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개최와 새 지도부 출범
2022년은 한국과 중국 모두에게 ‘정치의 해’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3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고, 5월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예정이다. 중국에서는 10월 무렵에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개최되고, 여기서 향후 5년 또는 1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그런데 같은 ‘정치의 해’라고 해도 한국과 중국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될지 결정된 바가 없고, 정권교체 여부도 불확실하다. 반면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다시 선출됨으로써 국가 주석으로 계속 집권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마치 2021년 베트남공산당 13차 당대회에서 응우옌 푸 쫑(Nguyen Phu Trong) 서기장이 이 직위에 재취임하면서 권력이 연장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정치의 해’는 특별히 다른 내용이 없는 맥 빠진 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시진핑 권력 연장의 주도면밀한 준비 과정
시진핑 총서기의 권력 연임 결정은 오랜 기간 주도면밀한 준비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첫째, 시진핑 정부는 2013년 출범 직후부터 ‘제2의 개혁’을 기치로 전 분야의 전면적 개혁을 주창했다. 동시에 개혁을 이끌어갈 많은 영도소조(領導小組)를 신설했다. 현재 공산당 중앙에는 최소 36개의 영도소조가 있고, 시진핑은 10개의 영도소조 조장을 맡음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감투(title)’를 쓴 총서기(총서기, 국가 주석, 중앙군위 주석, 연합작전지휘센터 총지휘 포함 총 14개 겸임)가 되었다. 이와 함께 개혁위원회 등 주요 영도소조가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역할을 일부 대체하는 ‘영도소조 정치’가 등장했다. 시진핑 정부는 이와 같은 개혁에 따르지 않는 반대 세력의 저항을 물리치기 위해 부패 척결 운동과 정풍운동을 집권 초기부터 강력하게 추진했다.
둘째, 2015년 12월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전례 없는 인민해방군 개혁을 추진하였다. 간단히 말해, 이는 소련 모델에 근거한 군사 체계를 미국 모델에 근거한 새로운 체계로 바꾸는 획기적인 개혁이다. 장쩌민 총서기도 2001년에 이를 계획했다가 군(특히 육군)의 저항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시진핑이 이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중앙군위 주석 연임이 거의 확실해졌다. 중앙군위 주석은 연령 제한이나 임기 제한이 없어 얼마든지 연임할 수 있다. 게다가 장쩌민도 이 직위에 세 번 취임한 선례가 있기에 시진핑의 연임에 대한 정치 엘리트의 반감도 크지 않다. 특히 군사 개혁은 행정개혁이나 경제개혁과는 달리 한 번 시작하면서 끝을 보아야 하는 중요한 임무로, 현재 중국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지도자는 시진핑밖에 없다.
셋째, 2017년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는 차기 후계자 인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소위 ‘6세대 지도자(1960년대 출생자)’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아무도 진입하지 않음으로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반드시 권력을 이양해야 할 의무가 사라졌다. 이는 시진핑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총서기에 세 번 연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조치였다. 물론 ‘제6세대 지도자’ 중에서 정치국원은 세 명이 있다. 국무원 부총리 후춘화(胡春華: 1963년 출생), 공산당 중앙 판공청 주임 딩쉐샹(丁薛祥: 1962년 출생), 충칭시 당서기 천민얼(陳敏爾: 1960년 출생)이 그들이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이들 중에서 총서기와 총리를 선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넷째, 2018년 3월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1차 연례회의(例會)에서 <헌법>이 개정되면서 국가 주석의 임기 제한 규정이 폐지되었다. 명분은 ‘삼위일체(三位一體)’ 규범의 완성이다. 즉 공산당 총서기, 국가 주석, 중앙군위 주석은 한 명이 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세 직위의 임기 규정을 통일해야 하는데, 국가 주석만 임기 제한 규정이 있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시진핑이 국가 주석에 세 번 연속으로 취임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닦아졌다. 사실 국가 주석은 실권이 없는 ‘명예직’인데, 시진핑이 국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면서 개헌을 단행한 이유는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려면 이 직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산당 총서기 직함으로 유엔(UN) 총회에서 연설하거나 한국을 방문한다면 체면이 서겠는가?
다섯째, 한동안 주춤했던 시진핑 개인 숭배가 2019년에 들어 다시 강화되었다. 이는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의 권력 연임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물론 명분은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활동을 전당적으로 전개하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2019년 1월 공산당 중앙이 하달한 <당의 정치건설 강화 의견(意見)>과, 같은 해 6월에 하달한 <시진핑 사상 학습 요강 통지(通知)>는 이를 잘 보여준다. 앞의 <의견>에서는 ‘시진핑 총서기의 당 중앙 및 전당 핵심(核心) 지위’의 굳건한 수호, 뒤의 <통지>는 ‘시진핑 사상’으로 전 당원과 조직을 무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섯째, 이런 여세를 몰아 2021년 11월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에서 「공산당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 결의」(‘3차 역사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 내용을 보면,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직에 세 번째 연임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시진핑의 권력 연임과 관련하여 ‘3차 역사 결의’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3차 역사 결의’는 시진핑의 권력 연임이 왜 필요하고 타당한지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다. 둘째,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3차 역사 결의’가 당내 절차를 통해 확정됨으로써 시진핑의 권력 연임을 공식화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설사 시진핑의 권력 연임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당의 공식 결정으로 확정된 이상 그것을 저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차 역사 결의’의 하이라이트는 시진핑과 ‘시진핑 사상’을 확립하는,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시진핑은 “신시대(新時代)와 당 및 국가사업의 발전과 관련된 중대한 이론 및 실천 문제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과학적으로 판단하여, 신시대에는 어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견지 및 발전시키고, 어떤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어떻게 건설할지”를 제시한 “시진핑 사상의 주요한 창립자다.” 또한 ‘시진핑 사상’은 “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이자 21세기 마르크스주의며, 중화 문화와 중국 정신의 시대정화(時代精華)로,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실현한 새로운 비약(飛躍)”이다. 따라서 전당은 첫째, 시진핑의 당 중앙 핵심 및 전당의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둘째, ‘시진핑 사상’의 지도 지위를 확립해야 한다. ‘두 개의 확립’을 견지하는 일은 “전당과 전국 각 민족 인민의 공통 염원의 반영으로, 신시대 당 및 국가사업의 발전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추진하는 데에 결정적인 의의”가 있다. 시진핑과 ‘시진핑 사상’이 이처럼 위대하고, 전 당원과 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을 총서기로 다시 선출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겠는가? 이것이 ‘3차 역사 결의’가 주장하는 바이다.
<그림> 마오쩌둥·덩샤오핑 반열에 오르려는 시진핑의 행보
권력승계의 ‘불확실성’의 해소와 정책 연속성 확보
이를 종합하면, 시진핑은 2022년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위 주석, 2023년 봄 개최 예정인 14기 전국인대 1차 회의에서 국가 주석에 세 번째로 취임할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승계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권력 연임이 공산당에게 반드시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권력승계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승계 문제는 노선투쟁과 맞물리면서 격렬한 권력투쟁과 공산당의 분열을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이제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1년 앞두고 공식 절차와 과정을 통해 권력승계에 대해 통치 엘리트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그것을 당의 결정으로 확정함으로써 정치적 혼란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또한 시진핑의 권력 연임이 확정됨으로써 정책의 연속성이 확보되었다. 즉 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에도 현행 정책은 계속될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이후 ‘공산당 전면 영도’ 강화를 내세우면서 공산당으로의 권력 집중과 공산당 중심의 국가통치를 실행했다. 공산당 총서기와 지방 당서기의 권한 강화, 영도소조 증설과 ‘영도소조 정치,’ 공산당-국가/공산당-기업/공산당-사회 간의 관계에서 공산당의 권한 강화, 중앙-지방 관계에서 중앙의 권한 강화, 사상과 언론 통제의 강화, 강력한 반부패 정책과 당 기율의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책은 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경제정책과 대외정책도 마찬가지다. 경제정책은 2021년 3월에 개최된 13기 전국인대 4차 회의에서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14차 5개년 계획(2021-25년)」이 통과되면서 확정되었다. 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에도 해당 계획은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대외정책, 특히 외교 안보 정책도 이전 정책적 기조가 유지될 것이다. 사실 대외정책은 국내 정책과는 달리 당대회 같은 정치행사가 있다고 해서 변경되지는 않는다. 국제 정세나 미국의 대중국 정책 등이 공산당의 정치행사에 맞추어 변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국 엘리트 정치에 던지는 무거운 도전과제
그러나 시진핑의 권력 연임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권력승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지난 30년 동안에 없었던 일로, 중국 엘리트 정치에 무거운 도전 과제를 안길 것이다. 덩샤오핑 이후에도 공산당이 정치안정을 유지하면서 개혁 개방에 매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권력승계를 집단지도 체제를 통해 원만히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는 이런 전통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 엘리트 정치에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것이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시진핑이 권력을 연임한다고 해서 ‘완전히 승리했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이루어질 인사, 예를 들어,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파벌 분포, 국무원·전국인대·전국정협 등 국가기관의 직위 안배를 살펴보아야 한다. 역대 경험을 보면, 인사는 파벌 간 협의와 타협을 통해 결정되고, 그 결과 집권 파벌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고, 경쟁 파벌이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시진핑이 총서기에 세 번째로 취임한다고 해서 엘리트 정치가 집단지도에서 일인 지배로 곧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엘리트 정치체제는 권력원(權力源)과 권력 집중도, 권력 구성과 행사, 지도자 간의 권력관계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총서기 연임이 확정될 경우는 ‘집권형’ 집단지도가 더욱 확고히 되고, 상황과 조건이 변화하면 그것은 다시 ‘협의형’ 일인 지배로 변화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상황과 조건의 변화’는 공산당 중앙 주석 직위의 부활과 최고 지도자에 대한 ‘최후 결정권’의 부여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