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은 인간관계와 전통-관습을 중시
이번 조사에서 삶의 의식을 묻는 설문은 모두 12개로서 전통과 관습에 대한 태도에 관한 3개 문항, 현대적 개인적 가치에 관한 5개 문항, 독립적인 4개 문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부록1 참조). 먼저 전통과 관습에 대한 태도를 보면 3개 문항 중에서 “한 파트너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항에 아시아인들은 80% 이상이 동의하고 있다(5점 만점에 평균 4.22). 인간관계는 아시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지켜야 할, 소중한 재산이다. 이해관계보다 사람들 간의 정을 중요시하는 아시아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태도는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가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 세계화 등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 변동을 겪었지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가치관은 여전히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전통적인 관습과 믿음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항에는 74%가 동의하고 있다(평균 3.98). 특히,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동의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Hankook Report에 의하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높은 편이고, 대만, 인도, 홍콩, 태국, 일본, 중국, 한국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한국, 중국에서도 높기는 하나, 앞의 2개국에 비하여는 낮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많은 나라에서 ‘전통-관습’의 중요도가 더 높고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국가에서 중요도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관습에 오랫동안 너무 많이 얽매였기 때문일까? 혹은 문화적인 충격이 컸던 역사 때문일까? ‘전통-관습’의 범주에 속하는 세 번째의 문항은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보다 의무를 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인데, 동의율이 50%수준(평균 3.69)으로 앞의 두 문항보다 동의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인간관계’와 ‘전통-관습’은 중요하지만, 그래도 ‘의무’보다는 ‘즐거움’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권위에 의한 ‘의무’를 강조하기보다는 ‘인간관계’와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 삶을 즐기고자 하는 정서가 그들의 역사 속에 이어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아시아 음식 역사가 인간관계-전통을 중시하는 민중사
아시아인이 인간관계와 전통-관습을 중요시하는 생각은 이들의 식생활에서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아시아는 각 국가마다 나름대로의 고유한 전통 음식이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은 지역적으로 가까워도 음식의 맛과 향은 천지 차이이다. 예컨대 중국이나 일본의 김치에 비해 한국 김치는 매우 독특하다. 동남아시아의 음식 맛은 해물을 발효시켜 만든 간장과 매운 고추를 사용하는 공통점이 있으나 각국마다 특징이 있다. 인도 또한 카레의 고유한 풍미가 강한 곳이며 넓은 대륙이어서 지방마다 그 맛과 향이 다르다. 민중은 지배계급과 달리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산, 들, 바다에서 무엇이든 먹어 보았을 것이다. 구황식품(救荒食品)이다. 그 중에서 무엇을 먹으면 위험하고 안전한지를 모두가 알 때까지 수 많은 가족, 친척, 이웃이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음식역사는 그 민중들의 역사, 민중의 공동역사이다. 음식은 식구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사람들과 ‘나누어 먹음’, ‘같이 먹음’의 철학을 담고 있다. 각 나라마다 천년 이상의 전통적인 향과 맛을 담고 있는 음식을 가족, 친구, 동료와 지금도 같이 먹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식탁 위에는 ‘인간관계’와 ‘전통 및 관습’이 융합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아시아 10개국의 사람들은 전통 음식을 비롯한 자기 선조들의 유산을 존중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조사 결과일 것이다.
아시아인의 높은 도전 정신
‘전통-관습’의 문항에 비해 ‘현대적 개인적 가치’로 분류되는 5개 문항에 대해 아시아인들의 동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 중, “나는 내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에 대한 동의율이 82%로 비교적 높다. 나머지 4개 문항, 즉 “인생의 도전, 새로운 변화 추구”가 75%,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다”에 73%, “내가 나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돈을 버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에 65%, “나는 모험심이 강하다”에 72%가 동의함으로써 동의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아시아인들은 내가 모험적인 사람이나 창의적인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변화의 시대에 도전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희망과 야망은 있으나 자신감은 조금 적은 것으로 해석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서 더 많고, 한국과 일본에서 조금 낮다. 이미 더 선진화되었거나 경쟁이 심한 동북아에 비해 동남 아시아 사람들은 근로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자기 주변에서 인생의 기회가 더 많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중시, 종교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
10개 설문 문항 중에서 위의 두 범주로 분류되지 않은 독립 항목 중에서 “가족들이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에 동의율이 78%로서 상대적으로 높다. 가족을 위한 ‘나’, 가족이 인정하는 ‘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10개국에서 모두 그 점수가 높다. 서구의 개인주의가 아시아 사회 전체에 침투했지만 아시아인에게 가족은 여전히 중요하다. 반면에 “나는 종교적인 사람이다”에 대한 동의율은 62%로서 상대적으로 낮다. 10개국에서 모두 낮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천주교가 퍼져 있는 아시아에서 “나는 종교인이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앙의 강도가 약한 것일까, 혹은 이들에게 종교는 그냥 생활의 의식(儀式)적인 한 부분인가?
젊게 보이고 싶으나,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
또 다른 독립 설문 문항인 “젊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에 대한 동의율은 74%로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반면 “나는 최신 유행에 뒤지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에 대한 동의율은 67%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아시아 사람들은 젊게 보이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유행을 따르고 싶은 충동은 강하지 않다. ‘젊다’는 것과 ‘유행’을 따르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최근 아시아인의 가치관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 아시아 10개국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유지’와 ‘전통과 관습’을 여전히 중요시하지만 의무에 매달리기 보다는 ‘즐거움’을 찾고 있으며, 비록 ‘모험적’이거나 ‘창의적’이지는 않더라도 ‘변화에 도전’하여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가족’은 지금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종교’에 대한 의존도는 높지 않고, ‘젊게’ 보이는 것은 좋지만 ‘유행’에 민감하고 싶지는 않다는 태도이다.
아시아 10개국 사람들은 가족 및 오랜 친구와 함께 퓨전 음식보다는 전통 음식을 즐기고 싶고, 종교에 의존하기 보다는 변화에 도전하여 자신만의 위치를 갖고 싶어하며, 그를 위하여 창의력과 모험심을 키우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들의 민중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나오고 있는 아시아 사람들의 음식, 그 풍미를 유지하고 즐기면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 속의 착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여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