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과학기술 경쟁력의 현황과 전망 (4)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향한 중국의 과학기술: 명암 속 기회와 과제

은종학 (국민대학교)

중국의 R&D 집중도는 EU 회원국 평균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15년에 걸친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2006~2020년)’의 결실이 컸다. 크게 팽창한 국가 총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국은 ‘신형 거국체제’를 가동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체제의 유연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실험도 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과 견제 속에 위기도 커졌지만, 시진핑의 중국은 과학기술 분야의 진전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 앞에 놓인 진정한 도전은 사회·경제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보전하는 ‘슘페터리안 챌린지(Schumpeterian Challenge)’이다.

EU를 추월한 중국의 R&D 집중도

2020년 중국의 연구개발(R&D) 지출총액은 자국 GDP의 2.4%에 달했다. ‘지식기반경제(Knowledge-based Economy)’에 얼마나 다가섰는지를 측정하는 ‘R&D 집중도’ 지표는 1%대에 올라서기만 해도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새롭게 부상하는 과학 대국이라는 인도도 2020년에 0.65% 수준이었다. 현재 연구개발에 있어서 중국의 높은 수위(2.4%)는 선진국이 다수를 차지하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평균 수준도 넘어서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과학기술 역량 강화에 재차 집중하고 그 성과를 쌓아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2006~2020년)’을 통해서다. 그 시작점인 2006년은, 시장 자유와 분권을 확대해온 종전의 개혁개방 정책을 인정받아 중국이 WTO에 가입(2001년)하고 다시 5년의 경과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그 시점부터 중국은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목표로 중장기에 걸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 이 기간에 중국의 R&D 집중도는 1%p 이상 가파르게 상승했다. 해당 기간 중국의 GDP 성장률이 주요국 중에서 가장 빨랐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그러한 R&D 집중도 상승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여전히 중국은 짝퉁과 모방으로 손가락질을 받지만, 돌이켜보면 개발도상국 단계의 일본도, 한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기 뒤에 유의미한 추격자가 나타나 손가락질의 새로운 대상이 되어줄 때 비로소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뒤에는 아직 그런 유의미한 후발 추격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은 앞으로도 한동안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고 있겠지만, 그 속에서 커가는 중국의 역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GII)’라는 것이 있다. 2021년 GII 기준, 한국은 세계 132개국 중 5위로, 12위를 기록한 중국(인도는 46위)에 우위를 지켰다. 80여 가지의 계측치를 종합하여 평가하는 WIPO의 GII는 신뢰할 만한 것이지만, 유념할 것은 많은 계측치(예컨대, 인구대비 연구자 수, 취업자 중 지식집약 근로자 비중 등)가 ‘국가 총량’이 아닌 ‘국민 평균’의 잣대라는 점이다. 즉, 해당 국가 국민의 평균적 발전 수준과 그를 뒷받침하는 세련된 제도의 품질을 보여주는 지표다. 3위인 미국 위에 스위스, 스웨덴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그런데 특히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는 ‘국가 총량’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하나의 획기적 성과가 국내에 광범위하게 확산·응용될 수 있기 때문일 뿐 아니라, 과학기술에 기초한 국력을 국가 간 비교하면서 인구가 적은 나라에 더 큰 수를 곱해 국력을 상향보정해 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신형 거국체제와 신형 연구개발기구

R&D 지출총액 기준으로 중국은 한국의 5배, 대졸 인재 기준으로는 한국의 20배가 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런 장점을 활용하여 최근 중국은 ‘신형 거국체제(新型擧國體制)’의 가동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의 다양한 물적·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체계적으로 배치·운용하는 체제를 말한다.

한국보다 늦게 고속철도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현재는 전 세계 고속철도 총연장의 2/3 이상을 차지하며 중국 내 인구 50만 명 이상의 도시를 모두 고속철도로 이은 것이 대표적 성과라 할 수 있다. 그에 국책 연구기관과 다수의 대학, 대형 국유기업(남차, 북차 등) 및 민영기업들이 국가의 지휘하에 호흡을 맞췄다. 2020년 6월, 중국 자체의 위성항법 시스템 ‘베이더우(北斗, Beidou)’는 55번째의 시도 끝에 완성되었다. 이는 미국의 기존 GPS 시스템보다 기술적으로 앞선 것으로 평가되며 신형 거국체제를 통해 이뤄진 성과로 자리매김했다. 효능에 대한 의구심이 아직 가시지는 않았지만, 중국은 (한국도 하지 못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자국 백신(Sinovac, Sinopharm, Cansino) 개발·대량생산을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하는 과학기술 역량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더불어 중국은 국책 연구기관을 유연화하고 산학 연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도 벌이고 있다. ‘선전 선진기술연구원은 ‘신형 연구개발기구’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구, 교육, 자본조달, 산업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산하에 부문별(반도체, 생물의약, 컴퓨터 및 디지털 공정, 뇌인지 및 뇌 질환) 기술 연구소와 더불어 관련 단과대학과 창업스쿨을 건립하고, 벤처투자기금을 설립하여 민간 자본조달 창구를 마련하고, 4곳의 산업화 육성 기지를 조성·운영하고 있다. 선전 선진기술연구원은 인근의 하이테크 기업, 연구소, 대학과 협력 연구 및 연구 성과의 산업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의 압박과 위기 속의 진전

이상과 같은 중국 과학기술체제의 양적 팽창과 질적 개선은 최근 미국 등 자유주의권 국가들의 강력한 견제를 불러왔다. 2018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명의로 발표된 보고서, 『중국의 기술이전, 지식재산권, 혁신에 관한 법, 정책, 관행에 대한 조사 결과』가 공개된 직후,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였다. 당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이 진행돼온 중국에 대한 인식과 견제가 불충분했다며 이전 오바마 행정부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세계 최다 PCT(특허협력조약) 특허출원 기업이자 중국 최고의 기술기업이라 할 수 있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华为)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가했고, 중국의 대표 유니콘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영상 큐레이팅 기업 틱톡(바이트댄스)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했다. 안면인식, 음성인식 등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관련 중국의 기술기업 다수에 대한 거래정지도 실시했다. 무엇보다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을 가로막음으로써 중국 산업을 광범위하게 옥죄었다. USTR의 보고서는 오랫동안 묵인되어온 개발도상국의 추격경로라 할 수 있는 ‘기술의 해외도입-소화-흡수-재혁신’, 이른바 ‘IDAR 접근법(Introduce – Digest – Absorb – Re-innovate Approach)’을 중국에 대해서는 용인할 수 없다고도 밝혔다. 중국이 미국 내 자국 유학생 및 중국계 과학기술자들과 형성한 과학기술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억압도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면서 중국의 미래에 먹구름도 짙어졌다.

하지만 중국의 과학기술 성과와 전망이 이로 인해 급전직하하리라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과학기술 진보의 성장점에 있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고성능 컴퓨팅, 안면·음성인식, 인터넷 플랫폼 등은 중국의 권위주의적 체제에 은근히 잘 부합하는 특성이 있다. 본질적으로 ‘빅 브라더(Big Brother)’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바가 있고, 계산가능성(Computability)을 높여 계획경제를 뒷받침하는 측면도 있다. 인터넷 플랫폼은 자연 독점(Natural Monopoly) 성향을 갖고 있어 결국 살아남는 소수의 대형 기업에 대해 중국 당국이 원하는 사회적 혹은 국가적 통제를 가하기도 쉽다. 이런 기술의 속성은 중국으로 하여금 해당 영역에서 남보다 큰 적극성과 빠른 진척을 보이게도 한다.

과학 대국화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추구

중국은 광범위한 과학연구 분야에서 기초 역량을 쌓아 가고 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중국은 한국과 매우 유사한 과학연구 포트폴리오를 가져왔는데 이젠 한국을 규모와 범위에서 압도하고 있다. <그림 1>은 과학기술 분야 국제학술지라 할 수 있는 SCIE(Science Citation Index – Expanded) 등재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을 저자 소속 기관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국가별 분류한 것이다.

<그림> SCIE 등재 학술지에 실린 과학기술 논문의 국가별 분포: 중국의 미국 추격 및 근접
자료: Web of Science (WOS)로부터 저자 계산. 기존의 WOS 데이터상에서는 중국이 이미 2018년 미국을 추월했으나, 최근 SCIE 등재 학술지가 다수 추가되면서 중국의 비중은 소폭 하향 조정되었고 중국의 미국 추월 시점은 2021년으로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0월 16일 현재, 전 세계 SCIE 출간 논문 편수는 총 2,013,125편이고, 그중 25.44%가 중국 논문, 22.55%가 미국 논문으로 집계된다.

2005년 세계 비중 6% 남짓이던 중국은 미국과 맞수가 되지 못했지만, 2010년에는 미국에 이은 2위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 후 미-중 간의 격차는 계속 줄어들어, 이제는 중국의 비중이 전 세계의 1/4에 육박하며 미국 추월을 목전에 두고 있다.

중국의 SCIE 논문이 모두 자국 연구자들만의 성과는 아니다. 사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게 최대의 연구 협력 파트너는 줄곧 미국이었다. 필자의 계산으로는, 중국의 SCIE 논문 중 미국과의 연구 협력을 통한 것이 2021년(10월까지) 논문 중 8.9%이다. 이 수치는 2016년 12.7%, 2018년 12.4%, 2020년 10.4%에 이은 것으로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미국과의 점진적 단절일 수도 있고, 과학기술 연구에 있어 중국의 독자적 능력 향상일 수도 있다. 중국의 독자적 과학기술 역량에 대한 필자의 스트레스 테스트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의 단절이 중국에 주는 충격은 지난 10년 사이 의미 있게 감소하였고, 특히 인공지능 분야와 같은 첨단 부문에서 중국의 독자적 내성은 전통 산업 분야에서보다 오히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중국은 과학기술 부문의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란 정치적 이정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현재 중국의 누적 역량만으로 홀로서기가 온전히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미국과 화해와 타협을 모색하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중국은 현재의 과학기술 중심 기조를 유지·강화하며 GDP 규모(현재 세계 2위, 구매력평가기준 세계 1위)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머지않은 미래에 과학기술로 현대화된 중국식 사회주의의 승리를 선언하고자 할 것이다.

모두 앞에 놓인 슘페터리안 챌린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작동에서 ‘혁신’의 핵심적 역할에 주목했던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는 말년의 저작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에서, 과학기술 연구와 대기업의 R&D에 의해 혁신이 일상화·자동화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나면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고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그의 전망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는 분명 우울한 것이었다. 반대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축복인 듯 보이지만, 슘페터가 가리킨 것은 역동성과 생명력이 사라진 세상으로의 전락이었기에 중국에도 축복일 수는 없다.

결국, 슘페터는 대립·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에 다 같이 과학기술 발전 이후 경제에 드리워질 그림자를 경고한 셈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각도에 서 있지만 같은 도전을 마주 대하고 있다. 과학기술 기반 경쟁력 강화를 꾀하되, 고도의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경제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감퇴시키지 않을, 더 나아가 그를 촉진할 방안을 찾는 도전 말이다. 향후의 세계를 판가름 지을 그 도전을 필자는 ‘슘페터리안 챌린지(Schumpeterian Challenge)’라 부르고자 한다.

사실 슘페터리안 챌린지는 미, 중 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바탕으로 생존과 번영의 공간을 마련해왔기에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 강화는 더욱 근본적인 각성을 요구한다. 행여 미국 주도의 중국 배제가 한동안 한국에 추가적인 기회를 제공할지라도 국운을 그에 걸 수만은 없다. 따라서 한국도 슘페터리안 챌린지에 적극적으로 응전해야 한다. 한편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하되, 비(非)과학기술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새로운 혁신의 길도 개척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경제 활동을 창출하는 장(場)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 그를 위해 창의적 기획들이 다채롭게 시도되어야 한다. 더불어 중국의 거국체제를 앞서는 방법은, 팀(Team) 단위의 기민성을 경쟁력의 근간으로 삼고, 인간 삶의 구체적 공간에 특화된 해법(Space-specific Solutions)을 구현하는 수준 높은 디자인적 사고와 실행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31호 (2021년 11월 1일)

Tag:
R&D, 과학기술, 슘페터,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중국, 미국, 한국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이희옥(2021). “중국공산당 100년의 궤적과 ‘중국의 길’ 독해법.” 『아시아 브리프』 1권 27호. https://snuac.snu.ac.kr/?p=33601
  • 은종학(2020). “인공지능 국제 과학연구 네트워크 속 중국의 위상 분석”, 『중국연구』 제82권. 217-239.
  • 왕윤종 외(2020). 『중국 산업, 얼마나 强한가?: 중국 산업경쟁력의 미시적 토대 분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19-25. https://www.kiep.go.kr/gallery.es?mid=a10101010000&bid=0001&list_no=2460&act=view
  • Baark, E., Hofman, B., and Qian, J. (eds.) (2021). Innovation and China’s Global Emergence. Singapore: NUS Press.
  • Schumpeter, J. A. (1942).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Harper & Brothers.

저자소개

은종학(jheun@kookmin.ac.kr)

현)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국정경전공 교수
전) 싱가포르국립대학 방문교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 LG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저서와 논문: 『중국과 혁신: 맥락과 구조, 이론과 정책 함의』 (한울 아카데미, 2021)

「Explaining the “University-run enterprises” in China: A theoretical framework for university–industry relationship in developing countries and its application to China」 (ed.), (Research Policy,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