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인구소멸, 로컬리즘이 막는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인구변화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 한국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해법모색은 정확한 원인분석과 걸맞는 단계별 대응체계의 신속한 실행에서 비롯된다. 시급한 것은 현실에서 벗어난 인구추계를 보정할 사회이동의 본질과 균형발전의 실천이다. 도농격차의 완화로 실질적인 균형발전을 이룰 때 인구변화의 충격도 최소화된다. 순환경제가 전제된 지역복원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주민·지역의 직주락(職住樂)과 함께 지역 능력의 복원을 위한 달라진 협력체계와 사업모델이 중요한 성공 힌트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인구오너스((demographic onus)를 인재보너스로 활용한다면 활로 개척은 물론 한국형 지속모델도 제안될 수 있다.

<그림 1> 대륙별 출산율 감소 추이

동북아 특유의 사회이동과 인구위기

아시아는 연구 대상이다. 특히 서구의 관점에서 동북아는 독특하고 생경한 발전경로로 정평이 높다. 왜 동북아만이 표준편차를 벗어난 달라진 자본주의를 품었는지 궁금해서다. 마땅히 내세움직한 빼어난 투입자원 없이 놀라운 경제성장을 일궈낸 비결에 대한 주목이다. 1993년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기적(East Asian Miracle)’이란 타이틀로 4마리 용의 성장모형에 흥미·찬사를 보낸 배경이다. 보고서는 수십 년간 특정지역에서 압축·고도·장기성장을 지속한 사례는 없다며 지정학적 차별성에 주목했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 재검토가 필요할 정도로 추락 반전의 굴욕은 맛봤다. 그렇다고 걸어왔던 발자국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는 얼마든 새로운 경로 개척의 능력을 뜻해서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동북아의 자본주의는 그들만의 차별적인 인구변화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즉 동북아의 성장모델은 차별적인 사회이동과 중첩된다. ‘사회이동→경제성장’에 닿는 상관·인과성이 꽤 농후하다. 동시에 서구와 비교되는 색다른 공통 수식어는 또 있다. ‘급격하고, 지속되며, 고집스러운’ 사회이동이 그렇다. 지속·반복·일방적인 외골수의 사회이동이 그만큼의 성장 과실을 담보했다는 얘기다. 동북아의 사회이동을 분해·규정하지 않으면 과거의 성장모형뿐 아니라 미래의 예상경로도 떠올리기 쉽잖다. 사회이동을 품는 확장 개념이 바로 ‘인구변화’다. 인구변화는 사회증감(전입·전출)과 자연증감(출생·사망)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동북아는 지역이동에 따른 사회증감이 인구변화뿐 아니라 성장모델에 직접·포괄적인 통제변수일 수밖에 없다.

공부를 통한 유교적 입신양명이 도시집중 낳아

동북아, 특히 한·중·일은 ‘사회이동→경제성장’을 입증할 모범사례다. 잦은 사회이동이 높은 경제성장과 함께 그 부작용으로 초유의 인구감소를 빚었기 때문이다. 또 이 흐름을 뒷받침할 사회이동의 본질 요인도 3국은 빼닮았다. 원래 사람은 이동한다. 호기심·모험심을 넘어 더 잘 살려는 향상심·지향성이 인류 진화의 근본 동력이다. 따라서 사회이동은 인류의 핵심적인 발달엔진 중 하나다. 이주하는 인류, 즉 사회이동이 밟아온 족적과 사회발전의 축적된 과실은 같은 궤도로 수렴된다. 욕망하는 발길이 진화하는 인류를 만든 셈이다. 결국 사회이동은 단순한 지리 문제가 아닌 사회·문화·경제·정치적 편익 총합과 직결된다. 이때 한·중·일의 사회이동은 공통적인 발현 동기로 묶인다. 사농공상에 입안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성공 인생을 좇는 주술·신화적인 사회의 공통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한·중·일 3국은 요컨대 ‘공부’가 중요하다. 논리 비약일지 모르나, 상대 비교를 통한 우월증빙이자 집단주의를 이끌 승자 표식으로 제격이다. 계약사회인 서구 상식과는 사뭇 비교된다. 많이 옅어졌지만, ‘교육→직업’은 강력·공고한 인식체계다. 치맛바람에 비유되는 뜨거운 교육열만 봐도 3국은 닮았다. 오죽하면 동도서기(東道西器)처럼 테크닉은 서양을 좇아도 가치관은 동양이 최고란 타협 전략까지 나왔을까 싶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내로라할 교육·직업은 특정 공간의 독점자원인 까닭이다. 중앙집권적인 자원집결지인 수도권·대도시가 아니면 양질 학력·우월 직업을 실현할 수 없다. 과거급제까진 아닐지언정 중산층의 삶조차 승률을 높이자면 ‘농산어촌→수도권역’의 사회이동은 불가피하다. 이때 인구감소는 격화된다. 사회이동이 ‘고출생지(로컬)→저출생지(도시)’를 뜻해서다. 안 움직이면 그나마 태어날 잠재 출생이 이동으로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이 총인구 감소 세계랭킹 1~3위에 오른 이유다(일본 2016년·한국 2020년·중국 2023년)<그림 2 참조>.

<그림 2> 주요 국가의 출산율 국제 비교

인구변화 원인은 일반론과 특수론으로 구분

사회이동과 인구감소의 논리 연결을 한국 사례로 살펴보자. 물론 감각적인 감소 원인은 많다. ‘인구변화→사회변화→인구변화’처럼 독립·종속변수의 무한루프가 빚어낸 자기복제적인 순환 결과다. 인구란 게 생산·소비주체일뿐더러 현재인구의 미래 선택마저 통제해 원인·파장은 다층·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하면 인구감소는 둘로 나뉜다. ‘일반론 vs 특수론’이다. 전자는 저출생·고령화에 닿는 이론 및 구조적인 보편배경이지만 반면 후자는 한국(동양 )사회만의 경로의존 혹은 비교 제도의 특이상황을 뜻한다. 분해하면 둘이 뒤엉켜 최초이자 최저의 충격적인 인구통계를 낳았다. 대응 시점마저 놓치자 내려꽂힌 출산율은 인구학의 추계범위마저 이탈하며 독특한 가속도를 완성했다.

일반론의 근거는 ‘고성장→저성장’의 기조 변화다. 인구급변은 고령화율(65세↑/전체인구)의 증가로 나타나는데, 일차적 추동 변수는 분모감소부터다. 분모가 줄면 분자가 그대로라도 비율은 떨어진다. ‘저출생→고령화’의 연결 효과로 동북아 공통 현상이다. 분모급감(초저출생)에 분자급등(베이비부머 대량은퇴)까지 붙었기 때문에 출산율 0.7명(2023년 2~3분기)은 당연지사다. 출산 급감은 저성장과 맞물린 후속세대의 합리적 선택 결과다. 한정 자원의 무한경쟁·확보 난항 속에 고비용의 가족 분화를 택하기란 어렵다. 서구 제국이 저성장 후 인구 유지선(출산율 2.1명)을 깬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특수론은 동북아, 특히 한국만의 출산포기 원인변수다. △수도중심 자원집중 △학력중심 성공모델 △고비용형 가족결성 △성차별적 독박육아 등이 유력하다. 하나같이 ‘저밀도·고출생(로컬)→고밀도·저출생(도시)’의 과도한 수도 전입을 낳는다. 저성장의 전환·압박 중에 ‘잔존한 유교문화 vs 힘겨운 가족분화’의 한국적 특수 허들까지 높아 결혼·출산은 저지·포기된다. 한중일로 봐도 한국이 유독 강고한 ‘입신양명→학력 주도→수도 전입→비용 급증→결혼 포기→출산 감소’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특히 여성은 결혼해도 ‘독박 육아→경력 단절→암울 미래’를 우려해 출산을 주저한다.

MZ세대 궤도이탈 저지할 지방시대의제 부각

맞물린 대책은 많다. 지금도 나름의 처방 카드는 숱하게 등장하고 논의된다. 사실상 더는 없을 정도로 없는 게 없다. 사실 검증은 둘째치고 항간의 논쟁거리인 ‘15년·380조 원’의 천문학적 투입 예산이 그 반증 자료다. 신뢰성은 별도로 두더라도 관건은 그간 숱하게 많은 걸 해왔다는 의미다. 성과는 낙제점이다. 원가조차 못 뽑은 초라한 성적표다. 시대변화를 외면한 고루한 원인분석과 익숙한 단편 대응에 함몰된 결과다. 멈춰 선 사수가 변하는 과녁을 못 맞히듯 고정관념 속 행정편의·복지부동의 표지갈이 정책 세트만 내놓은 탓이다. 기성세대·이해조정의 저항·반발만 신경 쓰며 시대변화의 본질·혁신에 눈감은 총체적 패착에 가깝다. 백화점식 정책나열이 반복될수록 달라진 MZ세대의 궤도이탈은 확대된다.

‘현실(원인)↔대응(해법)’의 미스매칭도 이해된다. 인구 대응 만큼 고비용·저효율의 정책과제도 별로 없다. 인구충격의 현실 체감에 시간 차가 있듯 ‘투입→성과’도 지체현상이 생긴다. 세대 정책이란 말처럼 장기실행·거액 예산이 투입돼도 성과 창출은 한참 후에나 확인된다. 정책실행의 유인·동기가 낮다는 뜻이다. 곧바로 티 나는 인기정책이 아닌 데다 고통 분담마저 전제된 인구 대응이 먹혀들리 만무하다. 의지·능력과 무관하게 윤석렬 정부가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을 국가 의제로 띄우며 ‘지방시대’를 국가 의제로 정리한 게 그나마 실로 반갑고 희망적인 이유다. 최상단 리더십의 관심·의지가 중요한 까닭이다. 물론 뾰족한 수는 없다. 벌써 시작해도 이미 뒤늦어져 상황 반전보다 완화와 적응전략뿐이다. 당위론만 거론되는 차담회보다 실천적 방법론의 결정 기회로만 삼아도 고무적이다.

로컬 이탈 방치한 일본 교토·유바리시의 파산 경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인에 맞는 대책을 실행할 때다. 지금처럼 외면·방치하면 소멸 후의 절멸사회는 기정사실이다. 선행신호는 있다. 한·중·일 중 인구감소의 후폭풍이 빨랐던 일본 사례는 유의미한 반면교사로 기능한다. 포인트는 ‘과도한 도시 집중 vs 급격한 로컬 소멸’이 불러온 사회문제에 맞춰진다. 1%의 도시는 블랙홀처럼 전체자원을 흡수하는 반면 99%의 로컬은 잃어버린 공간답게 박탈·상실감이 난무한다. 특히 시급한 갈등 공간은 다 잃어버린, 그래서 역내 분업의 고리조차 끊어지기 직전의 로컬무대다. 사람도, 돈도, 기회도 없어 ‘안 살고 못 사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12%의 수도권에 51%의 인구가 집중되며 불러온 집값 폭등에 주목하는 사이 88%의 땅덩어리(농산어촌)는 인적 실종의 유령 공간으로 사라질 운명에 섰다. 가시권에 든 고향 증발이 염려된다.

일본 사례를 보면 도시 블랙홀이 불 지핀 지역 과소화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일극 집중인 수도권을 빼면 지방의 중핵·중추도시조차 인구감소형의 공간 폐업이 우려된다. 천년고도 교토(京都)가 상징 사례다. 엔저 수혜·보복 소비로 최근 상황이 개선되긴 했지만, 관광명소 교토의 파산 예고는 잊힐만하면 제기된다. 농산어촌도 아닌 유명도시 교토의 냉엄한 재정파탄이라 위기감은 더 높다. 하물며 연쇄 공포에 임박한 뒤따를 지자체로선 암울할 수밖에 없다. 파산 도시의 데자뷔를 일찌감치 겪어본 일본이라 후폭풍은 더 구체적이다. 2006년 파산 지자체 제1호 불명예를 떠안은 홋카이도의 유바리(夕張)시가 그렇다. 방만 경영·분식회계·투자 실패가 뒤섞여 지역 파탄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이로써 세금은 제일 비싼데 서비스는 가장 못 받는 도시가 됐다. 거주민이 1명도 없는 유령마을만 20곳을 넘겼다. 교토든 유바리든 위기 흐름은 닮았다. 급격한 시대변화와 소홀한 대응체계는 동일 경로다. 정리하면 파산위기의 겉(재정 악화)과 속(인구변화)은 놀랍도록 똑같다.

인구감소 중 방만 재정이 불러온 교토의 지속불능

좀 더 자세히 교토의 파산 위기를 살펴보는 게 좋다. 늘 그렇듯 변제불능의 회사 부도는 일상적이다. 못 벌면 망하는 게 수순이다. 국가도 그렇다. 파산선언(디폴트)·채무조정(모라토리엄)처럼 망조를 경험한 나라가 적잖다. 반면 기초지자체처럼 행정조직의 파산뉴스는 낯설다. 교토 위기가 생소한 만큼 주목받는 배경이다. 다만 찾아보면 사례는 많다. 금융위기 후 2011년 미국에서만 앨라배마 제퍼슨 카운티를 비롯해 4곳이 파산신청을 했다. 2013년 디트로이트도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한국도 지불유예 선언 사례가 있다. 2010년 성남시 등 3개 지자체가 그랬다. ‘세수 감소→부채 행정→변제불능’이 공통 루트다. 원류에는 급격한 인구감소와 방만한 재정운영이 있었다. 교토파산도 현실화된다면 닮은 전철(前轍)을 밟게 될 것이다. 출발은 재정적자다. 교토의 경우 실질부채만 8,500억 엔에 달해 천문학적인 재원 부족이 예상된다. 어려울 때 쓰려고 만든 공채상환기금도 곧 바닥 신세다. 파산 예고는 긴축 경영을 위한 사전포석이다. 놔둘 수 없으니 개혁하자는 메시지다. 특단의 대책도 발표됐다. 공무원 급여를 최대 6% 깎고, 숫자도 550명 줄일 계획이다. 70세부터 적용되는 경로 승차권도 75세로 줄였다. 보육료(연 60억 엔)도 줄어 본인 부담으로 넘어간다. 최고 수준의 복지서비스로 유명하던 교토로서는 체면이 구겨졌다. 그나마 놔두면 미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파산구조는 복합적이다. 직격탄은 어긋난 수요예측에도 밀어붙인 거액의 공공건설에서 비롯된다. 빚으로 지었는데, 채무변제는커녕 운영과정의 만성 적자까지 얹어진 시영지하철이 대표적이다. 승객 감소를 무시한 탁상행정이 만든 전형적인 토건 실패 사례다. 팬데믹으로 관광경제가 붕괴된 것도 한몫했다. 단 파산 본질은 구조·근원 변수로 향한다. 인구변화다. ‘인구 감소↔재정 악화’의 악순환이다. 구체적으로는 ‘출산 감소→고령 심화→활력 저하→경기 침체→세수 감소→복지 압박→인구 유출’의 연결고리다. 저출산·고령화의 과도한 복지지출을 감내하지 못하는 역내 경제의 세수 붕괴가 컸다. 세수 근간인 고정자산세(재산세)·주민세가 저성장·인구병으로 급감했음에도, 과도한 출산장려·노년복지비는 유지됐다. 상황변화를 방관하며 속편한 인기정책을 지속한 게 곳간 바닥으로 직결됐다. 무책임 정치의 복지부동과 무대응 행정의 포퓰리즘이 파산 경고라는 값비싼 대가를 낳았다. 아쉽게도 인구구조는 되돌리기 힘들다. 2023년 다소 회복세지만, 한때 인구감소·사회전출 전국 1위(2020년)도 찍었다. 후속 청년의 정주포기가 컸다. 관광유치용 과잉투자가 빚어낸 주택가격 급등 탓이다. 교토시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평가는 냉혹하다. 재건보다 연명적 미봉책이란 분석이 많다.

인구소멸 막아낼 순환경제형 로컬리즘에 주목

결국 인구문제의 발생 본질은 사회이동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한·중·일을 필두로 한 동북아의 차별적인 쏠림 이동이 서구와 구분되는 충격적인 출산 포기·인구감소의 근본 원인에 가깝다. 욕망 실현을 위해 ‘농산어촌→수도서울’처럼 집적공간으로 향하는 집단 행보가 자원 활용의 비대칭성·불확실성을 조장했다. 이때 충격여파는 고스란히 후속주자에 집중되며, 미래 행복을 위한 현재 고통의 교환구조를 연기·포기한다. 그 결과가 ±0.7명대의 출산율로 되돌아온 것이다. 정도차이는 있지만, 일본·중국도 유교 기반의 입신양명형 사회이동이 후속 주자의 각자도생형 출산 거부로 연결될 것이란 신호·증거는 많다. 생애모형이 다양화되지 않고, 오직 공부를 통한 기회 확장에 집중된 결과다. 와중에 낙점받지 못하고 소외된 처지의 로컬공간이 한계·소멸·과소의 딱지표가 붙는 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농산어촌의 인구소멸을 막을 해법은 뭘까? 지향점은 로컬리즘이다. 이는 인구 유출의 지역공 간을 건강·지속적인 생활 단위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귀환 과제로 수렴된다. 지역주체가 연대한 후 방치·소외된 부채를 포함한 장점 등 자산을 총체적으로 투입해 역내의 순환경제를 구축하는 지향과 방식을 뜻한다. 강조컨대 쏠림은 무너짐을 뜻한다. 인구·고용·산업·금융 등 독과점·블랙홀의 서울 구심력에 맞설 대체 공간·분업역할로서 지방 원심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관건은 다른 접근과 방식으로 정리된다. 지금처럼 중앙 기획과 예산 의존의 도농균형정책은 곤란하다. 장기간 이리저리 해봤는데 불균형과 양극화만 키웠다면 엄밀한 재구성과 유효한 뉴노멀로 갈아탈 때다. 주지하듯 정부 실패는 충분히 다양한 측면에서 경험했다. 달라진 로컬리즘은 기획·투입·실행·평가의 밸류체인 전체 과정에 신모델의 적극 반영이 필수적이다. 즉 기업이윤보다 문제해결이 ESG에 녹여지듯 로컬 복원도 상식 파괴로부터 시작되는 게 좋다.

로컬리즘은 달라진 취지와 새로운 접근으로 시작된다. 창의적 재생모델과 열정적 협업체계로 기존의 균형발전 경로·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마다 경로 축적의 토양 기반은 다르다. 좋다는 모범사례조차 이식에 따른 거부반응의 부작용은 상존한다. 따라서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고 협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로컬리즘은 ‘지역 활력=자원 결합’일 때 지속된다. 전시행정과 달리 자원 협력을 강조하는 달라진 로컬리즘이 절실하다. 즉 숨죽였던 지역 주체가 새롭고 강력하게 순환 생태의 복원 주체로 부각됨을 뜻한다. 정책·예산자원을 쥔 중앙·지역의 행정조직은 물론 로컬기반의 영리자본, 기관·학교·종교·시설주체, 시민조직 등 로컬리즘을 빛내줄 협력주체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이 로컬에서 튼튼한 혈관(지역 기반)과 건강한 새 피(신형 주체)를 구성할 때 보물찾기(지 역자산)와 구슬꿰기(혁신모델)는 시작된다. 강점·약점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한 후 복원 보물을 찾아내 매력적인 구슬로 엮어내는 지역만의 ‘온리원(Only One)’이 권유된다. 아니면 지역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자치분권 위한 중앙차원의 관점 전환 반가워

새는 바가지에 계속해 물을 집어넣을 중앙은 없다. 침몰이냐 부활이냐 고빗사위(고비의 최고점)에서의 방향 타진은 올곧이 지역에 달렸다. 다행스럽게도 지역을 되살릴 복원 환경은 무르익었다. 도농격차의 불행 파장에 맞서 정상 회복을 위한 로컬리즘의 필요와 욕구가 커진 덕이다. 복원 자원과 실행 루트는 강화됐다. 수동적이던 중앙정부도 시점 변경에 적극적이다. 아직은 아쉽지만, ‘중앙파워→지역하방’의 물꼬 확장을 위해 제도 지원에 돌입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2022년), 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2023년) 등 농산어촌의 복원토대를 구축했다. 지방시대 슬로건의 채택도 동일 맥락이다. 재정지원의 새피 수혈은 확대된다. 가령 2022년부터 10년간 총 10조 원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투입된다. 2023년부터는 고향사랑기부제도 가동됐다. 일본의 히트상품인 고향납세를 차용한 것인데 다소 실망스럽지만, 재정확충·세제혜택·답례시장의 일석삼조가 기대된다. 충분하진 않지만, 복원 재원으로 긍정적이다.

중요한 건 중앙집권에서 자치분권으로의 시점변화다. 지방자치 30여 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중앙종속의 제도·관행이 강고하다는 지적이 많다. 행정을 정치의 시녀로, 지방을 중앙의 속지로 여기는 제반 환경은 굳건하다. 이로써 균형발전론이 무색하게 도농 관계는 수도권의 일극집중화와 지방의 한계소멸론으로 귀결됐다. 예산·권한은 물론 산업·인구까지 극단적인 중앙블랙홀로 비화됐다. 따라서 최근의 변화 기운은 반갑고 소중하다. 비정상·불균형의 역내분업·지역경제를 되살릴 호기인 까닭이다. 갈수록 자치분권도 거세질 전망이다. ‘특별자치’의 강력한 요구는 심화된다. 제주(2006년), 세종(2012년), 강원(2022년), 전북(2023년)까지 가세하며 말 그대로의 자치행정을 설파한다.

인구가 아닌 인재를 위한 개혁필요

관건은 실효적인 소멸대응과 성과창출로 모아진다. 하방 결정이 옳다는 강력한 정황증거를 보여줄 때 자치분권은 확대된다. 다만 염려되는 것도 현실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지자체 사업계획서만 봐도 하드웨어 중심에 익숙한 과거내용이 많아 차별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절실함과 시급성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단순히 예산확보용 보여주기가 아닌지 의심된다. 잘 준비된 경쟁력과 비교우위를 내세워 진정성 넘치는 지역복원의 결기를 의지·능력으로 보여주는 게 결정적이다. 어차피 자원은 제한적이고 적자생존은 예외없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지역복원을 위한 로컬리즘에 표준모델은 없다. 229개 기초지자체는 229개 유일무이의 복원모델로 지역특화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게 좋다. 강점·약점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한 후 복원 보물을 찾아내 매력적인 구슬로 엮어내는 지역만의 ‘온리원’이 권유된다. 아니면 지역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새는 바가지에 계속해 물을 집어넣을 중앙은 없다. 침몰이냐 부활이냐 고빗사위에서의 방향 타진은 올곧이 지역에 달렸다.

<그림 3> 일본의 인재 혁명과 생산성 혁명 개요

균형발전을 위한 로컬리즘의 채택은 유사 환경을 먼저 경험한 일본의 대응모델에서도 취지·방향의 힌트를 얻어낼 수 있다. 진화하는 일본형 소멸 대응은 ‘인구절벽→지역소멸→인재혁명’의 흐름을 띄며 최선을 갈구한다<그림 3 참조>. 즉 인재혁 명만이 폐색(閉塞)사회를 구원해 줄 힌트로 받아들인다. 인재 혁명이란 양적인 인구(노동)공급에서 벗어나 질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사회투자(무상)를 뜻하는데, 지향점은 1인당 부가가치의 총량 증가로 정리된다. 아베노믹스 1.0과 2.0 이후 미래투자전략(2017년) 및 Society 5.0(2019년)이 핵심 줄기다. 포인트는 기술혁신·근로개혁에 따른 신성장으로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 생산가능 인구가 줄면서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현상)를 인재 보너스(talent bonus)로 재구성하는 전략이다. 추진모델은 인재 혁명과 생산성 혁명이다. 지역소멸에 대응해도 인구감소는 불가피하기에 충격을 최소화하는 완화 기조 속 적응전략으로 인재 보너스를 내건 셈이다. 청사진은 초스마트사회·고부가가치화로 정리된다. 양적(인구)확대를 벗어나 질적(인재)개선으로 인재력이 발휘되는 순환구조를 기대한다. 유초등부터 대학까지 교육품질을 높인 후 고용확대·소득증대·생활향상·기회창출을 꾀하는 식이다. 일본 대응은 ‘도시집중→로컬리즘’과 ‘인구→인재’가 동시다발로 확인된다. 그만큼 병은 깊고 약은 별로란 의미다. 한·중·일 모두 공통분모화된 인구병을 풀어낼 실효적인 로컬리즘이 요구되는 이유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4권 12호 (2024년 4월 15일)

Tag: 아시아,동북아,인구소멸,로컬리즘,인구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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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우·여찬구 (2021).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의 경제적 영향 및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 해외 주요사례를 중심으로.” 『기업과혁신연구』 44(4), 261-280.
  • 이삼식 (2023). “초저출산현상 극복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 『아시아 브리프』 3(26). 아시아연구소. https://asiabrief.snu.ac.kr/
  • 전영수 (2019). “인구문제와 지역재생― 아베노믹스가 방향을 전환한 이유.” 『한국일본학회』 118(2).
  • 진화영 (2021). “인구 현상에 대한 인식과 함의.” 『보건복지포럼』 2021(3), 70-86.

저자소개

전영수(change4dre@hanyang.ac.kr)

현)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전)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전문위원, 게이오기주쿠대학교 경제학부 방문교수

 

주요 저서와 논문

『인구소멸과 로컬리즘』 (라의눈, 2023).
『소멸 위기의 지방도시는 어떻게 명품도시가 되었나? : 지역과 미래를 되살린 일본 마을의 변신 스토리』 (라의눈, 2022).
『대한민국 인구트렌드 2022-2027』 (블랙피쉬, 2022).
『대한민국 인구·소비의 미래』 (트러스트북스, 2018).
『한국이 소멸한다』 (비즈니스북스, 2018).
“지역재생의 성공조건과 ABS모델의 제안.” 『한국일본학회』 134,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