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를 위해 운집한 시민들의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집회 광경
출처: 한겨레 / 촬영: 김혜윤 기자
2024년 연말 동북아시아에 가장 큰 충격을 던진 사건은 한국에서 일어난 12·3 계엄령이었다. 이 사건은 상당 기간의 은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기습적으로 단행된 대통령 친위 쿠데타와, 그것을 단시간에 극복하고 민주헌정 질서를 되찾아가는 한국 시민사회의 강력한 복원력을 함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취약점과 저력을 동시에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45년 만의 느닷없는 계엄령 사태는 극히 짧은 소동으로 귀결되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지만, 그로 인해 초래된 유무형의 정치적·경제적 손실은 상당하며, 한국사회는 적어도 2025년 상반기 동안은 대통령 탄핵 및 그 후속 절차를 포함한 사회적 후폭풍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더욱이 이 사태는 내정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변 국제정세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다. 2025년 동북아시아의 변화 전망을 한국의 관점에서 예측함에 있어 가장 큰 난점은 바로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곳의 역사적 좌표의 불확실성과 사회적 지반의 불안정성인 것이다.
트럼프 2기 미중관계와 양안관계의 변화 전망
이러한 불확실성에도, 당분간 동북아의 거시 변동을 결정할 구조적 변수를 단 하나만 꼽는다면 미중간 패권 경쟁임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작년 11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는 앞으로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대외정책을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적 공존’을 추구했던 바이든 행정부와는 달리,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순수한 고립주의와 선별적 개입주의에 가깝다. 미중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 견제와 압박은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문제보다는 경제 분야에 집중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및 제조업 보호를 위해서 취임 즉시 모든 수입품에 대해 최소 10% 관세를,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최소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시행될 세율에는 어느 정도 변동이 있겠지만,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 정책은 일사천리로 추진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와 시진핑
출처: 연합뉴스 헬로아카이브
중국은 디플레이션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에 대해 트럼프 1기 때 무역협상에서 미국에 양보했던 것과 같은 온건한 방식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시진핑 정부는 대내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경기 침체의 책임과 불만을 미국으로 돌리는 한편, 희토류 등 원자재 수출을 통제하거나 미국산 제품에 대해 상응하는 수준의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국내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2기의 미중관계는 경색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이 ‘강한 중국’,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함으로써 국내 결집과 정치 안정을 도모해 왔다.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그동안 미국 등 서구 사회가 주장해 왔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립구도를 전환할 수 있는 기회로 역이용할 수도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결손을 주장하며 자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할 텐데, 이 과정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강화에 주안점을 두게 될 것이다. 그동안 스스로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강조해 온 중국은 미국의 패권 전략과는 차별화된 글로벌 담론과 제3세계에 대한 꾸준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강화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은 트럼프 2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역이용하여 국제사회에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자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만에 대한 개입 의지 약화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워 대응할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의 거의 전부를 가져갔으며, 대만은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2기에 반도체 및 군사지원 문제 등에서 미국과 대만 간에 마찰이 발생한다면 미-대만 관계는 이전보다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여가 줄어들면 대만 민진당 정부의 독립 의지도 약화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도발과 심리전을 통해 대만 내 안보 불안과 대미 불신의 확대를 꾀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대만 문제에 대한 여론전을 전개하여 양안관계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불투명한 이시바 소수내각과 일본 경제의 향방
작년 9월 말 일본 자민당 총재가 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11월에 제103대 총리로서 제2차 이시바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시바 총리는 우여곡절 끝에 총리로 재선출되었지만, 범여권 세력 의석수가 절반 이하인 소수여당 체제이기에 야당과 불안한 협력을 이어가면서 자민당의 내부 결속과 지지율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시바 내각이 이 난제 해결에 실패하여 야당과 불화하고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자칫 ‘식물 총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올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부에서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해이지만, 소수내각으로서 정권 기반이 취약한 이시바 정부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단기간 내에 한일간 과거사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시바 총리 역시 1910년 일제 강제병합의 합법성 주장, 65년 체제의 유지, 독도(다케시마) 영유권 주장 등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려우며, 더구나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에 쏠린 일본 국민들의 관심을 역사적 성찰로 끌어올 만큼 일본사회의 현 상황이 녹록지도 않다. 대외적으로 올해 일본은 북한군의 러시아 전쟁 파병으로 표면화된 북러 밀착과 북중러 연대 가능성에 대응하면서 미일동맹 및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 그리고 일본의 자체적 군사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올 4월 중순부터 6개월간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세계박람회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진 일본경제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엑스포는 경제효과가 2조 엔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속에 간사이 지역 차원에서는 지방도시 쇠퇴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2020년 도쿄올림픽 이후의 경기부양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준비해 왔지만,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올해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1947-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모두가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가 되는 이른바 ‘2025년 문제’가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회성 메가이벤트에 가려 지방소멸이나 고령사회화에 대한 장기적이고 전략적 대응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이 만성적 침체에 놓인 일본사회의 현 상황이다.
김정은 체제의 생존전략과 한반도의 미래
김정은 체제 수립 이후 심화되어가는 체제 위기 속에서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과 평화통일 포기 선언 등 그동안 의미심장한 변화를 이어왔다. 작년 6월에는 평양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하여 북러관계를 냉전시대의 동맹관계 수준으로 격상시킨 데 이어, 급기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했다. 파병의 대가로 북한은 외화 수입과 첨단 군사기술 획득 등 적지 않은 실익을 얻게 될 것인데, 이는 미국의 제안이 있더라도 당장 김정은이 트럼프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동기가 크지 않음을 뜻한다. 하지만 러-우전쟁이 종식되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이 급감할 경우, 북한은 물가 폭등과 외화난, 자재난 등으로 경제적·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면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대화 재개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만일 트럼프가 한미 군사훈련의 축소 내지 중단 카드를 꺼내 든다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은의 태도는 더 적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과연 올해 김정은이 트럼프와 또 한 번 ‘러브레터’를 주고받으며 ‘통미배남(通美排南)’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을 보게 될까.
하지만 작년 말 계엄령을 준비하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부추긴 상황에서 오히려 잔뜩 움츠러들었던 북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오물풍선 세례나 대남 확성기 방송의 연출된 공격성에 가려진 김정은 체제의 속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만성화된 전면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주변 강대국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위기를 타개해 온 북한의 생존전략이 올해 트럼프 2기라는 변수를 맞아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상에서 간략히 스케치해 본 바와 같이, 2025년 동북아시아는 미중 패권경쟁의 역학구도 변화 속에서 제각기 생존을 도모하는 각국 간의 각축전이 전개되는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 양안관계, 역사갈등과 얽힌 낡은 레퍼토리들이 요소요소에서 재등장할 것이며, 불평등, 지역쇠퇴, 소수자·인권 문제와 같은 사회적 현안들과, 경제위기, 인구위기, 기후위기를 포함한 글로벌 복합위기의 산적한 쟁점들이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각국 정부의 전략적 판단이 어우러져 국내외의 새로운 이슈로 제기될 것이다. 어느덧 21세기도 사반세기를 경과한 세계사적 대전환의 한가운데에서 한국은 시대착오적인 반민주적 내란의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값비싼 진통은 과거 한국의 누적된 역사적 카르마의 소산이겠지만, 그 앞날은 여러 힘들의 작용에 따라 열려 있다. 2025년, 이 결말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그 선택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