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선과 대한민국의 가치외교

권헌익 (서울대학교)

평양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선에 자국군을 파병한 소식에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북러의 군사적 유착이 자국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이글은 유라시아의 끝과 끝을 전쟁의 폭력과 위협으로 연결하는 이 파병 사건이 정부가 그간 천명해 온 가치외교에 어떤 함의를 갖는지, 우리 외교는 과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사진 1> 우크라이나 전사자 추모의 벽에 헌화하는 윤석열 대통령
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2002년 저서 『북조선』에서 와다 하루키(Wada Haruki) 교수는 북한의 국가론을 논하면서 가족국가와 유격대국가라는 두 가지 틀을 제시한다. 가족국가의 틀은 수령을 정점으로 인민이 가족의 끈끈한 정으로 뭉친 국가이며, 여기서 수령은 인민의 정치적 아버지이다. 오늘날 북한이 말하는 이른바 백두혈통은 이 틀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틀인 유격대국가는 북조선의 헌정사에서 중요한 에피소드인 항일 유격대 역사와 관련한다. 정치적 아버지의 권위가 유격대 대장의 역사적 권위에 근거한다는 측면과 함께 가족국가의 구성원인 인민은 이 권위를 파르티잔의 전투적인 정신으로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 근래에 북한이 선전해온 선군사상, 총대정치 혹은 총폭탄정신 등이 이 유격대국가의 틀과 관련한다. 그런데 와다 교수는 북한의 유격대국가는 일정한 환골탈태의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 과정의 배경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구소련 제국의 해체로 상징되는 이른바 탈냉전 시대의 도래이다. 그러면서 이 과정을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와다 교수의 말대로 오늘날 북한은 더이상 유격대국가가 아니다. 아니 그게 아니면 유격대국가에서 벗어나고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목표는 그들이 말하는 강성대국, 구체적으로는 핵보유국가이다. 물리적으로는 이미 이 목표를 달성하고 이제 이 국가의 모습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일이 남아있다. 유격대 정치가 비대칭의 군사력으로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저항하는 형태라면, 정규군국가의 정치는 이 비대칭의 관계를 전복하는 정치이다. 그 대상은 경제력과 문화적 힘이 자신에 비하여 월등한 대한민국일 수도 있고 군사적인 힘의 의미에서 한미동맹일 수도 있다. 한 예로 지난 10월 22일 백두혈통의 멤버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평양의 무인기 출현을 두고 “핵보유국을 상대로 감행한 군사적 도발”이라며 “서울과 끼예브 정권의 정신나간 것들이나 할 짓”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오늘날 국제정치의 장에서 회자하는 소위 다극화의 세계에서 핵을 틀어쥔 북조선은 러시아가 그러하듯이 자신도 그 세계에서 하나의 축, 하나의 중심이라는 인식이다.

그녀의 언사에서 끼예브가 덩달아 들어간 배경은 물론 오늘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유착과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자국군을 파병한 사실이다. 후자는 유라시아의 동서를 전쟁의 폭력과 핵위협의 언어로 연결하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다. 이 새로운 사태를 직면하여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물론 유럽연합과 나토 역시 긴장하고 있다.

<사진 > 2023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였다(좌). 2024년 11월,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면담 사실이 알려졌다(우).
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러시아 대통령궁(Kremlin.ru)

북한이 유라시아의 서부 전선에 참전한다면 남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며칠 전 외교학 전공 후학이 던진 질문이다. 그에 의하면 자신을 비롯 학과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실정치론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한다. 자국의 역량과 한계 그리고 지역과 세계의 현실에 기반하여 조심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보와 국익을 중심에 두고 접근하는 오래된 국제정치 패러다임이다. 같은 시각으로 에드워드 카(Edward Carr)의 1939년 저작 『20년의 위기』를 소환하는 글도 있다. 『20년의 위기』는 일이차대전 사이의 시공간에서 우드로 윌슨을 비롯한 당시 자유주의 이상론자들을 비판한 국제정치학의 고전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현 정부는 보편적 가치를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외교, 오늘날 국제정치학 이론 강의에서 현실주의와 종종 대척점으로 학습되는 자유주의적 이상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인도태평양이라는 오늘날 아시아 자유주의 연대의 지평에서 한국이 중요한 행위자라는 자의식과 함께 한국전쟁에 관한 일정한 역사 인식에 기반한다. 국제전으로서의 한국전쟁에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들이 한국을 도와서 참전하였듯이 이제는 중견국인 대한민국이 동일한 가치를 위하여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인식이다. 이 인식은 현재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같은 논리가 현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주장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언론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와다 교수가 말하는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의 전환 과정에 무력의 의미 역시 변화하는 측면이 있다. 파르티잔은 지향하는 바가 있는데 북한의 계보에서는 이를 민족해방 내지 민족통일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오늘의 북한 지도부는 그들의 계보에서 이 지향점을 더이상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른바 한반도 두 국가론 혹은 적대적 두 국가론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통일 그리고 심지어 민족과 연관된 조형물들과 수많은 언어를 제거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 조직에 통일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민족이란 언어를 지우겠다는 이 작업은 괴이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자기모순이다. 바로 여기에, 민족 분단의 역사적 배경에 근거한 가치의 영역이 있다. 이 가치란 오늘날 가치외교가 추구하는 보편 가치와는 비록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에서 버릴 수 없는 특수한 가치이다. 비록 어느 정치권력이 자신의 이기적인 이유로 이 가치를 내다 버리고 싶어도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이것을 지켜야 하는 당위가 있다. 여기서 실재한다는 것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사실 얼마나 인위적인 것인가라는 논쟁과는 별개로 지난 세기 전체에 이 땅에서 하나의 중요한 가치로 존재해 온 역사적 현실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의 가치외교에 존재하는 가치는 보편의 가치와 함께 분단이라는 우리만의 역사적 현실에 근거한 특수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후자는 비록 특수하긴 하지만 보편의 영역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가치이다. 왜냐면 특수하게 보이는 이 가치가 오늘날 가치외교가 추구하는 보편가치의 계보에, 그 기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북한 공히 헌정사의 토대인 1919년 삼일운동이 일차대전의 파괴를 배경으로 한 윌슨의 이른바 이상주의적이고 극히 불완전한 민족자결주의 선언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이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임을 상기하면 분명하다. 덧붙인다면 근대국가를 이기적인 근대적 개인의 확대치로 정의하는 오늘날의 현실주의론의 배경에 초기 냉전의 환경과 그 환경에서 미국의 자기중심적 세계인식이 있다.

대한민국의 가치외교에 보편과 특수가 공히 중요하다면 후자, 민족의 평화적 통일의 이 가치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장에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살상무기를 보내는 것은 모순이다. 한국은 이 전장에 이미 의약품 등 인도주의적 지원과 지뢰 제거 차량 등 비살상 군수품을 지원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방어용 무기를 제한적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 이는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살상무기는 우리의 특수한 가치와 충돌한다. 이 전쟁이 남의 나라 전쟁이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그 전쟁이 이제는 우리의 안위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전쟁이 되어 버렸고 그 전장이 이제는 우리 민족의 구성원을 포함한 공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비상사태에는 북한을 적이라고 규정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이란 가치의 영역에서는 그리고 이를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의 영역에서는 북한의 인민은 적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자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비록 남의 손에 의해서라도) 코리아의 무력이 (비록 남의 나라 군복을 입고 있다고 할지라도) 코리언의 생명을 파괴한다면 그 후과를 과연 누가 짊어지게 되겠는가?

어느 누가 자신만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그 전장의 현실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우리의 가치외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중한 상황에도 우리는 보편가치와 함께 우리의 가치를 지키는 외교, 이것이 진정한 가치외교가 아닐까? 저들이 저들만의 편협한 국익을 위해서 민족을 헌신짝처럼 버릴 때 우리는 우리 공동의 가치를 더욱 가열차게 지키면서 국제 무대에서 넓은 가치외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함께 하지만 정체성 있는 가치외교 말이다.

문제는 가치와 현실의 충돌이 아니다. 가치의 인식에 우리의 가치가 불분명한 것, 이것이 문제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4권 28호 (2024년 11월 18일)

Tag: 북한, 파병, 우크라이나, 러시아, 가치외교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권헌익·정병호 (2013). 『극장국가 북한: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창비.
  • 와다 하루키. 남기정·서동만 역 (2002).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돌베개.
  • 차태서 (2024). 『30년의 위기: 탈단극 시대 미국과 세계질서』.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Karman, M. M. (2018) “International Anarchy Revisited: A Critique on Waltz’s Interpretation of Rousseau,” Global: Jurnal Politik Internasional, Vol. 20, No. 1, pp. 1-14.
  • Schmitt, C. (2007). Theory of the Partisan. Telos Press.

저자소개

권헌익(hk2159@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교수,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 Senior Research Fellow in Social Science, 영국 학술원 회원
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초빙석좌교수, 런던정경대학 인류학 교수

 

주요 저서

Spirit Power: Politics and Religion in Korea’s American Century (Fordham University Press, 2022).
After the Korean War: An Intimate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0 <전쟁과 가족>).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 (Rowman & Littlefield, 2012 <극장국가 북한>).
The Other Cold War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또 하나의 냉전>).
Ghosts of War in Vietna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