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4. 10 국회의원 선거, 그 이후
2024년 국회의원 선거: 정부 심판, 그리고 정치적 과제

한정훈 (서울대학교)

본 글은 2024년 한국 국회의원 선거를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하나는 한국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를 ‘정권심판’의 도구로 활용했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이론적 측면에서 민주주의 도구로 기능하는 선거의 4가지 유형론을 제시하였다. 또한 선거제도적 측면과 정당의 실질적인 캠페인 활동의 측면에서 한국 국회의원 선거의 초점은 주로 지역구 국회의원보다 정부라는 거시적 대상에 놓였다는 점과 정당이나 후보자 간 빈약한 정책경쟁으로 인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과거 업적에 쏠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특징을 설명하였다. 다른 하나는 ‘정권심판’의 선거를 고려할 때, 앞으로 정치권이 어떠한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소해 나가야 할지를 살펴보았다. 국내정치적으로는 윤석열 정부가 소통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극복해야 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소통의 문제가 단순히 윤석열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국내정치의 다양한 특징을 신중히 검토하면서 대응해야 할 문제임을 제기하였다. 대외정책적으로는 정부와 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대외정책을 소홀히 다루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거대 야당과 상당한 차이가 나는 대일정책이나 에너지 정책을 정쟁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공조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림 1> 2024 국회의원 선거 출처: Arirang News

2024년 국회의원 선거: 정부 심판의 도구

2024년 국회의원 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61석과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비례대표선거 위성정당을 통해 14석, 총 175석을 확보하였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장관직을 그만두고 선거를 이끌며 일으켰던 초기 국민의힘의 지지돌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 비례대표 18석으로 총 108석을 획득하는 데 그치며 패배의 참혹함을 맛보았다. 또한 한국 사회 내 제3당이 설 자리는 여전히 넓지 않아 보인다. 개혁신당과 새로운 미래와 같이 창당과 분열의 문제를 겪은 사례는 물론, 녹색정의당, 진보당 등 새로운 사회적 대안 정당들까지 모두 참패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다. 개혁신당이 3석, 새로운 미래 1석, 진보당 1석을 얻었을 뿐이다. 그나마 비례대표 선거에만 집중한 조국혁신당만이 제3당으로서 일부 성과를 맛보았다. 46석의 비례의석 가운데 12석을 얻었다.

위와 같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은 관련 자료가 좀 더 축적되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현재까지 일부 드러난 자료에 기초하여 이번 선거 결과가 한국 민주주의에 지닌 의미, 그리고 각 정당의 공약에 근거한 선거 이후에 대한 몇 가지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학 이론적으로 선거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도구(instrument)일 뿐 목적이 아니다. 특정 선거가 어떤 도구로 기능했는가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는 유권자가 선거를 ‘회고적(retrospective) 또는 전망적(prospective)’ 측면에서 평가했는가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구 대표자 또는 현 정부 (대통령과 행정부)’ 가운데 누구를 주요 평가대상으로 삼았는가이다. <표 1>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이론적 기준을 중심으로 하나의 선거가 어떠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유형론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유권자는 선거를 선거 이전 시점의 행태나 업적에 근거하여 현직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경우 현직 국회의원은 선거 이전까지 주도적으로 유권자의 정책적 선호를 파악하고, 대표할 임무를 맡은 신탁자(trustee)로 이해된다. 이에 반해 유권자는 선거를 현직 의원의 과거 업적보다 선거 이후 유권자의 선호를 잘 대변할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경우 <표 1>의 오른편 하단과 같이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지역구 대리인(agent)을 뽑고자 한다. 유권자는 또한 선거를 지역구 대표자가 아닌 현 정부의 평가를 위한 장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유권자가 현 정부의 과거 행태나 업적을 중심으로 평가한다면 회고적 투표에 따른 현 정부 심판의 선거가 될 것이며, 미래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를 중심으로 평가한다면 전망적 투표에 따른 현 정부에 대한 권한 위임의 선거가 될 수 있다.

평가 시점
회고적 전망적
평가 대상 현 정부 정부 심판(accountability) 정부 위임(mandates)
지역구 대표자 신탁자(trustee)로서 대표자 대리인(agent)으로서 대표자
<표 1> 정부 통제의 도구로서의 선거
출처: Powell (2000, 8) 그림 2 재구성

2024년 국회의원 선거는 위와 같은 선거유형 가운데 <표 1>의 왼편 위쪽 셀의 ‘정부심판’의 도구였다고 하겠다. 이러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그 타당성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제도적인 측면에서 한국 국회의원 선거는 진정한 지역구 대표를 뽑는 선거로 기능하는데 상당한 제약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 국회의원 선거의 입후보자들은 유권자에게 자신을 홍보할 시간과 자원이 충분치 않다. 공직선거법은 한국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을 단 13일로 제한하고 있다. 후보자들은 대략 최소 13만 6천 명부터 최대 27만 4천 명의 지역구민을 짧은 선거운동 기간 내에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역구 후보 공천이 선거운동 6일 전까지 완료되어야 하는 후보자 등록일 직전까지 이어진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공천이 확정되기 전까지 공천여부에 신경써야하는 후보의 입장에서 자신을 유권자에게 홍보할 정책은 뒷전이 된다. 급조한 정책은 결국 지난 선거의 정책의 재탕이거나 정당의 정책을 빌려오는 수준에 그치기 일쑤다. 또한 TV 방송과 같은 홍보 범위가 넓은 매체를 이용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각 지역구 주요 후보들의 정책 토론은 공직선거법 제82조의2 3항에 근거하여 구·시·군 선거토론위원회가 선거운동기간 중 공영방송사 또는 종합유선방송사를 통해 개최하는 1회 이상의 토론회 또는 연설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254개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2회 이상 개최되는 경우는 드물며, 토론회의 주된 주제도 때때로 여당과 야당의 전국적인 경쟁 사안이나 정치적 싸움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역시 254개 지역구를 통해 총 348건의 토론회만이 개최되어 지역구 평균 1.37회에 그쳤다. 제도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구 후보 중심보다는 짧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윤석열 정부 심판’, ‘이재명 심판’ 등과 같은 전국 수준의 경쟁 이슈에 초점을 맞춘 선거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둘째, 경험적인 차원에서 역시 한국 정당이나 후보들은 미래 정책을 두고 경쟁하기보다 현 정부의 과거 업적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주요 양당은 심판론 경쟁에 캠페인을 집중하였고, 군소 정당들도 이에 가세해 현 정부 심판에 대한 요구 이외에 특별한 차별성을 찾기 어려운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사실 막말 파문, 편법적 대출, 전과 경력과 같은 지역구 개별 후보자의 자질에 대한 의문과 이슈가 상당수 제기되었으나 심판론 경쟁에 묻히고 선거의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번 선거가 지역구에 초점을 둔 정책경쟁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언론 기사 빅데이터를 분석한 후 제공하고 있는 공약이슈트리 정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17개 광역자치시도 가운데 미래 지역발전 및 개발이 언론을 통해 가장 중요한 주제로 보도되었던 곳은 7개 광역자치시도 정도였으며, 나머지 광역자치시도의 언론보도는 과거의 사건, 사고나 행정 관련 거시적 사안을 부각하였다.

이와 같은 회고적 투표에 기반한 ‘정부심판’의 선거가 다른 유형의 선거에 비해 민주주의 발전에 저해가 되거나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가 ‘정부심판’의 선거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번 선거를 통해 현 정부가 그동안의 정책 및 국정운영 방식을 반성하고 새로운 변화를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반면 미래 대안이 선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거 이후 정쟁의 가능성과 그에 따른 정치적 갈등의 심화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과제를 국내정치적 측면과 대외정치적 측면으로 나누어 더욱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국내 정치적 과제

이번 선거가 ‘정권심판’의 선거로 평가되면서 그 결과를 두고 벌써 윤석열 정부의 레임덕 가능성이 불거진다. 지난 2년 동안 180석의 거대 야당으로 인해 주요 공약의 이행은 물론 의료 개혁과 같은 국정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 정책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이 더 큰 난관을 맞으리라는 예측이다. 이번 선거를 대통령령이나 행정부의 정책 집행 권한에 의존했던 국정운영의 한계를 해소하려던 계기로 삼고자 한 정부 여당의 희망은 사라지고, 오히려 9차례의 거부권을 임시방편으로 삼았던 정부 여당의 행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심지어 대통령 탄핵도 약간의 여당 내 이탈표로 가능할 수 있다는 과감한 위협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2년을 평가한 도구’로서 2022년 국회의원 선거가 곧바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대와 야당에 대한 ‘미래 정치의 위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권심판’의 선거는 정부의 과거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을 의미할 뿐, 미래 정책적 방향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번 선거는 미래 정책을 두고 경쟁한 선거가 아니었다. 선거결과 역시 유권자들이 야당의 정책을 지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증명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 71석의 차이가 났던 지역구 선거는 의석율과 지지율 간 괴리가 심하다. 지지율로 볼 때,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비해 겨우 4% 남짓의 지지를 더 받았을 뿐이다. 다수결 선거제라는 제도의 기계적 특성이 아니었다면 지지율 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비례대표선거의 지지율 역시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지역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국적으로 50.5% 득표했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위성정당을 활용한 비례대표선거에서는 단지 26.7%를 득표했을 뿐이다. 두 선거 간 24%에 가까운 득표율의 차이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상당수의 유권자가 비례대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와 같이 하나의 선거 결과가 ‘정권심판’과 ‘미래 정치의 위임’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이번 선거를 두고 현재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부가 어떤 점에서 실패하였고, 그러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과 가능성이라고 하겠다. 다만 여기서 지면 관계상 지난 2년간 국정운영 전반을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래서는 국내정치적 측면과 대외정책적 측면 각각에서 대표적인 국정운영 사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제한하도록 하겠다.

국내 정치적으로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친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운영 실패의 사례는 불통의 정치와 물가 상승에 따른 민생고에 대한 대응의 실패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물가 상승의 수준이 현 정부의 기존 지지자 대다수가 정부 지지를 철회할 수준으로 불만도가 높은지를 명확히 판단한 자료가 없지만, 선거 전 ‘대파 한 단에 875원은 합리적’이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같이 민생고에 대한 낮은 이해와 등락하는 생활물가에 대하여 정부의 비능률적 대처가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할 것 같다. 또한 지난 2년 동안 야당 대표와 단 한 차례의 영수 회담을 진행한 적이 없다는 윤석열 정부의 불통은 그 나름의 원칙과 이유와는 별개로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의 이미지를 축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확대 재생산되었을 것으로 간주되는 몇 차례의 사건 역시 이번 선거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만일 이와 같은 불통과 민생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 실패가 ‘정권심판’의 주요 내용이었다면,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국회와 협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만으로 바라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 결과는 정부가 유권자, 특히 야당과의 불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진행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그러한 노력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우선, 한국 정치의 역사를 볼 때, 분할정부 아래서 정부와 국회 간 협력이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소속정당과 국회 내 제1당이 다른 분할정부는 제13대 국회 전반기, 제15대 국회, 제16대 국회 전반기, 제19대 국회, 제20대 국회, 그리고 지난 제21대 국회 후반기까지 총 6차례였다. 분할정부 아래 대통령은 예외 없이 국회의 방해로 인해 아무런 정책도 추진할 수 없다는 불평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정협의회, 당정청협의회,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등 다양한 제도적, 실천적 방편이 논의되었으나 단 한 차례로 실질적인 협력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

역사적 경험을 차지하더라도, 이번 선거 결과는 여야간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할 요인으로 정치개혁이라는 요소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주요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연임제 등을 포함한 헌법 개정을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국민의힘은 캠페인 과정에서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외쳤지만 정치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다루지 않았다. 과거 국민의힘 내적으로 정치개혁의 방향에 일관된 입장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신중한 처리를 강조하며 소극적이었던 태도를 고려할 때, 야당이 내건 정치개혁의 공약은 선거 이후 여야간 또는 정부와 국회 간 상당한 갈등을 이미 예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 결과는 각 정당이 통일된 정책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 내부의 개혁을 선제적으로 처리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비명계 학살’과 같은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계파 간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이는 더구나 비례대표선거를 위해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과 연합하여 더불어민주연합을 구성했다는 점으로 인해 더욱 복잡한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내부 갈등은 물론 연합으로 확대된 타당 소속 의원들과의 관계의 재정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원내 교섭단체 구성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전략을 구상 중이며, 그에 따른 야당 내 긴장감도 무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역시 이들과 완전히 다른 상황은 아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한동훈 위원장이 물러나면서 만들어진 권력 공백은 내부 권력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3년 후 대권을 고민해야 하는 여당으로서 ‘정권심판’의 선거는 앞으로 야당과 정부 간 관계 설정에도 심각한 고민을 부여한 결과이다.

결국, ‘정권심판’ 직후 매우 당연하게 제시되는 정부와 국회, 여야간 협치 및 협력은 대통령의 결단과 의지만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거나 성공이 보장되는 사안이 아니다. 정당 간 협력에 앞서, 각 정당 또는 각 정치 진영 내부의 갈등을 해소해야 할 뿐 아니라 역사적 실패의 경험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권심판’을 위한 도구로 이번 선거를 활용한 유권자의 의도는 선거 이후 이러한 도전에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실현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대외 정치적 과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정권심판’의 선거였다는 평가가 타당하더라도,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 영역 역시 평가의 대상이었는지는 구체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대외정책 분야는 유권자의 회고적 평가의 대상으로는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바이든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이나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 같은 거시적 대외정책은 근본적으로 ‘미국 우선’이라는 대외정책의 큰 틀을 공유하기 때문에 두 후보에 대한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아니다. 다만, 대외정책이 특정 지역구나 지역과 관련하여 정책적으로 구체적이고 차별적인 효과를 지닌다면, 대외정책이 간접적으로 의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도 유사하다. 한미동맹과 같은 양자 외교 중심의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다자 외교 중심의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등과 같은 거시적 사안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 반면, 주한미군 사드 배치, 미국 소고기 수입, 일본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일부 유권자에게 대외정책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이 되는 경우 그들의 선택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지닐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 정부에 회고적 평가가 가능할 수준의 구체적인 대외정책적 사안은 무엇이었나? 여기서는 두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역사문제를 회피한 대일 외교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재생에너지 100% 정책(RE100)과 관련된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는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 등을 중심으로 일부 유권자들이 비판적이었던 대외정책 분야이며, 재생에너지 100% 정책은 윤석열 대통령이 환경 분야에 관심이 낮거나 잘 모른다는 사회적 의혹이 제기되었던 사안이다. 이러한 사안이 실제 ‘정권심판’의 요인이었는지는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일부 유권자가 이러한 사안을 근거로 이번 선거에서 선택했을 가능성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

<표 2> 주요 정당의 대외정책, 기후정책, 정치개혁에 관한 공약
민주당 국민의힘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대북정책 0 0
한미동맹 0 0 0
동북아정책 0 0 0
다자외교 0
탄소중립 0 0 0
재생에너지 0 0 0 0
원전문제 0
정치개혁 0 0
출처: 각 정당의 10대 대표공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우선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대외정책에 관한 내용을 10대 대표 공약에 담지 않았다. <표 2>는 이번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한 주요 정당의 10대 대표 공약에 어떠한 대외정책 공약, 환경공약, 정치개혁의 공약이 포함되었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표2>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의힘의 10대 대표 공약에 대외정책과 정치개혁은 빠져있다. 국민의힘은 좀 더 구체적인 공약을 담은 중앙정책공약집에 ‘글로벌중추국가구현’이라는 제목으로 대외정책에 관한 공약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싹 다 갈아엎는, 문재인정권 외교안보통일정책의 재개발’이라는 제목으로 통일·외교·국방분야의 공약을 10대 공약에 담았던 사례와 대비될 뿐 아니라 대외정책 공약을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로 포함하던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매우 예외적이다. 이러한 조치는 한편으로는 대외정책이 국회의원 선거와의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아래 대외정책 분야보다 유권자의 삶에 더 실질적으로 결부된 정책영역에 집중하고, 득표를 늘리려는 선거전략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수출산업 중심의 한국 경제와 대외정책 간 밀접한 관계에 대해 한국 정부의 이해가 부족하다거나 특별한 논리가 제시되지 않은 채 대외정책을 배제한 것이 선거에 소홀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의힘과 대조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지난 2년의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명시적인 비판적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역시 정당 간 대외정책의 차별성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대일 관계와 관련하여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우회하고자 했던 과거사 문제 해결을 오히려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중요성이 커지는 부분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서 역시 국민의힘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 확충이라는 모호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재생에너지 100% 정책에 대한 선호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확대 비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비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무탄소에너지 100% 정책(CF100)과 재생에너지 100% 정책의 경쟁이나 원전활용에 대한 찬성과 반대와 같은 정책경쟁을 구체적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환경정책에 대한 상대적 취약성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전 지구적 규범의 변화 및 그러한 변화가 한국 수출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 등을 고려할 때, 국민의힘은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일부 유권자의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만일 대외정책과 환경정책이 이같이 간접적이나마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부가 이 분야의 정책에 좀 더 신중하고 구체적인 정책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일 것 같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의 대외정책을 고수하는 경우 대일정책에서 여당과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인 거대 야당이 여러 민생법안을 볼모로 정치적 게임을 시도할 수 있다. 이 경우 또다시 다수의 민생법안은 여야, 정부와 국회 간 정치적 경쟁 아래 입법교착을 반복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의 문제도 심각성은 무시하기 힘들다. 특히 한국 사회는 현재 10년 이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임시저장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원전 활용에 대한 사안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더욱 심각한 갈등 요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부심판’의 선거가 야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거대 야당과 현 정부와의 대외정책 및 환경정책의 차이는 야당과 공조 가능한 정책 영역, 야당과 공정한 경쟁이 필요한 정책 영역 및 야당과 적극적 타협에 나서야 하는 정책 영역 등에 대한 면밀한 구분을 통해 정책적 차이가 밑도 끝도 없는 정치적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정부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비가 필요함을 의미할 것 같다.

협치의 정책적 효용성

이번 선거로 구성되는 제22대 국회는 2027년 현 정부의 임기 종료 시점까지 지속한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이 어떤 방식의 협력 메커니즘을 구성하는가가 상당한 시간 동안 이들의 관계를 지배한다. 협력을 위한 시도가 초기에 실패하는 경우 여야의 장기간에 걸친 불편한 동거, 정치적인 갈등의 심화 및 대립이 지속될 수 있다. 반면, 협치의 새로운 성공적 방안이 제시되는 경우 현 정부의 중요한 업적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유의미한 도약을 의미한다. 특히 야당과 차별적인 대외정책적 입장과 대내적 민생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협치는 거대 야당과의 갈등으로 인해 촉발될지 모를 정치적 교착에 빠지지 않을 효과적인 수단일 것 같다. 이러한 진단은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이 이번 선거가 초래한 결과를 신중히 검토하고, 실패로 점철된 협치의 역사를 반성하는 것이 현재 한국 정치가 직면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 및 여당과 야당의 변화가 수반할 때, 선거를 ‘정권심판’의 도구로 활용한 한국 유권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4권 13호 (2024년 4월 17일)

Tag: 국회의원,선거,총선,정권심판,대외정치,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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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한정훈(gurus72@snu.ac.kr)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및 EU센터 소장, 한국유럽학회 부회장

주요 저서와 논문

The Oxford Handbook of South Korean Politics (eds.), (Oxford University Press, 2023).
『거대전환: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사회변동』 (공저), (대통령직속정책기획위원회, 2021).
“Voting Green in European Parliament Elections: Issue Voting in an Electoral Context.” (with Daniel Finke), Journal of European Public Policy. 2022.
“한국 청년층의 보수화? 2012년부터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이념적, 정책적 태도와 투표행태를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31(2),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