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과거 식민통치와 경제수탈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가 글로벌 노스에 어떠한 관계맺기를 역사적으로 도모해 왔는지, 그리고 반둥 회의에서 형성된 글로벌 사우스의 집합적 저항이 탈냉전 이후 글로벌 노스와의 대항적 공존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과거 식민통치와 경제수탈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가 글로벌 노스에 어떠한 관계맺기를 역사적으로 도모해 왔는지, 그리고 반둥 회의에서 형성된 글로벌 사우스의 집합적 저항이 탈냉전 이후 글로벌 노스와의 대항적 공존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I
지구상의 국가들을 저발전과 권위주의적 레짐의 집합체로 알려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선진경제와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로 양분할 수 있는가? 어떤 이유로 이러한 이분법적 구별짓기가 글로벌 사우스를 인식하는 보편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글로벌 사우스가 대체한 제3세계(Third World)의 종속과 저발전 문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이미 사라진 기억인가, 아니면 아직 유효한 글로벌 이슈인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았던 글로벌 사우스와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관계성을 구축해야 하는가? 글로벌 사우스의 경제적 종속과 저발전이 정치적 갈등과 분쟁으로 확장되는 과정, 그리고 분쟁 이후 평화구축의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제3세계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향후 한국 사회가 천착해야 할 글로벌 사우스와 관련된 국가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로벌 사우스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통해 구성되고 진화되어 왔는가를 이해하는 장기지속(longue durée) 중심의 해석이 동원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구조화(structuration)─탈구조화(destruction)─재구조화(restructuration)의 과정을 글로벌 사우스가 거치면서 탈식민주의의 집합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을 구축하게 되고 스스로 글로벌 노스와 구별짓기를 자발적으로 시도해 온 동시에, 북반구에 위치한 구 식민지 종주국들에 의해 글로벌 사우스와 노스 사이에 구별짓기의 강요를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대항구조는 때로는 제3세계의 종속이론과 서구의 근대화론 간의 이론적 논쟁으로 구현되기도 하고, 사우스의 비동맹주의와 노스의 냉전체제 하 동맹관계 확장이라는 외교전략 간의 충돌로 현실화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배제를 통한 글로벌 사우스와 노스 간의 구별짓기는 역사의 질곡과 도전의 궤적에 따라 냉전시기 제3세계의 탈식민주의를 위한 ‘집합적 저항’에서 점차 탈냉전 이후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간의 협력과 갈등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대항적 공존’으로 전환하게 된다. 글로벌 사우스의 집합적 저항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오랜 식민통치를 청산하고 식민주의에서 독립한 제3세계 신생국가들이 냉전체제 하 미국과 소련 간의 패권경쟁에서 비동맹주의라는 중립 노선을 고수하는 역사적 배경에서 태동하였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아시아-아프리카회의(Asian-African Conference, 이하 반둥회의)’를 통해 제3세계 프로젝트를 비동맹 국제연대로 가시화하면서 글로벌 사우스는 글로벌 노스와의 경계선을 획정하고 비동맹주의와 탈식민주의를 집단적 정체성의 핵심토대로 강조하며 과거 서구열강에게 도전하는 구별짓기를 진행하게 된다. 사우스의 구별짓기는 1960년대 들어와 유엔(UN) 체제의 원내 투쟁으로 확장되는데, 그룹 77(G77)의 형성 및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등을 통해 유엔 내 제3세계 회원국들의 정치적 결속력과 단일화된 목소리를 증폭하는 과정으로 발전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글로벌 사우스가 유엔 무대를 통해 이른바 ‘신국제경제질서(NIEO)’를 주창하면서, 국제경제질서의 불평등 관계를 청산하고 서구열강의 제3세계 종속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야심찬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의 집합적 저항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1980년대 초반부터 국제경제질서를 압도한 신자유주의식 구조조정 처방이 제3세계가 기획한 집합적 저항의 칼끝을 무디게 하고, 급기야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자유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글로벌 사우스가 편입되고 제3세계 프로젝트는 긴 여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반둥 정신을 토대로 집합적 저항을 시도했던 글로벌 사우스는 냉전 붕괴 이후 노스에 대한 전통적인 도전을 지속하는 동시에 노스와의 경제협력 등 자국에 필요한 협력관계를 확대하기 위한 현실주의적 공존의 선택을 강구하게 된다. 이러한 대항과 공존이 교차하는 방식의 구별짓기는 사우스 역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우스 역내의 패권국가들의 연합체라 볼 수 있는 브릭스(BRICS)의 형성과 회원국 간의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이 기존 서구 중심의 해외원조를 대체하는 대안으로 강조되었지만, 글로벌 사우스는 중국과 인도 간의 역내 패권경쟁과 같은 대항적 요소를 곳곳에서 조우하게 된다. 인도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미국 중심의 쿼드(Quad)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동시에,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다. 한편, 중국은 인도가 가장 불편한 이웃으로 생각하는 파키스탄과 일대일로 사업으로 ‘중국-파키스탄경제회랑(CPEC)’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인도의 심기를 건드려 왔으며, 2023년 인도 모디 총리가 주도하는 G20에 참석하지 않는 등 인도와의 남남협력을 추진함과 동시에 불협화음을 보여 오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대항적 공존이라는 구별짓기 방식은 브릭스 이외 대부분의 사우스 개발도상국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유엔에서 논의된 러시아 규탄안에 대거 기권표를 던진 바 있으며 미국 및 서방국가들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강조하고 자국의 이익에 맞게 외교노선과 원조 파트너를 자주 바꾸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II
그렇다면, 과연 글로벌 사우스의 집합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글로벌 사우스는 물리적으로 적도 아래 위치한 개발도상국의 집합체를 지칭하는 단순히 지리적 구분만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라, 글로벌 노스의 과거 식민통치 및 작금의 국제질서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비동맹주의의 반둥 정신을 계승하며 남반구 국가들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개발도상국 집합체를 의미하는 정치적 개념이다. 글로벌 사우스가 노스에 대항하는 전략과 전술은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조건에 따라 변해 왔으며, 이는 곧 글로벌 사우스의 집합적 정체성이 변했기 때문이고 이에 따라 사우스가 지속적으로 노스와의 구별짓기 방식을 바꾸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의 단일대오가 갖춰진 집합적 저항의 시기에는 반둥회의를 비롯하여 – 유엔을 제외하고 – 글로벌 사우스가 스스로 구축한 비동맹정상회의 등 국제연대의 다자 협의체가 즐비하였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제3세계론의 자취가 사라지면서 글로벌 노스와 타협하고 공존하는 사우스 국가들의 전략적 선택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상황에서 보편화되었다. 대항적 공존이라는 새로운 집합적 정체성의 표출은 식민주의 잔재를 극복하기 위한 과거의 반둥정신에 의거한 단일대오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개별 개발도상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과거 서구열강과 협력할 수 있는 공존의 가능성을 여는 대단히 현실주의적 행보를 의미한다. 물론 2005년 인도네시아는 반둥회의 50주년을 기념하며 다시금 반둥정신의 부활을 도모하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주도하고 있지만, 이는 반드시 과거의 집합적 저항의 정체성을 부활하려는 의도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중국·인도 등의 사우스 역내 패권경쟁에 자국의 존재를 알리는 정치적인 행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작금의 대항적 공존 방식의 집합적 정체성은 미·중 전략경쟁과 미국의 단극체제 패권 약화라는 국제정치질서의 변화 과정에서 남반구 개발도상국이 주권국가로서 자국의 국익을 위한 현실주의적 전략을 확장하게 할 것이다. 또한 남반구 개발도상국이 특정 패권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중립외교를 원칙으로 자국에게 유리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III
대항적 공존에 근거한 구별짓기는 글로벌 사우스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를 장착하게 한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은 사회 내 지배적인 취향을 결정하는 요소 중 기존의 경제적 수단을 넘어서 사회적 자산인 문화자본의 소유자가 사회의 지배적 습관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자신이 소유한 전체 자본의 수준이 낮은 사회구성원들은 필요한 양의 문화자본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 보유 수준이 높은 타 구성원들이 결정한 사회적 취향과 문화의 구별을 합법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게 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지배적 형태의 취향 또는 습관을 수용하는 것은 ‘상징적 폭력’의 한 형태로 작동한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계급의 특수한 습관 내지 성향 체계를 ‘아비투스’라고 개념화할 수 있으며, 지배계급이 자기 세계를 규정하는 수단으로 지배적 형태의 성향을 강요하게 되면 문화자본이 부족한 계급에게는 허구가 빚어낸 현실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사회적 조건이 사회라는 시공간을 규정하게 된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 간의 관계구성에 적용하면, 지배계급이 누리는 문화자본이 풍부한 글로벌 노스가 문화자본이 부족한 사우스에게 특정의 지배적 가치체계와 취향을 강요하고, 사우스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불균등한 구별짓기가 형성된다. 물론, 그 반대 과정의 사회적 구성도 언제나 가능하다.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를 노스로부터 승인받기 위해서 사우스 스스로 아비투스를 구성할 수 있으며, 또는 글로벌 노스가 의도적으로 글로벌 사회에서 정당화한 아비투스를 사우스에게 수용할 것을 강요할 수도 있다. 글로벌 사우스가 집합적 저항의 아비투스를 반둥정신이라는 제3세계의 문화자본을 통합하여 사회적으로 구성했듯이, 반둥체제에서는 사우스 역내 공동의 연대의식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 글로벌 노스에 대응하는 전략적 가치와 대항의 목표를 제공하였다. 저항의 아비투스는 글로벌 사우스가 서구열강의 근대화론에 대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 제3세계의 집합적 저항을 다자무대에서 구체화하는 추동력이었다. 반면, 글로벌 노스의 과거 서구열강에게는 사우스의 아비투스가 공존보다는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노스가 사우스를 통제하고 배제하는 새로운 아비투스를 생산하려는 동기로 작동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패러다임이 국제정치경제의 새로운 지배적 경향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글로벌 노스의 아비투스 전환의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공여국의 지배의식이 1990년대 냉전체제의 붕괴와 미국의 단극체제 도래라는 외부 질서의 변화와 조응하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응하지 않는 제3세계 국가는 경제원조와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수원 받지 못하도록 공격적으로 전환되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아비투스로 인하여, 글로벌 사우스는 반둥회의에서 지향했던 국제연대 기반의 단합된 도전에서 선택적 동조에 의한 대항적 공존으로 스스로의 구별짓기 방식을 바꾸게 된다. 글로벌 사우스의 현실주의적 타협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대항적 공존은 2000년대 이후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에 따라 글로벌 사우스가 글로벌 노스에게 또 다른 도전세력으로 인지되도록 상황을 전환시켰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에 중국과 인도의 구매력평가(PPP) 지수의 합이 미국과 EU의 구매력평가를 합한 정도와 유사한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 예상하였다. 글로벌 노스의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식 개발과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 미·중 전략경쟁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과 G7은 대중 견제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2021년 ‘더 나은 세계의 재건(Building Back Better World: B3W)’과 2022년 ‘글로벌인프라투자파트너십(Partnership for Global Infrastructure Investment: PGII)’을 출범시키면서 중국식 인프라 투자의 부채함정과 투명성 문제를 강조하여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항적 공존의 아비투스는 단순히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 간의 전통적 갈등구도에서만 목도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 역내에서도 그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사우스 역내 패권경쟁은 중국과 인도 간의 문화자본 경쟁으로 수렴된다. 2023년 G20 의장국이 된 인도가 전 세계 120여개 개발도상국 정상들을 초청해 ‘글로벌 사우스 정상의 목소리’로 명명된 대규모 화상회의를 개최하면서 21세기의 세계적인 성장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나올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인도가 제3세계 국가들의 맹주로서 결집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 견제력과 국제적 지위 상승을 이번 G20 의장국의 기회를 통해 인도는 성공적으로 도모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중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구성된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의장국을 인도가 맡음으로써 더욱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G7은 더더욱 인도와 밀착하게 되고 인도에 대한 경제적 투자를 지원하면서 인도와의 공존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고, 인도는 누구보다 이러한 인도와 중국 간의 구별짓기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IV
마지막으로,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전략을 논해야 한다.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지금까지의 입장은 한 마디로 기회주의적 모습이 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 4강 중심의 외교정책이 지금까지 한국의 외교전략에 핵심이었던 만큼, 글로벌 사우스 및 제3세계는 한국의 국가정책에 있어 늘 배제되어 있었다고 평가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실제, 한국에서의 글로벌 남반구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의 연구 주제에서 쉽게 배제되었고, 현재에도 주류 학문이 아니라는 해석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기 어려울 것이다. 1980년 중반 이후 한국의 민주화 물결 속에 제3세계의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이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제관계의 주요 사조로 제3세계론을 압도하면서 점차 한국 학계에서 글로벌 사우스 연구의 자취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는 단지 학계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이 장기간에 걸쳐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동맹체제에서 통용되는 사고와 정책에 동화되고 의존하는 경향에 수렴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글로벌 남반구가 처한 다양한 발전의 문제에 대체로 눈과 귀를 막고 최소한의 수동적인 개입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제한된 관계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즉,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구조적 폭력과 경제 착취로 점철된 글로벌 남반구의 종속과 저발전 문제가 한국에게는 긴급하게 대응할만한 이슈로 인식되지 않았으며, 냉전과 탈냉전, 그리고 작금의 새로운 인도·태평양 시대에도 미국의 핵심 동맹 중 하나인 한국에서 이러한 제한된 인식론은 지속되어 왔다.
이제는 한국의 과거 기회주의적 자세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전략적 파트너로 대항적 공존의 아비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때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새로운 구별짓기를 위한 문화자본 생산을 미국·G7, 중국, 인도 등이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반둥정신의 계보를 잇는 인도네시아가 2005년 이후 반둥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아비투스 구성 경합에 뛰어들고 있으며 다양한 글로벌 사우스의 주체들이 러·우 전쟁, 글로벌 팬데믹,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격변하는 국제정치질서에 새로운 대안적인 글로벌 사우스의 구별짓기를 위해 합종연횡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이 보유한 문화자본 중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식민통치와 전쟁에 의한 가난과 독재의 어두운 경험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낸 예외적인 성공사례로서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를 연결하는 역할의 적임자라는 문화자본일 것이다. 현재 팽배해져 있는 구별짓기의 다양한 전선을 동조하지 않고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문화자본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비투스에 기반한 글로벌 사우스와 노스간의 ‘잇기’ 또는 ‘맺기’를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 대전략의 원칙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도구적 장치로 개발협력정책 내지 공적개발원조가 대표적이며, 한국의 중간자적 위치를 전략화하여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를 연결하는 정책의 보완이 시급하다.
다시 말해, 강대국 위주로 발전해 온 우리의 국제관계 인식방식을 글로벌 노스와의 직렬 회로에서 노스와 사우스를 병렬 회로로 이해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격변하는 국제정세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동맹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다른 쪽의 미움을 사는 과거의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고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장할 수 있는 문화자본을 체계적으로 발굴하여 글로벌 사우스와 공존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글로벌사우스,반둥회의,미·중전략경쟁,제3세계,브릭스
김태균(oxonian07@snu.ac.kr)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센터장 및 글로벌사회공헌단 단장, 국제개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주요 저서와 논문
반둥 이후: 글로벌 사우스의 국제정치사회학』 (진인진, 2023).
한국 비판국제개발론: 국제개발의 발전적 성찰』 (박영사, 2019).
대항적 공존: 글로벌 책무성의 아시아적 재생산』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The Korean State and Social Policy: How South Korea Lifted Itself from Poverty and Dictatorship to Affluence and Democrac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공저)
“Forging Soft Accountability in Unlikely Settings: A Conceptual Analysis of Mutual Accountability in the Context of South-South Cooperation,” Global Governance 23(2), 2017.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