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이스라엘 폭격으로 붕괴된 레바논 남부 지역
출처: Palestinian News & Information Agency (Wafa) in contract with APAimages
무선호출기 테러 이후 속수무책으로 공격받는 레바논
헤즈볼라(Hezbollah)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급습 이후 꾸준히 하마스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에 공격을 지속하고 있었다. 약 1년간 서로 공격을 주고 받기만 하던 양측의 전세는 2024년 9월 17일과 18일 양일간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발생한 무선호출기와 무전기 폭발 테러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여러 외신에 따르면 이번에 폭발한 이 무선호출기는 사전에 이스라엘에 의해 폭발물이 삽입된 채 재조립되어 유통되었다. 헤즈볼라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지도층을 제외한 다수의 조직원 분포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효율적인 방식이다. 이 테러는 헤즈볼라에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왔다. 해당 사건 이후 대중 앞에 나타난 헤즈볼라의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 (Hassan Nasrallah)는 “레바논 역사상 전례 없는 중대한 안보 및 인도주의적 타격”이라고 언급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을 강조했다.
양일간 일어난 테러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연속적인 포격과 같은 방식으로 레바논 내 헤즈볼라의 근거지와 무기고를 대상으로 한 집중 공격을 지속했다. 그 결과 약 120만 명이 넘는 이들이 고향을 떠나 피란민이 되었고 이들이 떠나온 집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거의 파괴되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헤즈볼라의 주요 거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결국 수장을 포함한 다수의 주요 지도층을 사살하는데 성공하여 헤즈볼라 소탕이라는 공격 목표를 일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목표물이 분명한 정밀 타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민간인 사망자, 부상자, 이재민이 발생했다. 2024년 9월 17일 이후 레바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격은 단기간에 상당히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바논 정부의 실질적 부재는 레바논 국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일부 레바논 국민은 정부의 부재와 함께 헤즈볼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헤즈볼라가 지속해서 외부 세력의 지원을 위해 자국민을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2006년에 발생한 이스라엘 침공,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인해 2016년에서 2017년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순니 지하드 단체의 자살폭탄 테러, 2023년 10월 이후 하마스 지원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모두 헤즈볼라가 연루되어 있다. 한편 시아파 국민 중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이들은 거주지의 상실로 인한 피란민이라는 상황에 더해, 저항의 아이콘이자 자신들이 유일하게 믿는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사망 소식으로 절망에 빠져있다. 이들 중 일부는 헤즈볼라의 동맹이자 지지자인 이란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한 분노와 실망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인구의 1/4 이상의 피란민 발생과 인도주의 위기의 지속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약 2주간 약 1,200명이 사망하고 약 3,400명이 부상을 입었다. 본격적인 공습이 시작되자 레바논 동부 베카 (Bekaa)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시리아인 30만 명과 레바논인 약 10만 명은 인근 국경을 통해 시리아로 건너갔다. 주로 레바논 남부 지역과 베이루트 남부 외곽 다히예 (Dahiyeh, 이후 다히예) 주민들은 거주지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레바논 정부에 따르면 숫자가 약 120만 명에 달하며, 이는 레바논 전체 인구의 1/4이 넘는 적지 않은 수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900여 곳의 대피소는 더 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친척 집에 머물거나 호텔과 같은 숙소를 예약할 수 없는 대부분의 피란민들은 광장 등에서 노숙하거나 학교와 같은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2019년 본격적인 경제 붕괴와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와 코로나 위기로 인해 중첩된 경제 위기,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대통령 선출 실패라는 국가 부재 상태의 레바논 정부는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맞이한 자국민을 보호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을 마련하기에 역부족인 상황이다. 내전 종전 이후 레바논은 국가 재건 및 기반 시설 구축에 실패했다. 사실, 실패했다기보다는 종파 간 갈등 속에서 국민 모두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형식의 국가 집권 체제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에 더해 내전 시기부터 각 종파의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던 정치 엘리트층은 자신이 속한 정파나 개인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국영 산업보다 민간 산업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주머니를 채워갔다. 결과적으로 레바논 국민은 내전 종전 이후 수도, 교통, 에너지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국가 기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삶을 약 30년 동안 견뎌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고질적인 인프라 문제는 다수 피란민이 발생하면서 현재 국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2020년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와 코로나 19 팬데믹에 더해 경제 위기로 인해 심각하게 악화된 의료 인프라는 마비 상태가 되었다. 2024년 9월 중순에 발생한 무선 호출기 및 무전기 테러로 인해 이틀간 3천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레바논 보건 분야는 의약품 부족, 의료 인력 부족, 혈액 부족 등 복합적 위기 상황을 맞이했다. 한편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피란 온 이들을 맞이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부족한 물, 전기, 연료를 나누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누가 가장 사용이 힘든 구호 물품이며, 사람들이 비누 없이 세정할 수 있는 물티슈를 필요로 한다는 베이루트의 한 사립 구호 단체장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현재 상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급히 거주지를 빠져나온 이들은 당장 노숙을 하더라도 잠을 잘 수 있는 담요나 이불을 쉽게 구할 수 없는 데다,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분유나 기저귀 등이 필요한 상황으로 외부의 인도주의적 원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학령기의 아동 중 약 40%가 피란민에 포함되어 있어 이들의 학습권 보장이 불투명해졌다. 이에 더해 일부 비(非) 시아파 다수 거주 지역에서는 시아파 실향민들이 다수 정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평하고 있다. 베이루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레바논 지역은 특정 종파가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수의 타 종파를 자신들의 거주 지역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약 이스라엘의 폭격이 장기화하여 시아파 국민이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레바논 내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종파 간 갈등 및 지역 주민 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지도 1>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 국경 분쟁 지역
출처: Wikimedia Commons, 저자: Omernos
레바논이 당면한 여러 문제
아무리 이스라엘에서 헤즈볼라와 관련된 지역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일 새벽 폭격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전체 레바논 국민의 불안과 공포는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레바논 국민이 겪고 있는 다양한 피해 중 가장 주목해야 하는 문제는 바로 이스라엘에서 공격에 사용하고 있는 불법적 화학무기이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을 공격할 때 사용했던 무기 중 백린탄(white phosphorous)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미 레바논 남부 지역 주민 중 백린탄으로 인한 신체적 피해로 인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레바논 화학자 단체(Syndicate of Chemists in Lebanon)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습에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무기에 열화우라늄(depleted uranium)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게 나타났다. 국제법적으로 불법인 이러한 화학무기가 베이루트와 같이 인구 밀집 거주 지역에서 사용되었다면 해당 무기의 폭발 이후 발생하는 방사능 먼지는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입혀 레바논 국민이 입을 피해는 장기화될 수 있다.
레바논의 인도주의적 위기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국제사회의 원조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사안은 2년간 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대통령을 선출하고 내각을 구성하여 국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측은 2006년 제시된 유엔 안보리 결의 1701호를 이행하여 헤즈볼라의 비무장화와 더불어 국경 지역의 블루라인(Blue Line)에 레바논 정부군과 유엔 평화유지군(UNIFIL)만이 주둔하도록 배치하면서 휴전에 합의하는 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이다. 현재 레바논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 1701호를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기존 정치 엘리트들은 일부 합의를 통해 대통령 선출 기한을 앞당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레바논 정치 엘리트들은 자국민의 안보가 최우선 사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분열된 국민의 정서를 하나로 통일시킬 방안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