상황만이 아니라 글로벌 환경과 조건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된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의 선명성보다 더 복잡한 문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아세안의 해법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미얀마 군부를 탓마도(Tatmadaw)로 부른다. 탓마도는 2020년 실시된 대선에서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을 비롯하여 민주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 일부 고위급 지도자들을 구금하는 등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하였다.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을 중심으로 한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에 반대하는 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미얀마의 중앙권력을 틀어쥐었다. 이 과정에서 1천여 명의 시위대를 사살하고, NLD의 지도자인 수지 국가고문과 대통령 윈(U Win Myint)을 포함한 5천 명 이상의 정치범들을 구속하였다. 미얀마 군부는 이미 계획된 수지의 재판을 강행하고, 폭력적인 진압을 계속하고 있다. 2021년 12월 6일 미얀마 군사정권은 수지 국가고문에게 선동 및 코로나19 방역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법정에서 얼굴도 볼 수 없는 수지 여사는 구금상태로 비인권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치사범지원협회(AAPP)는 2021년 2월 이후 1만 600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시위에서 최소 1,303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미얀마 시민들은 즉각적으로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을 취했다.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는 군부에 맞서 만들어진 정부로서 2020년 11월 총선에서 선출된 NLD 국회의원 그룹(Committee Representing Pyidaungsu Hlutta, CRPH) 및 소수민족 대표로 구성되었다. 지금 현재로서는 NUG·시민군과 미얀마 군부 사이에 전개되는 물리적 충돌과 대치상태가 계속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신생 독립국가’로서 미얀마에서 2011년 이후 전개된 민주화의 구조적 한계가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해 증폭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버마종족이라는 주류종족 중심의 권력구조의 한계이다.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초이자 가장 상징적인 결정들이 전개되고 있다. CRPH는 2008년 헌법을 폐지하고, 과거 소수종족 무장단체에 대한 테러조직 지명을 해제하였으며 이들을 NUG의 구성원으로서 임명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군부 쿠데타 이전에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제되었던 소수종족들이 NUG 안에서 대표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CRPH/NUG와 민주적 야당에 속한 다양한 조직, 다양한 소수 종족과 무장한 소수 종족 단체들은 ‘국가통합자문위원회(National Unity Consultative Council)’에 모여서 ‘연방 민주주의 헌장(Federal Democracy Charter)’을 만들었다. 이 헌장은 연방제도의 적용을 통한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향한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 미얀마 사태 해결의 핵심은 미얀마 군부가 ‘연방 민주주의 헌장’에 동의하여 미얀마 민주주의 지지 세력과 어떤 타협의 지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

<그림> 미얀마 사태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과 아세안 민주주의의 취약성

지금까지의 미얀마 사태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 과정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얀마 군부세력과 CRPH/NUG 세력으로 대표되는 연방제에 기초한 민주주의 지지세력 사이의 대화 재개, 타협 과정, 민주주의 복원력과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역할이 여전히 아세안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미얀마 사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응해왔다. 첫째, 미얀마 사태의 변곡점인 ‘2월 28일 피의 일요일’이 있은 3월 2일에서야 ‘미얀마 사태에 대한 우려’ 입장을 공식적으로 처음 표명하였다. 그러나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계속 받고 있다. 둘째, 4월 24일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합의사항 5가지를 도출하였다. 일단 이 과정에서 미얀마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이 참석하였지만, 미얀마를 대표해서 그를 참석시킨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아세안의 분명한 입장이다. ‘타협을 통합 합의’를 이끌고자 하는 아세안 방식이 작동한 것이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10개국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이 도달한 합의 사항은 1) 미얀마 당국의 즉각적인 폭력 중단 2) 평화적 해결책을 위한 건설적 대화 3) 아세안 의장과 사무총장의 대화 중재 4) 인도적 지원 제공 5) 특사와 대표단의 미얀마 방문 등이다. 하지만 흘라잉이 미얀마로 돌아가서 ‘즉각적인 폭력 중단’을 실시되지 않으므로, 5개 합의사항에 대해 첫 번째 사항이 무력화되었다. 셋째, 아세안 차원에서는 그 이후에라도 ‘미얀마 사태에 대한 아세안 특사(special envoy to Myanmar)’를 긴급 파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8월 초에서야 아세안 특사로 브루나이 외교부장관 에리완(Dato Erywan Pehin Yusof) 인선되었다. 에리완 특별대사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데까지도 해프닝이 있었다. 미얀마 군부의 입장은 특사로 군부 출신인 태국 정부 인사가 되길 바라는 기대도 있었다. 에리완 특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심각해진 미얀마 보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비인도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지원 그리고 미얀마 군부세력과 NUG 사이에 대화를 재개하여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2021년 하반기 아세안 정상회의에도 이 역할은 재확인되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확인된 아세안 민주주의의 취약성

아세안 회원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취약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쿠데타로 아세안 내부의 민주주의 취약성이 확실히 드러났으며, 그 과정을 해결하는 아세안 대응능력의 한계도 지적되어왔다.

첫째,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아세안 사회에서 발휘되고 있는 군부의 역할과 영향력을 뒤돌아보게 된다. 대륙부 동남아국가 중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태국에서 여전히 ‘군부’가 정치·경제적 중심세력이다. 미얀마 군사쿠데타 초기에도 회원국의 강력한 규탄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도 태국의 영향이 크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불만족 표시, 쿠데타를 통한 권력 찬탈은 태국이 먼저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태국의 정치는 총선 결과에 대한 수용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때, 그해 5월 20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20번째 쿠데타로 권력을 집권한 사람이 현 총리 쁘라윳(Prayut Chan-o-cha) 육군사령관이다. 군부는 국가평화질서위원회(NCPO)를 만들어서 권력을 집중하였고, 임시헌법을 통과시켰으며, 쁘라윳 사령관이 총리가 되었다. NCPO는 헌법초안위원회에 새로운 헌법을 요구했고, 군부의 정치개입을 정당화하는 법을 다시 만들어 2016년 8월 7일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헌법은 총선에 의해 민간에 권력을 이양한 후 5년까지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명문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푸미폰 국왕이 2016년 10월에 서거하고, 애도의 1년을 보낸 후 2019년 5월 와치라롱껀 국왕 대관식도 치러졌다. 입헌군주제 태국에서 새로운 국왕의 탄생은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일정의 하나인데, 그것에 앞서 3월 24일에 총선도 치러졌다. 쁘라윳 총리와 군부는 팔랑 쁘라차랏당(Palang phracharat)을 창당해서 제1당이 되었다. 선거 결과에 불만족한 군부세력이 쿠데타라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여 권력을 찬탈하는 메커니즘이 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국 상황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태국 내부의 강력한 민주주의 지지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태국도 제3의 민주화 물결 과정인 1992년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1997년 민주적 헌법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태국 MZ 세대는 부패한 군사정부에 대한 비판, 진정한 입헌군주제 개혁을 통한 국민주권 회복 및 민주주의 요구를 통해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활동을 보여주곤 한다.

둘째, 아세안 내부의 제도적 한계가 지적된다. 아세안 헌장에는 정부 간(inter-governmental) 조직인 아세안공동체가 ‘법인격체’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면서 ‘법의 지배’에 기초한다고 원칙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법의 지배’가 훼손되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로 법의 지배로 복귀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현재 아세안 헌장에는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미주동맹(OAS), 아프리카연합(AU), 아랍연맹(AL), 유럽연합(EU)과 달리 아세안 헌장에는 아세안 헌장의 내용을 준수하지 않고 이를 심각하게 위반할 시 회원국 지위를 중단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발 이후 아세안 고위급 회의를 작동시키면서 논의를 진행시켰지만, 어떤 권고도 어떤 성명서에 대해서도 말을 듣지 않는 미얀마 군부에게 어떤 실효적인 제제 카드를 준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전통적으로 아세안은 아세안 역외 국가들이 역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필자는 아세안의 이러한 태도와 입장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한 발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은 역내 불법적인 상황, 비합법적인 폭력 상태에 대해서 실효적인 역내 방법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효적인 방법은 ‘내정불간섭(Non-interference)’이란 기초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 1997년 아세안의 미얀마 가입 때부터 미얀마는 아세안에게 골칫거리였다. 즉, 미얀마 군사정부의 비민주성과 억압성은 아세안에게 큰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세안이 이러한 미얀마 정부를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 방식은 미얀마에 대한 아세안의 ‘건설적 개입(Constructive Engagement)’ 방식으로 설명되곤 한다. 지금의 미얀마 사태 해결도 아세안 의장, 사무총장 그리고 특사를 통해 미얀마의 두 세력 간의 대화를 시도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건설적 개입’ 방식을 통한 전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질적인 효과성이다. ‘건설적 개입’을 하고 있다는 수사가 아니라 ‘원하는 목적’과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아세안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아세안 회원국의 전반적인 민주주의 수준의 취약성이 미얀마 사태 해결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측정하는 2020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 따르면, 아세안의 어떤 국가들도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에 속하지 않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에 속한 국가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순이다. 또한, ‘혼합체제(hybrid regime)’에 속한 국가는 없고, ‘권위주의(authoritarian)’에 속한 국가는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브루나이 등이다. 2020년 민주주의 지수 점수로 보았을 때, 1위 노르웨이의 9.81점을 기준으로 말레이시아 7.19, 필리핀 6.56, 인도네시아 6.30, 태국 6.04 싱가포르 6.01, 캄보디아 3.10, 미얀마 3.04, 베트남 2.94, 라오스 1.77 순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대받은 국가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이다. 그러나 이번 미얀마 사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 국가는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아세안이 정부 간 협력체로 구성된 조직이기 때문에, ‘정부 간’을 움직여 내는 아세안 내부의 리더십은 매우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싱가포르의 이광요 등 역내 리더들이 중요한 국면마다 해법을 제시하면서 위기를 돌파해 왔다고 평가된다. 흔히 아세안 내부에서 경제적 영역의 리더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사회문화적 영역에서는 필리핀이 그리고 정치안보적 영역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주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아세안의 출범, 아세안공동체 건설 흐름 중에서 정치안보공동체 구상과 제안, 남중국해 이슈에 대한 아세안 정상 합의 도출을 위한 셔틀외교, 그리고 최근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AOIP)’ 마련 등에서 인도네시아는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미얀마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큰 싱가포르와 태국이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인도네시아는 미얀마 위기를 아세안의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인식했고, 적극적인 노력을 모색했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아세안의 해결을 위해서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누구보다도 큰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왜 그러했을까? 현 조코위 정부의 외교력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카르타 글로브(Jakarta Globe) 12월 6일 자 보도에 따르면, 조코위 정부의 지지율은 72%에 달한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매우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코위 정부는 외교적 능력과 영향력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평가받는다. 이렇게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합의를 이끌어 낼 만한 리더십이 있는 국가가 현재로서는 부재하다는 점이 아세안의 ‘건설적 개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장 취약한 부분인 것이다. 즉, 민주주의 수준이 비슷비슷한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 어느 국가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정 불간섭’과 ‘건설적 개입’ 그 사이에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역내 정치를 이끌어 갈 만한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그 리더십에는 아세안 사무총장까지를 포함할 수 있다. 역대 아세안 사무총장에서 탁월한 리더십의 사례로는 필리핀의 세베리노(Rodolfo C. Severino), 태국의 피츠완(Surin Pitsuwan)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미얀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역내 탁월한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은 많은 아쉬움을 만들어낸다.

민주주의 위기극복을 위해서 극단주의와 이분법적 선택의 늪에 빠지지 않는 지혜

2022년에도 미얀마 사태는 생각보다 더디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은 미얀마 사태로 인해 역내 회원국 간 균열이 생기는 것을 훨씬 더 우려하고 있을 수 있다. 아세안이 이러한 환경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Yusof Ishak Institute) 매해 발표되는 조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아세안이 작년과 올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인해 아세안 내부에 균열이 작동되어 지역협력체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아세안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세안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갈등과 긴장, 무력충돌과 전쟁 등으로 사회발전의 동력 자체가 훼손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사회발전 원동력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증진과 경험확대로 이어지는 점진적 과정으로서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보인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12호 (2022년 1월 27일)

Tag:
민주주의위기, 아세안민주주의, 미얀마사태, 내정불간섭, 건설적개입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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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최경희(kalli@snu.ac.kr)

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주아세안대표부 선임연구원

 

저서와 논문

『아시아의 정치: 정치체제와 지역성』 (편저), (씨아이알출판, 2021)
“인도네시아 ‘마카시드’ 이슬람경제 추구: 자캇과 자캇노믹스 실천,” 『동남아시아연구』. 31권 4호. (2021).
“ ‘지역’으로서의 ‘동아시아’: 메가아시아적 접근의 함의” (공저), 『아시아리뷰』. 11권 2호. (2021).
“지정학적 중간국 인도네시아 외교전략: 세 번의 지정학적 단층대 충돌과 선택,” 『국가전략』. 27권 3호. (2021).
“민주주의 질 연구: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비교민주주의연구』. 16권 1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