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시아 국가의 경제(3)
4대 변곡점을 지나 온 일본 경제의 현황

김현철 (서울대학교)

오늘날의 일본 경제를 알기 위해서는 지난 30년 간의 일본 경제가 흘러온 길을 알아야 한다. 일본 경제에는 4번의 큰 변곡점이 존재했다. 1991년 버블경제의 붕괴, 1997년 아시아발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바로 이 변곡점에 해당한다. 세계 제 3위 경제대국 일본이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대중 가운데 여전히 견고하지만 경제계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 작금의 일본경제는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이다.

최근의 일본경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 일본경제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소위 ‘매의 눈’을 가지고 전체를 조감해 보아야 일본경제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웃 국가인 일본의 경우, 일본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흘러들어오다 보니 개별적인 것은 많이 알지만, 전체적인 큰 흐름을 놓치기 쉽다. 지난 30년간을 돌이켜 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일본이 우리와 달리 연호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연호는 레이와(令和)이지만 직전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이다. 헤이세이 시대가 30년(1989년부터 2019년까지)이다.

버블경제 붕괴와 잃어버린 10

지난 30년간의 일본경제를 되돌아보면 4번의 커다란 변곡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1991년의 버블경제 붕괴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촉발된 주식과 부동산의 이상 급등이 1991년을 기점으로 각각 붕괴하면서 일본경제는 크게 추락하게 된다. <그림 1>을 보면 전후 고도성장기에 꾸준히 상승하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히 상승하다가 1990년에는 주식 가격이, 1991년에는 부동산가격이 급속히 추락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4만에 가까이 갔던 주가는 1만 이하로 떨어졌으며 1991년을 100으로 환산한 부동산 가격이 2000년에는 25까지 하락하였다. 버블기에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수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 영향이 일본경제 전반을 흔들어 놓았다.

<그림 1> 버블 경제 전후의 주식 가격 및 부동산 가격 추이

일본 국민들은 버블의 발생과 붕괴를 가져온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며 투표로 정부를 심판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전후 안정을 구가하였던 자민당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재임 기간이 1년을 넘기지 못하는 수상도 다수 나오게 되었다. 버블 붕괴 후의 경제 대책들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고 단기 대책들이 남발되기도 하였다. 언론에서는 ‘잃어버린 10년’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일본경제를 묘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후 고도경제 성장으로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면서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일본경제는 이 시기를 그런대로 버텨 나갔다.

이러한 일본경제가 두 번째 변곡점을 맞이한 것이 1997년이었다. 1997년이라 하면 우리 국민은 IMF 경제위기를 많이 떠 올린다. 아시아발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어 큰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가 1997년이다. 이때 일본경제도 큰 어려움에 빠졌다. 버블 붕괴 뒤 근근이 버티던 일본경제가 본격적인 불황을 맞았다. 향후 성장이 어려운 한계기업들이 많이 파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의 채권을 가지고 있던 금융기관마저도 함께 타격을 받으면서 ‘복합불황’이라는 말이 회자되던 때가 이때이다.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이 복합적으로 함께 불황을 맞이하였다는 뜻이다. 이때 일본경제는 전후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고 실업률도 5%대로 급등하였다. 특히 청년들의 취업이 힘들었는데 이 때를 ‘제1기 취업 빙하기’라고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전후 처음으로 경제활동 가능 인구까지 감소하면서 일본경제가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고 일본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인하하게 된다. 버블경제 붕괴 후 일본국민들이 본격적으로 경제 위기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림 2> 지난 30년간의 일본경제 성장률 추이

이 시기를 그런대로 잘 봉합한 것이 고이즈미 수상(재임: 2001.4~2006.9)이었다. 고이즈미 수상은 부실해진 금융기관에 과감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안정화시킨 뒤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구조개혁을 단행하였다. 신자유주의 사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공공부문을 민영화하였고 비정규직 고용을 과감히 확대하여 정규직 중심의 전통적인 일본의 고용 관행에 ‘고용 유동화’라는 흐름을 만들어 놓았다. 복지 부분에도 메스를 들이대어 연금이나 의료, 간병 등에도 개인의 부담을 높이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일본경제는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반등하였지만 사회 양극화는 역으로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지식인들은 양극화를 우려하는 저작물을 내놓기 시작하였다.1) 시민사회도 고이즈미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던 차에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일본을 덮치게 되었다. 이것이 일본경제의 세 번째 변곡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발생하여 유럽으로 전이된 경제 위기였지만 일본도 자본주의 경제 진영의 큰 축이었기에 일본경제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2009년 일본경제는 마이너스 5.4% 성장률을 기록하며 전후 최대의 하락 폭을 기록하였다. 실업률도 5.5%로 급등하였으며 청년들의 취업 또한 어려워져 ‘제2의 취업 빙하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때에는 엔화 강세까지 겹쳐져 ‘엔화 강세→수출 악화→수입 물가 하락→디플레이션 심화’라는 악순환에 일본경제가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국민들은 이 위기를 자민당 정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2009년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하는 정권심판을 단행하였다.

민주당 정권(집권: 2009.9~2012.12)은 버블경제 붕괴 뒤에 자민당 정권이 추진해 왔던 여러 경제정책의 노선을 180도 선회하는 방식으로 경제회복을 시도하였다. 공공사업 중심의 경기대책을 중단하였고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였다. 그리고 ‘콘크리트에서 인간으로’라는 슬로건 하에 환경과 의료, 복지 등을 중시하는 정책 기조로 전환하였다. 또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국민 생활의 질적 측면을 중시하고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였다. 이를 통하여 경제를 일정 부분 회복시켰지만, 엔고를 그대로 용인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 결과 수출기업들은 더욱 어려워졌고 수입 물가가 계속 하락함에 따라 디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정권을 처음 잡은 민주당은 다른 정책에서도 미숙함을 보이자 재계와 보수언론들이 반발하기 시작하였고 몇몇 경제정책에서는 경제산업성을 위시한 일부 성청의 관료들이 반발하기도 하였다. 2011년 3월에는 동북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그 영향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대참사가 발생하였다. 전후 최악의 재해에 민주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국민의 여론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리고 2012년 선거에서 아베가 대승을 거둠으로써 정권은 다시 자민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베 정권과 아베노믹스

아베 수상(재임: 2012.12~2020.9)은 ‘일본경제 재생본부’를 설치하고 분배위주 정책에서 성장위주 정책으로 재선회시켰다. 그리고 3개의 화살, 즉 과감한 금융완화 정책과 적극적인 재정정책, 감세와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성장정책을 바탕으로 아베노믹스를 실시하였다. 특히 과감한 금융완화 정책은 2년 사이에 통화량을 2배로 늘리는 소위 ‘차원이 다른 금융완화 정책’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8천엔 하던 주가가 1만 5천엔 수준으로 회복되고 시중에 경제 온기가 다시 돌기 시작하였다. 또 통화량 증가에 따른 엔저 효과로 말미암아 수출기업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고 외국인 중심의 관광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살아나는 경기를 확신한 나머지 2014년 4월에는 소비세를 인상하여 경기를 일시적으로 냉각시키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후 2015년 생산성 혁신, 2016년 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한 일본 부흥 전략, 2017년 사회 5.0의 실현을 위한 미래 투자 전략 등을 계속 발표하면서 일본경제를 부활시켜 나갔다.

아베노믹스의 최대 수혜자는 기업들이었다. 지속적인 산업정책과 규제 완화, 통화 공급과 엔저 효과 등으로 기업들의 이익은 확실히 개선되었다. 더구나 주식 시장 활황과 부동산 시장 회복으로 일부 소비가 개선되었고, 미미하지만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으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특히 기업경기 회복으로 줄어만 가던 정규직 고용이 2014년부터 늘기 시작하였고 비정규직 고용도 꾸준히 개선되어 실업률도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특히 청년들의 고용이 개선되어 대학가에서는 취업 빙하기란 단어가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는 반쪽짜리 개혁이었다. 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급 사이드는 개혁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지만, 가계를 중심으로 한 수요 사이드는 여전히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고용은 개선되었지만 실질임금은 여전히 정체되어 시장수요는 미진하였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의 임금 인상을 종용하였지만, 기업들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이용하여 이익만 쌓아 두는데 바빴다. 이런 와중에 2019년에는 미중 통상분쟁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하강하기 시작하였고 그 영향을 일본경제도 받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이때, 두 번이나 연기하였던 소비세를 인상하자 경기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제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이것이 일본경제의 네 번째 변곡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미증유의 사태이었기에 초기 대응이 매우 어려웠지만, 일본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일본은 사스나 메르스의 경험이 없었기에 방역 매뉴얼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데다 하계 도쿄 올림픽의 개최를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초기 대응에 실패하였다. 특히 도쿄 올림픽은 아베 정권이 ‘일본 부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온 까닭에 코로나 확진자 발견에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대 유행이 일본에서도 일어나는 바람에 외국인의 방일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가게 영업을 제한하는 긴급사태를 발령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강하던 일본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2020년 2분기에는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7.8%를 기록하며 전후 최대 하락 폭을 갱신하게 되었다. 아베 수상은 병을 핑계로 급히 사임하는 선택을 하며, 그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성과도 초라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버블 붕괴 뒤 소위 잃어버린 20년간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0.8%였는데 아베노믹스 기간 중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0.9%를 기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목표로 하던 2%의 경제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

코로나 팬데믹과 스가 정권의 탄생

아베 정권을 계승한 스가 수상(재임: 2020.9~)은 코로나 긴급사태를 다시 선언하며 코로나 유행을 잡고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였다. 국민총생산(GDP)의 15.6%에 이르는 재정 투입과 28.4%에 이르는 금융 지원을 실시하였다. 우리나라의 GDP 3.4%의 재정 투입과 10.2%의 금융 지원과 비교하면 엄청난 경기 부양책이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240% 가까이 늘어나게 되었다. 문제는 어려운 계층이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코로나 팬데믹의 특성상, 오래도록 일본을 괴롭혀 온 양극화(격차)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은 국민 불만은 결국 정치로 향할 것이지만 야당의 몰락과 자민당의 독주로 집약되는 정치가 이를 제대로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일본은 장기적인 저성장으로 인해 국민 불만이 고조되어 있고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 등이 국가주의와 배외주의로 국민 불만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 아베 정권 시절에 많은 전문가들이 위기를 경고하였다. 골드만삭스의 일본경제 애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앳킨슨은 일본경제가 위험한 길로 들어섰다고 지적하였고 재팬 타임지의 논설위원인 브래드 클로서먼은 일본이 피크를 넘어서 하강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고베대학교의 얀베 교수는 이미 일본경제가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고 하였으며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이대로라면 일본은 망한다”고 까지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해외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제3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이 망할 리는 없다. 이 때문인지 일본의 서점들에는 ‘일본이 최고’라는 서적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야나이 회장은 일침을 가하고 있다. “민도가 굉장히 낮아졌다. 서점에는 ‘일본이 최고다’라는 책뿐이다. 나는 언제나 속이 메스꺼워진다. 일본이 과거 한때 최고였다면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어디가 최고인가? (중략) 이른바 ‘끊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은 현상이 이제는 모두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위기를 일본이 어떻게 돌파할지가 자못 궁금하다.

 


1) 대표적인 저작물이 미우라 아쓰시의 『하류사회: 새로운 계급집단의 출현』과 다치바나키 도시아키의 『격차사회』, 야마다 마사히로의 『희망 격차사회: 패자그룹의 절망감이 일본을 갈라놓다』 등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13호 (2021년 5월 31일)

Tag:
헤이세이30년, 버블경제붕괴, 아시아외환위기, 글로벌금융위기, 코로나팬데믹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남호석. (2021).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일본 경제 전망과 과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Diverse Asia』11호. https://diverseasia.snu.ac.kr/?p=4925
  • 데이비드 앳킨슨. (2020).『위험한 일본 경제의 미래』. 더난.
  • 박상준. (2019).『불황탈출』. 알키.
  • 박성빈. (2019).『아베노믹스와 일본 경제의 미래』. 박영사.
  • 브래드 클로서먼. (2020).『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 김영사.
  • 요시미 순야. (2020).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에이케이.
  • 野口旭. (2018). 『アベノミクスが変えた日本経済』. ちくま新書.
  • 山家悠紀夫. (2019). 『日本経済30年史:バブルからアベノミクスまで』. 岩波新書.

저자소개

김현철(kim@snu.ac.kr)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현)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

저서:
『저성장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다산북스, 2015
『殿樣經營の日本+皇帝經營の韓國=最强企業のつくり方』. ユナイテッド.ブックス. 2010
『アジア最强の經營を考える』 . ダイヤモンド社.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