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의의와 전망

이윤영 (한국교통대학교)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와 ASEAN 10개국으로 구성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이 2013년 5월 협상이 개시된 지 약 7년여 만인 2020년 11월 개최된 화상정상회의에서 서명되었다. 이로써 아·태 지역은 이미 발효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더불어 바야흐로 메가 FTA시대로 진입하였다. 기존의 ‘ASEAN+1 FTA’를 하나의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로 통합함으로써 아·태 지역의 새로운 무역규범을 도입한 RCEP는 기존의 역내 경제질서 재편뿐만 아니라 미·중 전략적 경쟁에도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로서는 향후 추이를 예의주시해 나가면서 적절한 대응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RCEP 출범의 국제정치적 의미

첫째로, RCEP은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 출범한 세계 최대 메가 FTA이다. RCEP는 세계 GDP와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바, 세계 GDP의 27.9%,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미·캐·멕시코협정(USMCA)과 세계 GDP의 12.9%, 인구의 6.5%에 해당되는 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에 비해 월등히 크다. 따라서 규모만으로도 RCEP의 출범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RCEP은 최초의 ‘범아시아(Pan-Asia) FTA’ 로서, 참여한 개도국들의 이해관계가 많이 반영된 중간 수준의 FTA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RCEP 체결 이전 15개 국가들 사이에는 대부분 양자 간 FTA가 체결되어 있었고 2조 3천억 달러(2019년 기준) 규모의 상품무역 자유화 수준도 이미 83%에 달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무역자유화 효과가 제한적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또한, RCEP 협상에 참여한 개도국들이 CPTPP의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를 받아들이는 데 국내 정치·경제적 부담이 큰 점을 고려하여, 자국 경제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무역자유화를 추진할 수 있게 여지를 준 것도 성공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더불어 무역규칙 면에서 기존의 ‘ASEAN+1 FTA’를 하나의 FTA로 통합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통일된 무역 규범을 제정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세 번째는 최초로 한·중·일을 하나의 FTA틀에 포함시키고, 동북아와 동남아 국가들 간 경제통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RCEP 이전까지 한·일, 중·일 간에는 FTA가 없었으나 RCEP을 통해 한·중·일 3국은 낮은 수준으로나마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었다. RCEP는 향후 한·중·일 FTA를 추진하는 동시에 역내 교역 비중을 높이면서 아시아 역내 경제질서 재편에 따른 지역 경제통합의 플랫폼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그림> 아·태 지역 메가 FTA현황

RCEP의 타결 배경

RCEP이 타결되기까지 참여국들 간 경제발전 수준의 격차, 정치체제의 차이, 문화적 다양성 등 수많은 장애요소들이 있었다. 또한, 보호주의의 전 세계적인 확산과 함께 미·중 전략적 경쟁, 중·일간 경쟁의식, 중국·호주 간의 관계 악화 등 대내외 불안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협상 막판에 인도의 탈퇴까지 첩첩이 쌓인 난제들을 극복하고 RCEP은 2011년 11월 ASEAN이 제안한 ASEAN+6 체제의 협상에서 시작하여 약 8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2020년 11월 최종 타결되었다.

애당초 인도를 포함한 16개국 간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며, 이에 따라 협상과정에서 참여국가들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협상은 오랫동안 답보상태에 있었다. 2019년 인도의 불참 결정을 계기로 협정이 신속하게 매듭지어진 배경에는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였다. 협상 시작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한 ASEAN 중심성(ASEAN Centrality),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로 인한 다자주의에 대한 관심 확대, 역내 국가들 간 규칙 기반의 통일된 무역체제를 형성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RCEP이라는 규칙 기반의 제도 틀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역내 국가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반면,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 정책에 맞서 RCEP을 통해 자유주의 무역의 수호자로서 이미지를 제고하고 지역경제질서 재편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각국 간의 전략적인 고려는 RCEP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와 함께 협상이 최종 타결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RCEP의 주요 내용

RCEP 협정문은 총 20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7년에 발효된 한·ASEAN FTA에는 사실상 전무했던 전자상거래, 경쟁, 정부조달, 기술무역장벽 등의 통상규범들을 독립적인 장으로 포함되었다.

RCEP 역내국가 간에는 20년에 걸쳐 품목 수 기준 평균 91.5%(수입액 기준 89%)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하였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ASEAN은 자동차, 자동차부품,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수출품에 대해 관세를 추가로 철폐(국가별로 91.9~94.5%)하기로 하였다. 중국은 철강·기계류 등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를 추가로 철폐하여 수입 시장을 91.1% 수준으로 개방하고, 신규로 시장을 상호 개방하는 일본과는 상호 83%(일본 : 농산품 49%, 공산품 94.1%), 호주·뉴질랜드와는 일부 농수산물에 대해서만 추가 관세 철폐에 합의하였다.

서비스 교역도 기존에 체결된 FTA 수준을 유지하되, ASEAN은 문화콘텐츠, 유통 및 물류 서비스 분야를 추가 개방하였고, 일본은 온라인 게임, 쌀·담배·소금에 대한 도소매.중개 서비스를 개방하기로 하였다. 이외에 정부조달 정보의 인터넷을 통한 제공, 전자상거래 촉진 및 비관세 유지, 컴퓨터 설비의 자국내 설치 요구 금지 및 전자적 수단에 의한 정보의 국경 간 이전 허용, 악의적 출원 상표 거절 의무, 지재권 침해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구제 규정 등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 포함되었다.

RCEP의 최고의 성과는 역내 원산지 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아태 지역 내 52개의 양자 FTA가 체결·발효되어 있는데, 관세 인하 수준이나 일정, 통관절차, 원산지 규정에서 정합성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지역 무역질서가 파편화되는 소위 ‘스파게티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가 초래되어 왔다. 단일화된 특혜원산지규정 도입은 이러한 부작용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거래비용을 낮추게 될 것이다.

각국의 입장과 평가: 중국, 일본, ASEAN, 인도

중국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 등 역내 시장 접근성 제고로 인한 GDP 증가라는 실리적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중국 중심의 공급사슬 구조가 RCEP의 통일 원산지 규정으로 인해 허브로서의 위상이 더욱 공고해지는 효과를 누렸다. 또한, 중국의 공세적 외교로 미국·EU·호주 등 여러 국가들과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RCEP라는 지역 다자간 경제협력틀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으로부터 탈피하고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하며 특히 향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중요한 전략적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중국은 해당 협정의 최대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막판 인도의 불참은 중국의 경제적·전략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효과를 초래하였다.

한편 일본에게 미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맞물린 중국 중심의 RCEP의 등장은 외교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 전개이지만, RCEP 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임했다. 향후 미국의 CPTPP 가입 유도라는 전략적 고려도 있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적으로 한국·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개선, RCEP. CPTPP를 포함한 글로벌 메가 FTA 네트워크 허브로의 부상, 주요 민감 품목(쌀·보리·육류 등) 양허 제외라는 실리도 가졌다.

ASEAN의 경우, 협상 초기부터 역내 국가 간 발전 격차를 고려한 ‘RCEP 협상원칙(Negotiation Principle)’으로 점진적인 자유화와 합의중시 원칙을 제시하고 관철시킨 ASEAN의 외교는 ‘ASEAN 중심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나아가 CPTPP 가입에서 나타난 분열을 막고 회원국 간 연대도 유지시키는, 즉 역내 리더십의 강화와 내적 일체성 유지라는 성과도 거두었다. 협정 내용에서도 개도국이 수용 가능한 ‘중간 수준의 통합모델’로 합의를 이끌어 내었고, RCEP을 통한 탈중국화를 촉진시켜 대아세안 투자 확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당초 RCEP을 통한 역내 경제통합에의 참여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6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참을 결정하였다. 대중국 무역적자 확대 예상으로 인한 국내산업계의 반발, 중국과의 국경분쟁에 따른 긴장 고조, 여타국의 서비스 시장 확대 실패 등 협상에서의 실리를 얻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향후 전망

RCEP는 ASEAN 10개국 중 6개국, 非ASEAN 5개국 중 3개국 이상이 비준서를 기탁하면 그로부터 60일 이후 발효하게 되어 있다. 현재 태국, 싱가포르, 일본, 중국, 브루나이, 태국 등 6개국이 비준하였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뉴질랜드 등이 국내 입법절차를 진행 중인 것을 보면, 늦어도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발효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살펴본 대로, 새로운 동아시아 경제통합체제가 될 RCEP은 역내 경제·무역질서의 변화를 초래하여 역내 국가 간 가치사슬 연계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전략적 경쟁과 맞물려 역내 가치사슬이 중국과 ASEAN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지만, 압도적인 경제력을 지닌 중국의 허브 역할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RCEP 내 낮은 수준의 역내 무역 비중 문제를 해결하고 중국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향후 인도 이외에도 미국·영국 등 역외국가들의 참여가 바람직하다.

RCEP의 향후 과제로는 중간 수준의 시장 개방을 CPTPP 수준으로 높이는 것과 규범에 기반한 무역·투자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협정문 상의 무역규범의 준수와 공정한 경쟁여건 마련을 위한 회원국들의 노력을 들 수 있다. 협정상 규정된 사무국이 안정되고 공정한 규칙 기반의 거버넌스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을 경우, 역내 다자주의 복원과 나아가 각국 간 무역 보복 등의 갈등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응

한국이 참여한 최초의 메가 FTA인 RCEP 참여국들과의 교역 규모는 총교역의 48%에 달하고 있고, 한·중·일 분업 구조 안에서 여러 ASEAN 국가들과 함께 생산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RCEP의 출범은 우리 국익 전반에도 많은 변화를 미치게 되어 경제통상 정책 차원의 대응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적 차원에서도 전략적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RCEP 조기 출범을 위해 노력해 나가면서, 중국 중심의 공급사슬 정착을 방지하고 RCEP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일본·호주와 함께 인도 가입을 위해 공조하면서, 미국 등 신규 회원국 영입에도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편, CPTPP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한 CPTPP의 가입으로, 아·태 지역 경제질서 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미국은 국내 여건상 가까운 시일 내 다자체제 참여가 쉽지는 않겠지만, 대중국 경제·전략적 균형과 자유무역 복귀, 다자간 무역규범 수립을 위해서는 미국을 역내 다자 무역질서에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참여키로 한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 참여)이외에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아·태 지역 동맹국들과 디지털무역협정 체결을 검토하고 있듯이, 아·태 역내 양자 또는 소규모 다자 차원에서 진행 중인 새로운 표준 수립을 위한 국제협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가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30호 (2021년 10월 25일)

Tag:
RCEP, 메가FTA, CPTPP, DEPA, AS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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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윤영(coolyoung21@gmail.com)

현) 한국교통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겸임교수, 건국대 특임교수,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서울대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국제조정센터 이사
전) 주 네덜란드·방글라데시·부탄 대사, 외교통상부 FTA교섭국장, 세계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총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