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중국 정점론 출처: The economist (2023)
새로운 판본의 ‘중국 위기론’?
2023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중국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논의된 주제(hot issue)는 아마 ‘중국 정점론(peak China)’과 ‘중국 위기론(China crisis)’일 것이다. 중국 정점론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의 성장 가능성과 미·중 간의 패권 경쟁 문제를 다룬다. 이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구조적 한계로 인하여 정점에 도달했고, 이 때문에 미래에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근거는 첫째, 급속한 인구 감소와 심각한 고령화, 둘째,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과 식량의 해외 의존 심화, 셋째, 미국의 중국 견제와 첨단 산업(특히 반도체)의 한계 직면, 넷째, 시진핑 일인 독재에 따른 정치체제의 경직화, 다섯째, 중국의 대만 공격과 미·중 간의 군사 충돌 가능성 증가 등이다. 중국 정점론은 세계적인 언론과 저명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마치 ‘정설’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반면 중국 위기론은 중국 정점론을 확대 재생산한 것으로, 단기적으로도 중국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체제 위기나 붕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근거는 첫째, 자산시장의 위기(즉 부동산 거품의 붕괴와 증시의 장기 침체), 둘째, 이에 따른 소비위축과 경기침체, 셋째, 정부 재정 적자의 확대와 재정 위기, 넷째,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금융위기 가능성, 다섯째, 외국자본의 이탈과 민간 자본의 투자 위축, 여섯째, 청년 실업률의 급증과 사회 불안정의 고조, 일곱째, 중국-대만 관계의 위기 증가, 여덟째, 시진핑 일인 지배와 정책 경직성의 심화다. 이는 주로 한국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퍼져 나갔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도 중국 전문가보다는 경제학자, 시사평론가, 언론인 등이다.
반면 중국의 싱크탱크나 학자들은 ‘중국 정점론(中國崛起頂峰論)’에 대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인민대학의 충양(重陽) 금융연구원은 작년 5월과 올해 1월에 이를 반박하는 두 편의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점론의 판본은 여러 가지지만 공통으로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개념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즉 정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경제 성장률인지 아니면 경제 규모(GDP)인지, 절대적인 정점인지 아니면 상대적인 정점인지, 성장 속도 둔화인지 아니면 정체 혹은 쇠퇴인지 불명확하다. 둘째는 논리상의 허점으로, 중국 경제의 일부 문제를 들어 전체를 재단한다. 셋째는 근시안적 시각으로, 중국 경제의 기초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없다. 넷째는 “약한 연구로 강한 결론을 도출”하는 문제로, 이런 주장은 “관점의 표현”이지 “관점의 논증”이 아니다.
한국의 전문가와 언론도 이에 적극 개입해 왔다. 각종 연구소의 보고서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대체로 중국 정점론은 수용하는 것 같다. 사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 같은 국제기구, 세계적인 민간 투자회사들도 중국의 성장률 둔화를 전망하면서 중국 정점론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중국 위기론에 대해서는 논쟁이 분분하다. 소수의 중국 경제 전문가는 이것이 과장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와 평론가들은 중국 위기론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 위기론이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 유튜브만 보고 있으면, 당장 혹은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이 망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표> 세계 상위 10대 경제 대국의 경제 상황(2023년 기준)
국가 |
GDP(조 달러) |
1인당 GDP(천 달러) |
성장률(%) |
국가 |
GDP(조 달러) |
1인당 GDP(달러) |
성장률(%) |
미국 |
26.954 |
80.41 |
2.5 |
영국 |
3.332 |
48.91 |
0.1 |
중국 |
17.786 |
12.54 |
5.2 |
프랑스 |
3.052 |
46.32 |
0.8 |
독일 |
4.430 |
52.82 |
-0.3 |
이탈리아 |
2.190 |
37.15 |
0.9 |
일본 |
4.231 |
33.95 |
1.9 |
브라질 |
2.132 |
10.41 |
2.9 |
인도 |
3.730 |
2.61 |
7.8 |
캐나다 |
2.122 |
53.25 |
1.0 |
출처: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Statista (GDP 성장률)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논의에 앞서 2023년 중국의 경제 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표>에 따르면, 세계 10대 경제 대국 중에서 중국(5.2%)은 인도(7.8%) 다음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참고로 5.2%의 성장률 중에서 최종 소비재가 4.3%, 투자가 1.5%, 수출이 –0.6%를 차지한다. 이는 내수(민간 소비와 정부 소비)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수출은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3조 6천억 달러를 기록하여, 전년 대비 7.1%나 증가했다. 무역 수지도 8,890억 달러 흑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간단한 통계 자료만 보아도 중국 위기론은 근거가 빈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 규모가 1조 7천억 달러고 인구가 5천만 명인 한국은 1.4%, 경제 규모가 1조 3천억 달러고 인구가 2,300만 명인 대만은 1.3% 성장했는데, 한국과 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위기론은 유행하지 않았다. 마이너스 성장률(-0.3%)을 기록한 독일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반면 17조 8천억 달러의 경제 규모를 가진 14억 2천만 명의 중국이 5.2% 성장했는데 위기라고 진단한다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중국 정점론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망하는 것이라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정설로 받아들이기에는 검토해야 할 문제가 매우 많다.
이처럼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객관적인 ‘사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의 문제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위기론을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사실로서의 위기’를 반영한 위기론(‘진짜 위기론’)이고, 다른 하나는 ‘인식으로서의 위기’에 근거한 위기론(‘가짜 위기론’)이다. 전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위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위기론인 데에 비해, 후자는 보는 사람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나 주관적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위기론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 위기론은 ‘인식으로서의 위기론’에 가깝고, 중국 정점론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사실 지난 40여 년의 개혁기를 보면, 중국은 10년 주기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었다. 즉 ‘사실로서의 위기’는 수없이 있어 왔다. 예를 들어, 개혁 정책을 추진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 거대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다. 첫째는 내부적 위기로, 1989년 4~6월에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이다. 이를 통해 공산당은 국민으로부터 통치 정통성을 의심받는 존재로 전락했다. 둘째는 외부적 위기로,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1991년 소련의 붕괴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제 ‘사회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1992년 초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와 1992년 말 공산당 14차 당대회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 채택을 통해 개혁에 더욱 매진했고, 그 결과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뒤인 1997~98년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중국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공산당 15차 당대회(1997년)를 전후로 본격화한 국유기업 개혁으로 인해 이미 3천만 명에서 4천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는 설상가상으로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더해 1997년 7월에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은 홍콩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국가적 ‘체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에 직면한 중국은 주룽지 총리 주도로 국유기업 개혁과 홍콩 안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아시아 강대국(regional power)’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다시 10년 뒤인 2008년에는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번에는 위기의 진원지가 선진국의 심장인 미국이었다. 중국은 시장·기술·자본의 상당수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에 금융위기는 심각한 충격이었다. 또한 2009년에 집권한 오바마(B. Obama) 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면서 중국 견제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혁신(創新, innovation) 주도의 경제 전략과 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라는 대외 전략을 민첩하게 추진하면서 국력을 증진하고 국제적 지위도 높였다.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 무렵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다스린다는 ‘G-2(Group of Two: 주요 2개국)’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 미·중 경제가 한 몸처럼 결합해 있다는 ‘차이메리카(Chimerica: China+America)’라는 말도 한때 유행했다. 이제 중국이 ‘세계 강대국(global power)’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국이 경험한 가장 최근의 국가적 위기는 2019~20년의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이다. 코로나19가 중국을 강타했을 때, 국내외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중국판 체르노빌 사건’이라고 불렀다.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과 정부의 은폐 시도가 소련의 붕괴를 초래한 계기가 되었듯이, 코로나19도 중국에서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예측은 잘못되었다. 최소한 수치로만 보면, 중국은 성공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한 국가 중 하나다. 단적으로 중국은 3년 동안 연평균 4.5%의 양호한 성장률을 기록했고, 적은 수의 중증 감염자와 사망자를 기록하면서 코로나19를 통제했다.
이와 같은 개혁기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중국 정점론이나 중국 위기론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에는 ‘사실로서의 위기’가 계속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10년 동안 연평균 10.2%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던 후진타오 시기(2002~12년)에도 ‘중국 위기론’이 유행했었다. 당시에 한 저명한 미국의 중국 정치 전문가는 중국이 ‘이행의 덫’에 갇혀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우리는 중국의 부상이 아니라 ‘붕괴’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저명한 미국의 중국 경제 전문가는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가 심각한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에 전면적인 자본주의적 개혁이 없는 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모두 ‘인식으로서의 위기론’이었다. 현재의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도 이럴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팬데믹 충격의 ‘시차 효과’?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주장이 다시 유행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볼 때,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코로나 팬데믹 충격의 ‘시차 효과(time-lag effect)’ 때문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선진국은 2021년 말에서 2022년 초에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을 경험했다. 이 기간에 ‘코로나와의 동행(with Covid)’ 정책을 채택하면서 서너 달 동안에는 의료체계의 마비를 포함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곧 팬데믹이 통제되면서 정상 생활이 가능해졌고, 사회도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이보다 1년이나 늦은 2022년 말에서 2023년 초에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을 경험했다. 즉 2022년 1년 내내 ‘제로 코로나(zero Covid)’ 정책을 고수하다가 그해 12월 26일이 돼서야 코로나와의 동행 정책을 채택하면서 본격적인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예를 들어, 2022년 12월 6일에 50만 명이었던 감염자는 12월 22일에는 700만 명으로 14배가 증가했다. 그 결과 농촌과 중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베이징시와 상하이시 같은 대도시도 의료체계의 마비 등 대혼란을 겪으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때 ‘안정적인’ 세계와 ‘혼란스러운’ 중국이 대비되면서 중국의 팬데믹 충격은 더욱 크고 심각해 보였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의 후유증으로 인해 2023년 상반기에는 중국의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즉 부동산과 주식 시장, 외국인 투자와 민간투자, 민간 소비와 수출 등 대부분의 경제 지표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게다가 미국의 중국 견제는 더욱 강경하게 바뀌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2월 발발)도 예상과는 달리 1년이 넘는 장기전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2022년에는 3%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경제 성적표가 발표되자 중국이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이처럼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중국이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을 겪으면서 보여주었던 사회경제적 혼란을 배경으로 등장하여 급속도로 확산한 것이다. 즉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적 요인’이 조성한 경기침체 국면을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 과장 및 확대 해석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이다. 만약 코로나 팬데믹 충격의 ‘시차 효과’가 없었다면 이런 주장이 등장했어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기부양,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은 매우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는 데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추진할 경우는 그런 문제로 인해 중국이 실제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사실로서의 위기론’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예를 들어, 실업 문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의 지역 봉쇄 정책으로 인해 건설 경기가 위축되고, 음식과 숙박 등 서비스 업종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 결과 3억 5천만 명이 넘는 농민공(農民工) 중에서 1억 5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여기에 더해 자영업자와 소형 민영기업가도 최소한 3천만 명 이상이 실업자가 되었다. 청년(16~24세) 실업률은 20%를 넘어 새로운 사회 문제가 되었다. 단적으로 2022년에는 1,100만 명, 2023년에는 1,152만 명에 달하는 대졸자 중에서 최소 30~40% 이상이 미취업 혹은 불완전 취업 상태에 있다. 이를 합하면 2024년에는 최소한 800만 명에 달하는 대졸자가 실업 혹은 반(半)실업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만약 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누적된다면 사회경제적 발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정부 재정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중국이 3년 동안 코로나 봉쇄 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하면서 재정 적자와 정부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의 총부채(가계·기업·정부 부채의 총합)는 2023년 말 기준으로 GDP의 287.8%인데, 이중 가계 부채는 63.5%, 기업 부채는 168.4%, 정부 부채는 55.9%다. 따라서 절대 규모(GDP의 55.9%) 면에서만 보면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해 심각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일본의 정부 부채는 GDP의 255%, 미국의 정부 부채는 GDP의 124%이다. 문제는 중국의 정부 부채가 전년 대비 10%나 급증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쓰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그렇게 되면 재정 적자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사회경제적 문제 중에는 정부가 해결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책 ‘의도’에서 일부러 방치하는 것도 있다. 부동산 대기업의 도산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있었던 지역 봉쇄 정책은 이미 거품이 꺼지고 있던 부동산 시장을 더욱 침체에 빠트렸다. 그런데 정부는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2020년부터 부동산 투자를 통해 경제를 부양하던 방침 대신에 첨단 기술 분야(예를 들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고품질 발전(高質量發展)’ 방침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침에 따라 정부는 헝다(恆大) 그룹이나 비구이위안(碧桂園) 그룹 같은 부동산 대기업의 부도를 용인했다. 이는 단기적인 경제 침체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산업구조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19 기간과 그 이후에 중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국적으로 개별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주요 국가는 아마 중국이 유일할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국은 천문학적인 현금을 살포했고(이것이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도 재난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다. 또한 중국은 코로나19 방역에는 많은 재정을 투입했지만, 소비 진작이나 다른 경기부양책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 방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23년 10월에 개최된 중앙 금융 공작회의와 12월에 개최된 중앙 경제 공작회의를 보면 이런 방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경기부양책을 통한 경제성장보다 정치 사회적 ‘안전(安全)’을 중시할 것이다. 또한 금융 정책도 양적 완화 대신에 ‘금융 안전 확보’를 우선시할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확대하고, 금융기관이 통화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금융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기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지방정부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중앙 정부가 30~50년 만기의 초장기 국채를 1조 위안(한화 약 189조 원)을 발행하여 지원할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가 중국의 경제 문제를 볼 때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문제인지 아니면 상황적 요인에 의한 문제인지 구분해야 한다. 전자라면 구조가 바뀌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고, 그래서 오랫동안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후자라면 상황이 종료되면 해결될 수 있고, 그래서 그렇게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또한 정부 정책의 의도적 산물인지, 아니면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직면한 결과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현실은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그런데 단순히 통계 수치만 바라볼 경우는 이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경제 문제를 볼 때는 수치에만 의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정치적 요소’에 대한 단순화와 무시
마지막으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정치적 요소를 단순화하거나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시진핑 ‘일인 지배’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첫째, 정책 결정이 시진핑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정부의 정책 결정 기제가 마비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결과 관료조직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만연하게 된다. 둘째, 시진핑은 ‘측근(시진핑 세력)’에 의존하여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공식조직은 더욱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정책 실수의 위험성은 증가하고, 정책 집행도 힘을 받지 못한다. 셋째, 시진핑 일인 지배의 경직성으로 인해 상황 변화에 맞추어 신속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능력, 즉 정책 탄력성(policy flexibility)이 떨어진다.
이런 주장은 중국이 부패 척결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이 시진핑으로 집중되기 시작한 2014~15년 무렵에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다가 곧 사라졌다. 그런데 중국 정점론과 함께 이것이 다시 10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런 주장이 사라졌던 이유는, 현실에서 그런 문제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거나, 문제가 나타났어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정간부의 복지부동 문제는 공산당 중앙이 주도하는 감독이 강력하게 전개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정책 오류의 증가와 형식적인 정책 집행 문제, 정책 탄력성의 저하 문제도 우려했던 것과는 달랐다. 즉 대부분 정책이 타당하고 적절하게 결정되어 효과적으로 집행되었다. 이런 잘못된 예측은 중국의 엘리트 정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 정점론이나 중국 위기론에는 중국의 국가 통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중국은 개혁기 40여 년 동안 수많은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지만, 결국은 그것을 극복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개혁의 결과 통치 체제(governing system)가 합리화되고 제도화되면서 국가의 위기 대응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즉 중국 정치에는 시진핑 ‘일인 지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이 직면한 객관적인 위기 요소를 지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통치 체제가 그것을 극복할 능력이 있는지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심각한 위기 요소가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국가가 그것을 잘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기로 실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까지 중국 정점론이나 중국 위기론에는 이것이 없다. 이는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중국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된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은 최근 들어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고,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러 간의 연대, 더 나아가서는 이들과 이란 및 북한 간의 연대가 더욱 공고해지면서 ‘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진영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우리가 왜 미국 편에 서서 중국과 ‘권위주의 진영’에 맞서야 하는지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것이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희망적 사고와 주관적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주장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우리는 중국과 국제 정세를 잘못 판단하게 되고, 이는 곧 한국의 국익 실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제라도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을 ‘우리의 눈’으로 냉철하게 분석 및 평가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