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시아 국가의 경제(1)
4차 산업혁명, 아시아와 한국경제

박재완 (성균관대학교)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시아 각국의 경제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한편 플랫폼 기업을 비롯한 비대면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시아 경제 전반의 현황과 함께 아시아 주요국의 경제 상황을 점검해 보고 장래를 전망해 본다.

코로나19와 아시아 경제의 반전

코로나19는 ‘위장된 축복’일까. 코로나 이후 4차 산업혁명(4-IR)이 가팔라지고 온라인쇼핑 등 비대면 경제가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코로나 초기엔 몸살을 앓았으나, 이젠 상대적으로 안전지대가 됐다. 자원 동원의 규모와 속도로 미루어 ‘다음 일상’은 아시아에서 형성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Allianz (2021)는 코로나로 인해 세계 경제의 중심(重心)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속도가 1.4배 빨라졌다고 한다. 특히 중국은 코로나19 와중에 선진국과 경제력 격차를 2년 좁혀 승자로 부상했다.

한국도 선방했다. 봉쇄 없이 버텼고, 제조업과 수출 위주 경제라 타격이 덜했다. 그래도 산업구조가 비슷한 대만에 비하면 아쉽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1~22년 한국 성장률이 선진국 평균에 미달할 것으로 본다. IMF의 코로나19 전후 2020~22년 성장률 전망치 비교는 더 비관적이다. 한국은 대만, 중국, 싱가포르 심지어 일본보다도 뒤진다.

4차 산업혁명은 아시아에 양날의 칼

4-IR은 역동적인 아시아에 기회이자 위협이다. 4-IR은 지능혁명이다. 모든 사물이 지능화되며 실시간 연결된다. 몰입ㆍ현장감을 구현하는 ‘On-tact 시대’, 집이 일ㆍ휴식ㆍ여가의 복합공간인 ‘Home X’로 진화한다. 4-IR은 생산성ㆍ소득ㆍ여가를 늘리지만, 부문별 명암은 엇갈린다.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AI)과 데이터에 기초한 모바일ㆍ플랫폼 경제가 약진하고 전통 제조업과 아날로그 서비스업은 쇠퇴한다. 다행히 아시아인은 세계에서 디지털에 가장 친숙하다.

4-IR로 일자리가 줄 것이라는 걱정은 근거가 희박하다. 1975년 이후 미국을 보면 낡은 일자리 파괴가 활발할 때 새 일자리가 많이 생겼다. 한국도 지난 50년 동안 생산성과 취업자 증가율이 동행했다. 다만 4-IR로 일자리가 늘려면, 인력 이동과 전환이 원활해야 한다. 아쉽게도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 엄격한 고용 보호와 강성 노조 탓이다. 세계 추세와 달리 지난 20년 간 고용 유연성을 높이지 못했다. 로봇이 늘어도 인력을 재배치하지 못하는 곳조차 있다.

고용 총량이 줄지 않아도 4-IR로 일자리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하다. 전문직과 육체노동자는 피해가 덜하지만, 중간 숙련 근로자는 로봇과 AI로 대체되기 쉽다. 특히 아시아계가 취약하다. AI로 대체될 위험이 백인의 2배, 히스패닉의 5배, 흑인의 10배다(Muro 외, 2019). 아시아계는 숙련도가 어중간하며 시키는 일만 잘하고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서길 꺼려서 로봇이나 AI의 매력적인 대체재다. 실제로 아시아권의 근로자 대비 로봇 밀도는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게다가 아시아권은 제조업 의존도가 높아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위험이 크다<그림 참조>.

<그림> 자동화와 AI: 아시아 위험 지도
출처: UNDP (2018) https://undpasiapac.medium.com/making-the-fourth-industrial-revolution-count- for-sustainable-development-in-asia-and-the-pacific-22c351ddd4bf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산하는 등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20~25배나 빨라졌다(McKinsey, 2021). 원격근무는 도심 주거비와 교통난을 덜어 인구밀도가 높은 아시아의 근무 여건을 개선한다. 반면에 개인주의 성향이 약하고 상명하복 관행이 뿌리 깊은 아시아에선 원격근무의 연착륙이 더딜 수 있다. 4-IR은 공급망도 재편한다. 향후 5년 세계무역량 15~25%의 생산기지가 옮기거나 본사 소재지로 복귀하면(Betti 외, 2020), ‘세계의 공장’인 아시아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4-IR이 진전되면 과학ㆍ기술ㆍ공학ㆍ수학(STEM)은 물론, 소통과 ‘인지 수리(數理)’의 중요성이 커진다. 아시아계는 STEM엔 친숙하나, 소통ㆍ설득력은 미흡하다. 특히 동아시아계는 소신이 약해 리더로 올라서기 힘든 ‘대나무 천장’에 시달린다. 동아시아계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창의력이 절실한 대학원 과정부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4-IR에는 혁신이 필수다. 하지만 아시아는 혁신의 구심점인 개방ㆍ공유ㆍ협업생태계가 취약하다. 일본의 혁신은 여전히 폐쇄형 연계망에 의존하며, 한국과 일본 기업의 글로벌 혁신망 연계 비율은 선진국 중 꼴찌다. 중국ㆍ일본ㆍ인도 등은 ‘Bloomberg 혁신지수’가 낮다. 한국은 2020년 국제경영개발원 디지털 경쟁력 8위, Bloomberg 혁신지수와 유럽혁신지수 각 1위에 올랐으나,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사회ㆍ제도의 혁신 잠재력은 평범한 수준에 그친다. 한국의 혁신 역량은 외화내빈이다. 학력이 세계 최상위인 한국 청년의 실제 역량은 중위권에도 미달한다. 직무에 필요한 역량과 실제 역량의 괴리가 주요국 중 가장 큰데도 그런 약점을 보완할 직장학습은 최하위로 평가받는다. 한국은 디지털 기반이 앞서나 그 진화 속도가 더디며, 세대 간 디지털 격차가 가장 크다.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컴퓨팅 활용도 최하위권이다.

인적역량 고도화와 규제 축소가 관건

4-IR의 관건은 인적 자원과 규제의 질이다. STEM, 특히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숙련인력을 키워야 한다. Maloney & Caicedo (2020)는 1880년 미국 기술자와 특허가 각 1 표준편차만 늘었어도 2020년 국민소득이 각 10%씩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통 역량 강화와 평생학습체제 구축도 긴요하다. 아시아는 GDP 대비 노동시장 훈련지출 비율이 낮다. 누구나 근로자와 투자자를 겸할 수 있는 ‘대중기반 자본주의’에 대비해 ‘온라인 대중개방학습(MOOC)’을 일상화하고, 중장년을 대상으로 ‘취업 후 상환 평생학습 장학금’을 도입해야 한다.

규제를 줄여 창의와 혁신을 북돋아야 한다. 아시아는 ‘Heritage 경제 자유도’가 낮다. 싱가포르(1위)ㆍ대만(6위), 20위권의 말레이시아ㆍ일본ㆍ한국을 빼면, 중국(107위)ㆍ인도(121위) 등 대다수가 중하위권이다. 정부 입김이 강하고 규제가 촘촘하며 정책금융 비중과 서비스산업 문턱이 높다. 폐쇄적인 데이터 규제도 디지털 혁신에 걸림돌이다. 정부가 4-IR의 ‘보모’를 자처해선 안 된다. 중국처럼 Google 등의 발목을 잡는 자국 산업 보호도 바른길이 아니다. 정부는 4-IR의 기반과 법제를 갖추며, 인력 양성, 연구개발과 신기술 보급에 중점을 둬야 한다.

기업도 할 일이 많다. 상의하달과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아시아식 문화를 바꿔 자율과 책임, 모험과 도전을 장려해야 한다.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모듈형 민첩성과 다층 연계망을 확보해야 한다.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경영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한국과 홍콩을 빼면 아시아권은 ‘Moodies ESG 순위’가 낮다. 기업ㆍ세대 간 디지털 격차가 큰 아시아는 디지털 포용력을 확대하는 투자와 훈련 프로그램 갱신에 주력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7호 (2021년 4월 19일)

Tag:
지능혁명,혁신,인적역량,규제,디지털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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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박재완(jbahk@skku.edu)

현) 성균관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전) 기획재정부 장관

저서와 논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것들』(한반도선진화재단, 2020)
『수저계급론에 대한 진단과 정책 제언』(한국경제연구원, 2018)
『국가와 좋은 행정』(서울대 출판문화원, 2017)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