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시아 국가의 경제(2)
코로나19 이후 아시아 경제와 중진국 함정

이근 (서울대학교)

아시아의 경제를 특징짓는 최근 키워드는 중진국 함정이다. 아시아의 상황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4소룡과 아직 중진국 함정 범주에서 벗어나진 못하는 동남아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변수가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이다. 동남아 국가들에게 이들 두 변수는 위협임과 동시에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아시아 경제의 키워드, 중진국 함정

길게 볼 때 아직까지도 아시아의 경제를 특징짓는 중요한 키워드는 동아시아의 기적과 아시아의 4소룡일 것이다. 반면에 보다 최근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중진국 함정이다. 일본에 뒤이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4소룡이 기러기 편대라는 식으로 눈부신 성장을 달성한 반면, 동남아의 국가들은 한때 빠른 성장을 구가하였으나,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현상이 바로 중진국 함정이다(Lee, 2019).

세계은행 2012년 보고서 이후 중요해진 이 중진국 함정 개념은 미국 대비 1인당 소득이 20%에서 40% 박스권에 몇십 년 동안 갇혀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그림 참조>. 이 현상은 주로 경제 성장에 따라서 임금이 상승하는 반면, 아직 고급 하이엔드 제품군으로 승급하지 못할 때 생기는 샌드위치형 경쟁력 약화 현상에 맞물려 경제성장률이 둔화됨에 따라 발생한다.

<그림> 아시아 각국과 중진국 함정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한국, 대만

한국이나 대만도 80년대에 이런 현상을 겪었지만, 다행히도 혁신에 대한 투자와 민간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보다 하이엔드 제품 및 첨단산업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짐에 따라, 한국과 대만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 수준의 소득 수준에 도달하였다. 즉, 한국은 미국 대비 1인당 소득 수준이 70%라는 현재 일본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였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본을 넘어서는 추월을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시장환율로는 한국보다 1인당 소득이 낮은 수준이지만,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 평가 환율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을 넘어서 미국 대비 80% 수준으로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에 도시국가인 홍콩과 싱가포르는 이미 미국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동남아 4개국이 직면한 중진국 함정

이제 동남아 쪽으로 가면, 아직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4개국은 미국 대비 40%에 못 미치거나 근접한 수준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어서 중진국 함정의 예라고 볼 수 있다. 태국이 미국 대비 30% 수준이고, 이는 브라질, 멕시코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아직 30%에 채 도달하지 못하였다.

예외적으로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는 일정한 조짐을 보이는 두 나라가 동남아에서는 말레이시아이고, 남미에서는 칠레이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50% 정도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칠레도 비슷한 수준이다. 필자의 최근 논문(Lebdioui et al, 2021)에 따르면,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전통적으로 아시아나 신흥국 경제 성장에 주된 엔진으로 여겨지던 제조업이 아니라, 와인, 채소, 고무, 석유 등 자원에 기반한 산업을 고부가가치화 하고, 이를 수출공업화 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들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형 모델을 따라 자동차 산업을 토착 브랜드 중심으로 적극 육성하였으나 수출 공업화하는 데에 실패하였다(Lee et al, 2020). 전기·전자 산업도 일정한 성과를 보였으나 다국적 기업에 편입된 하청 공업화 위주이어서 고부가가치화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중부가가치화 공정에 머물러서 역시 중진국 함정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고무에 기반한 제조업(콘돔 등), 팜오일에 기반한 제조업(각종 식용유), 석유 가공제품 등은 전기·전자나 자동차와 달리 성공적으로 수출산업화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 외화창출에 선도적인 산업으로 등장하였고, 이런 자원집약적 산업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전체 소득은 미국 대비 50%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칠레는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신자유주의적인 개방 정책을 채택하였다. 칠레는 전반적인 자유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와인, 연어, 과일 등 산업에서 적극적인 산업정책과 연구개발에 투자하였다. 이들 산업을 단순히 자원집약적이 아닌, 지식 집약적인 수출산업으로 육성하였다. 이를 통해 칠레를 남미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떠오른 두 변수,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이렇게 아시아의 상황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4소룡과 아직 중진국 함정 범주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는 동남아로 구별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새로운 두 변수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이다.

4차 산업혁명은 동아시아의 도전에 대한 미국, 독일 등 선진 공업국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노동에 의존하지 않는 첨단 제조 공정을 개발하면서, 공장을 아시아에 두지 않고도 제조업을 한다는 리쇼어링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는 외국계 다국적 기업의 투자에 크게 의존하는 동남아 제조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반면에,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도 이미 인구 성장 정체나 노동력 부족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일부 이런 나라들에게 오히려 노동 절약적 기술 진보인 4차 산업혁명이 도움이 되는 기회의 창이 되는 측면도 있다(Lee et al, 2019).

공업화의 단계는 “공장제 수공업 → 포디즘(소품종 대량생산) → 자동화 → 스마트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동남아의 일부국 및 한국의 중소기업의 경우, 4차산업혁명의 신기술 들을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동화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포디즘에서 스마트 패러다임으로 도약(Leapfrogging)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도약의 실현 여부가 하나의 관점 포인트이다. 앞으로 이들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 전망은 위협임과 동시에 기회의 창인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는 대면 서비스 위주의 서구식 산업구조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반면, 제조업 위주의 아시아의 상대적 우위를 드러낸 국면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사회와 달리, 규율과 집단주의 위주의 아시아 사회가 대조된 측면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도 또 다른 측면의 양면의 칼이다. 이것이 미·중 갈등과 중국의 임금상승과 맞물리면서 전통적 제조업 공장들이 중국에서 탈출하여 본국으로 리쇼어링(Reshoring)이 되거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이전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산 제품에 미국의 관세가 부과되고, 중국의 임금이 한국의 절반 정도까지 급상승하면서, 공장들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최대 수혜 국가가 베트남이며, 인도네시아, 태국 등도 탈중국 기업들의 입지로 부상하고 있다. 즉, 4차 산업혁명이 탈아시아를 가능케 한 측면이 있었는데, 미중 갈등 이후 동남아가 하나의 대체지로 부상하여 외국인투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동남아의 성장에 따른 시장의 확대라는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즉, 코로나19 역시 전반적인 경기 침체라는 면에서 위기 요소이나, 이런 면에서 기회의 창이 되는 요소도 있다.

선진도상국 한국의 과제

이상에서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발전 모델과 중진국 함정, 4차 산업혁명 및 코로나19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 상황을 조망, 분석하였다. 21세기에 들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는 아시아 각국의 경제가 어떻게 이 위기와 기회의 상황을 헤쳐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동남아는 중진국 함정 극복이 관건이고, 이 함정을 넘어선 한국은 이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도상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선진국으로 안착하는 문턱에서 개방을 잘못 관리하여 97년에 외환위기를 맞았고, 최근에는 성장과 분배 간의 조화라는 난관에 봉착하여 있다. 또한, 한국과 동남아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그 한쪽에도 섣불리 설 수 없는 공통된 진퇴양난 상황이다. 한국의 신남방 정책이 표방하듯이 양자 간에 새로운 협력과 제휴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9호 (2021년 5월 3일)

Tag:
중진국함정, 4소룡, 동남아, 4차산업혁명,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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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근(kenneth@snu.ac.kr)

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현)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비교경제연구센터장
현) (사) 경제추격연구소장
현) 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현) 서울이코노미스트 클럼 회장 (2019~)
전) 국제경제학회 회장 (2020)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2015~2017)
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2014~2016)

저서:

『디지털사회 2.0』 (21세기북스, 2019)
『미래산업전략 보고서』 (21세기북스, 2018)
『산업의 추격, 추월, 추락』 (21세기북스, 2014)
『경제추격론의 재창조』 (오래, 2014)
『국가의 추격, 추월, 추락: 아시아와 국제비교』 (서울대학교 출판부,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