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류와 아시아 (5)
한류의 세계화: 이해와 오해

홍석경 (서울대학교)

팬데믹 시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달리기를 멈춘 것이 아니라 예상을 뒤엎는 발전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타의 예상을 뛰어넘는 BTS의 성공과 봉준호가 선두에 선 한국영화의 개가, 그리고 넷플릭스를 통해 기존의 한류 팬을 넘어서서 전 세계에서 널리 수용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한류가 더 이상 동아시아 현상이 아님을 말해준다.

예상을 뛰어넘는 한류의 성공은 그 원인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여러 가지 오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이해와 오해의 빛과 그림자를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한류는 전파현상이 아닌 수용현상이며, 한국 정부 주도로 한류가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류는 세계화와 디지털시대의 초국적 문화현상을 의미하며,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여러 영향이 교차하면서 형성되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한류의 성공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의 작은 반도,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분단된, 지구상 마지막 냉전 상태의 인구 5000만의 나라. 빠르게 경제 성장한 개발도상국의 이미지가 아직 덜 벗겨진 작은 나라가 시끌벅적하게 문화를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세계의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의 증가로 한국어는 교양강의가 아닌 학과로 신설되고 있고, 케이팝 음반의 판매량은 디지털 음원시대에 미국이 세팅한 기존 대중음악산업의 룰을 바꾸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 트와이스 등 유명그룹들의 엄청난 성공에 가려졌을 뿐, 국내의 이름있는 케이팝 그룹들은 대부분 해외 팬덤이 더 크고, 2~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신문에 보도되었을 빌보드 100과 200의 진입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2016년부터 한국에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동아시아의 콘텐츠 강자인 한국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투자를 늘리면서 아시아지역 가입자 증가전략을 추진 중인데, 결과적으로 아시아지역을 넘어서서 전 세계로 새로운 한국 콘텐츠 수용자를 크게 확대시켰다. 2020년 각국의 데일리 탑10 프로그램에 기초한 필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영화는 세계 5위, 한국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는데, 3위인 영국드라마 시청률을 두 배 가깝게 앞섰다. 소수의 성공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반짝 등수가 오르는 폴란드나 컬럼비아가 아니라, 수많은 현재와 과거의 한국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형국이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디즈니나 아마존 같은 가입자기반 글로벌 OTT(Over-the-top media service) 사업자들이 이어서 세계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고, 이 플랫폼들은 넷플릭스가 그랬듯이 콘텐츠 파워를 증명한 한국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할 것이 예상된다. 이들의 투자가 국내 문화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케이팝이든 한국영화나 드라마든, 지금과 같은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에너지를 유지한다면 한류 콘텐츠로서 그 앞길은 밝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은 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세계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고 있고, 한류 현상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기초한 여러 가지 오해가 생겨나고 있다. 아래에서 쟁점형식으로 이러한 이해와 오해의 빛과 그림자를 정리해 본다.

한류는 전파현상이 아닌 수용현상

첫째, 한류는 전파현상(Propagation)이 아닌 수용현상(Reception)이다. 한류, 즉 한국 대중문화의 해외에서의 인기 현상은 1990년대 말, 갑자기 해외 발 좋은 소식으로 한국민에게 전달되었다. 한국인은 당시에 스스로도 자조적으로 비판하기 일쑤인 한국 드라마를 외국인들이 왜 좋아하는지, 게다가 한국 드라마보다 잘 만들어진 일본 드라마가 있는데 왜 한국 것을 더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의아해했다. 국가별로 인기가 있는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도 달랐고, 좋아하는 이유도 달랐다. 차이를 걷어내고 수용자연구를 가로질러 등장한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를 기반으로 동아시아의 문화 정체성과 관련된 한국 정서인 ‘정(情)’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 유교적 특성 등이 거론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한류는 수용현상임을 증언하고 있어서 한류가 처음 가시화된 동아시아에서조차 기획된 문화 전파현상이라고 해석할 일말의 여지도 없다. 한국 문화산업의 발전도 1980년대 민주화와 그 결과로 얻어진 1990년대 여러 문화적 제한들의 철폐가 문화발전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마련해 주었을 뿐, 어떤 기획과 지원의 결과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가 한국인에게는 매우 당연하지만, 한국 거주 외교관과 외국인, 외국의 기자, 평론가, 지식인, 공무원 등 문화 중재자(Intermediaries)의 절대다수는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한류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수출경제 기반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정부 주도로 발전한 한국경제처럼, 한류는 한국 정부가 1990년대 말에 시행한 문화산업진흥책의 결과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상당히 강해서, 한류가 수용현상임을 주장하는 필자의 강연을 들은 직후 여전히 “한국 정부의 지원정책이 어땠길래 이런 성공이 가능하냐”고 반문할 정도이다. 이러한 믿음이 형성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이유 중에 그간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대외관계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해왔고, 외교활동에서 민간 지원 활동의 영역을 확대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생적인 해외 한국영화 페스티벌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 영화제를 현지 문화원 행사처럼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은 일들이다.

걸프전 이후 하드파워에 기초한 미국의 외교전략 수정의 필요에서 생산된 소프트파워 전략의 국내도입은 이러한 초국적 문화의 흐름에서 국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가시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국 내 소프트파워 논의는 국가의 가시성을 축소해도 문제없는 미국이기에 가능한 정책이 아닐까. 이 개념과 정책이 한국에서 공공외교의 핵심 아이디어가 되면서 오히려 대 민간 외교활동에서 정부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하는 방식으로 실행되어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과거와 다른 접근을 고안해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다시 말해서, 문화 수출을 목표로 국가가 문화산업을 지원한 결과 한류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자생적인 문화발전과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의 결과라고 인식될 수 있도록 한국의 공공외교 실행정책은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한국이 경제성장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선진국 그룹과 그들의 시선을 내화한 세계 여러 나라 엘리트들이 한국의 문화 역량을 인정하지 않고, 또 한국을 세계적으로 문화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인 문화 선진국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화진흥을 위한 정부의 예산투여가 높은 프랑스, 국가 브랜딩을 위해 쿨재팬(Cool Japan)을 지원한 일본, 창의산업 담론의 원조국인 영국의 문화 수출 등에 대해 정부 지원의 결과라고 설명하지 않지만, 한국에 대해 그런 믿음을 지니는 것은 명백하게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류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과거의 식민주체, 다른 국민의 착취로 원초적 부를 축적하지 못한 나라도 문화적 역량을 지닐 수 있고, 자력으로 쟁취한 민주화를 통해 개화한 문화적 내용으로 다른 나라를 매혹할 수 있는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하는 임무가 한국에게 주어진 상황이다. 개발도상국 시민들에게 한국은 자신들도 꿈꿀 수 있는 미래이다.

한류를 앞세운 정부의 과도한 노력은 역효과

두 번째, 공공외교의 차원에서 한류와 한국 이미지를 연결시키려는 과도한 정부의 노력이 역효과를 내는 한편, 현실 속에서는 한류 현상 가운데 ‘K’의 내용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 문화산업의 국제화와 더불어 이제 제작능력에서 신뢰를 확보한 한국 제작사에 미국 방송사나 플랫폼이 합작과 제작을 의뢰하고 있다는 것은 넷플릭스의 투자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더 큰 변화는 케이팝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16년에 미국인으로 구성된 ‘이엑스피 에디션(Exp-edition)’이라는 실험적인 그룹이 만들어졌을 때, 케이팝 팬들은 이들이 인종적, 언어적, 지역적인 이유로 케이팝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 엔터테인먼트회사가 순수하게 외국인으로 구성된 케이팝 아이돌그룹을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서 외국에서 만들어내고 있기에 이러한 비판도 철 지난 담론이 되었다. 또한, 케이팝 산업의 직접 개입이 보이지 않더라도 세계 각국에서 케이팝의 영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지에서 오디션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들의 문화적 형식이 케이팝을 닮은 사례가 많아서,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케이팝과 구분하기가 언어적 특성을 제외하고 힘든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 앞에서 “케이팝의 ‘K’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학계에 던져졌고, 세계 속에서 케이팝은 한국과 배타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한류는 세계화와 디지털시대의 초국적 문화현상

세 번째, 한류와 케이팝 현상을 여성 팬덤과 MZ세대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고, 더 나아가 문화소수자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류와 케이팝의 수용자조사를 통해서, 그리고 가시적으로 여성과 청년의 분포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기에 양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류 현상에 대한 이러한 협소한 설명은 한류의 수용자를 스테레오타이프화하는 오해를 생산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케이팝은 극성스러운 청소년 여성 팬덤과 텔레비전 소비가 높은 중년 주부들, 또는 서구의 메인스트림에서 소외된 다문화 청소년이나 성소수자에게 어필하는 문화라는 과도한 스테레오타이프가 존재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어떤 이해에서 나온 것인지, 또 어떤 담론의 영향아래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하기엔 지면이 부족하고, 최근 연구에서 제시된 한류 수용자에 대한 이해를 요약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류와 케이팝 팬덤은 시발점에서, 그리고 수용국 각국의 특별한 맥락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든, 한류는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초국적 문화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디지털 참여문화, 세계화의 진행과 인터넷이 만나서 발생하는 인종주의적 문제, MZ세대의 보다 포괄적인(Inclusive) 젠더 감수성이 교차되어 전개되는 글로벌 문화 현상이다. 이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는 한류 드라마나 케이팝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재현을 제공해서가 아니라, 세대, 인종, 젠더에 대한 위에 설명한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한 재료들을 형식적으로 우수한 형태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한국의 성공스토리와 역사적 의미로 인해, 세계의 청년들은 미국의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든, 홍콩과 칠레의 시위현장이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든, 정치적 갈등의 현장에서 케이팝의 연대를 소환하고 있다.

한류는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교차점에서 발전

네 번째, 한류의 문화산업적 프레임은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여러 영향이 교차하면서 발전한 것이지, 한국이 쇄국 상태에서 비밀병기 개발하듯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 문화란 개방적 소통을 통해서 발전하고, 널리 퍼지는 문화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언해준다. 20세기 초반에 이미 진린과 같은 한국인 중국 영화스타가 존재했다는 먼 역사를 소급하지 않더라도 1980~90년대 홍콩 영화와 대중가요의 영향, 이어진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트렌디 드라마, 제이팝, 특히 일본 아이돌 연예문화의 영향력을 빼고는 한류를 구성하는 중요 콘텐츠의 형성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상주를 통해서, 그리고 1980년대부터 미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력이 커지면서 1990년대 초 서태지 현상에서 본 것과 같은 현재의 케이팝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류의 성장과 더불어 한·중·일 사이 온라인 민족주의가 악화되었고, 한류의 형성과 문화적 특성을 왜곡되는 경향이 관찰된다. 텔레비전 드라마 <조선구마사>(SBS, 2021)가 2회 방송 후 중국풍 표현이 역사 왜곡이라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강력한 비판으로 방송중단 될 정도로 한국과 중국의 시청자들은 온라인에서 상호긴장 상태에 있다. 또한, 한·일 관계의 굴곡 속에서 양국 네티즌들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케이팝의 형성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만이 언급되고 일본 대중문화와의 연관성은 언급되지 않는 등, 온라인 민족주의의 포화를 피하기 위한 수세적 왜곡이 존재한다. 그러나 위에서 두 번째로 언급했듯, 이미 ‘K’는 한국인과 대한민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의 한류소비자 어느 누구도 케이팝이 한국태생임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한류의 확장은 한류의 생산 주체나 한국 정부가 한류 초기에 지녔던 태도를 수정해야 함을 말해주고, 동시에 한류가 세계사 속에서 초기의 지역문화적 이해를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부터가 산업적이든, 외교적이든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접근과 실력이 필요한 때이다. 세계의 한류 수용자들에게 한국의 대중문화가 21세기의 새로운 문화 위계와 재영토화의 위협이 아니라 가능성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23호 (2021년 9월 6일)

Tag:
한류, 수용현상, 초국적문화, 동아시아대중문화, BTS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박소정·장인희·홍석경 (2021). “일본 내 글로벌 SVOD 서비스를 통한 한국 드라마 수용.” Korean Journal of Journalism & Communication Studies 65(3). 122-162.
  • 박소정·홍석경 (2019). “K-뷰티의 미백 문화에 대한 인종과 젠더의 상호교차적 연구를 위한 시론: 화이트워싱/옐로우워싱 논쟁을 중심으로.” 『언론정보연구』 56(2). 43-78.
  • 이수만 (2021). “한류, 현재의 K-pop을 만든 CT와 미래를 열어갈 SMCU.” 『아시아브리프』 1(16).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ttp://asiabrief.snu.ac.kr/?p=277
  • 이장우 (2021). “한류(K-pop)의 성공과 미래.” 『아시아브리프』 1(14).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ttp://asiabrief.snu.ac.kr/?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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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홍석경(skhong63@snu.ac.kr)

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전) 보르도 3대학 언론정보학과 부교수, 한국 방송위원회 선임연구원

 

주요 저서:

『BTS 길 위에서』 (어크로스, 2020)
『한류에서 교류로』 (공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0)
『드라마의 모든 것』 (공저), (컬처룩, 2016)
『세계화와 디지털문화 시대의 한류』 (한울아카데미, 2013)
Transnational Convergence of East Asian Pop Culture (ed.), (Routledg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