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의 예술’로서 한류, 그리고 아시아
‘한류’로 표현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지구적인 확산은 아마 훗날의 역사가들이 21세기 전반기를 기록할 때 결코 빠트려서는 안 되는, 한 시대의 특징적인 현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와 초기 세계화가 시작되면서 누렸던 서구의 문화적 우위는 21세기 정보화와 아시아의 부상이라는 흐름을 대표하는 한류에 의해서 침식되고 있다. K-Pop과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플랫폼에서 보여주는 높은 인기는 지구적 문화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각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한류가 여전히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서구 대중문화의 ‘아시아적이고 지역적인 변형’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며, 한류의 성공 기반도 아직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류 및 한국 대중문화의 성격에 대한 규정과는 별개로, 실제 한류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모를 보여주는 아시아 각국에서 수용되는 양상만 놓고 본다면 한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여타 문화 콘텐츠 흐름과 비교했을 때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강력한 팬덤 문화의 존재이다. 한국 대중문화에서는 팬덤 정체성을 공유하는 수용자들이 자발적인 집단행동에 나서 콘텐츠 공급자로부터 주도권을 확보하고, 나아가 대중문화와는 일견 무관해 보이는 정치, 사회적 사안에까지 목소리를 내는 양상이 매우 자주 나타난다. 한류가 당분간 계속해서 저변을 넓히고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 자명한 현재, 지구적으로 확산된 한국 대중문화와 그 팬덤은 앞으로도 지구적 문화 지형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인 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과도한 비약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중문화 팬덤, 특히 21세기 가장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대륙인 아시아의 팬덤은 지금, 이 순간 어떤 방식으로 한류를 수용하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 그들의 의지를 사회에 투사하고 있는가? 한류 콘텐츠 중에서 가장 커다란 성공을 이룬 K-Pop을 통해서 그 단편을 엿볼 수 있다.
대중음악 팬덤과 의미, 정체성
대중음악에서 팬덤이 형성되고 그들이 일정한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문화연구자 다니엘 카비치(Daniel Cavicchi)는 대중음악이 대중을 순치하여 자본주의 체제 지속성에 기여하는 자본의 도구라는 아도르노의 주장을 비판하고, 미국의 록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 팬덤에 대한 민족지 연구를 통해서 팬덤을 새롭게 정의했다. 카비치에 따르면, 대중음악과 그 팬덤은 마치 종교와 신자(信者)의 관계와 놀라운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팬덤은 모두 자신이 언제부터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그의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전환점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전환점 이후에 자신의 핵심 정체성을 ‘브루스 스프링스틴 팬’으로서 정의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 기독교에서 ‘회심’을 통해서 신앙을 회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기독교인으로 규정하게 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카비치는 대중음악이 팬들에게 일종의 초월적인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고, 집단적인 팬덤 활동은 소속감을 심어주며, 나아가 삶의 의미마저도 제공해줄 수 있는 것임을 팬들과의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서 생생히 보여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팬으로 정의하여 집단을 형성한 팬덤은, 음악 자본의 이윤을 위하여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가수와 자신의 관계에 자율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반대로 음악 자본을 압박하기도 하는 주체로서 거듭나게 된다.
물론 특정 가수의 팬이 되는 과정이 무작위적인 것은 아니다. 가수와 음악에 내재된 의미가 수용자의 기존 정체성과 의미 체계에 잘 연결될 때 강력한 팬이 탄생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주로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백인 빈곤층(white trash)에 호소했고, 그의 팬도 대부분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백인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특정 가수나 혹은 특정 음악 장르는 대규모 청취자들의 정체성 및 사회적 상상과 주파수가 맞아야지만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음을 쉽사리 유추할 수 있다.
팬덤의 정체성과 그들의 사회적 상상이 음악 장르와 맞물려 거대한 정치적 잠재력을 보여준 명확한 예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풍미했던 록 음악이었다. 대서양의 문화적 연결망 속에서 록 음악은, 위계와 권위를 거부하고 사회문화적 자유를 추구한 전후 세대의 정체성 및 사회적 상상을 반영하여 탄생했다. 록 음악의 팬덤은 68운동으로 상징되는 ‘60년대 반문화’의 중추를 형성했고, 록 음악은 팬덤이 원하는 방향성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60년대 반문화를 반대로 다시 강화했다. 이런 과정이 가장 극적인 형태로 드러난 공간은 역설적으로 록 음악이 닿을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철의 장막 너머의 공산권이었다. 공산권에서 록 음악이 수용되는 과정은 팬덤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상상에 맞게 음악을 전유하여 수용하고, 그것을 집단적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율적 주체라는 것을 생생하게 드러내 준다.
이미 1950년대부터 동구 공산권에서는 그 정도는 약했을지언정 서구적 소비 사회와 유사한 사회적 풍경이 등장하고 있었다. 서구와 마찬가지로 역시 전후에 태어난 동구의 새로운 세대는 혁명과 총력전으로 단련된 앞선 세대와 달리 더 감각적인 문화를 소비하고 개인적 정체성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를 원했다. 전후 세대의 문화적 지향은 보수적인 문화 통제를 원했던 공산당과는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서구식 록 음악은 공식 문화 영역에서는 퇴폐적 문화로서 비난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소련 및 동유럽의 록 팬덤은 항구도시에서의 밀수와 복제 레코드 유통을 통해서 음지에서 록 음악을 확산시켰다. 이들은 60년대 반문화를 담은 해당 음악의 가사를 딱히 이해하지도 않으며, 말 그대로 ‘자기들 멋대로’ 서구 록 음악을 소비했다. 하지만 그들은 록 음악을 소련에서는 향유할 수 없는 문화적 자유, 흥미진진한 모험, 지루한 기성세대와는 구분되는 청년세대의 활력으로 간주하며 자체적인 록 문화를 발전시켰다. 소련의 록 문화는 공산당 체제의 문화 통제 하에서도 그 체제 바깥을 꿈꾸게 해주는 상상력의 원천이었고, 훗날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K-Pop 팬덤과 집단행동
고도로 활동적인 팬덤 문화는 K-Pop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자 K-Pop 산업의 지구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 성공 비결이었다. K-Pop 특유의 팬덤 문화는 음악 자본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의 공급자들이 설계한 결과물이 아니라 수용자들의 특성이 아래로부터 자율적으로 발현되며 형성되었다. 그중에서도 두 가지 특성이 K-Pop 팬덤 문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첫 번째 특성은 K-Pop 팬덤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서 인터넷상의 커뮤니케이션에 매우 익숙하다는 데 있었다. 특히 2010년대 이래로 스마트폰이 청소년과 청년층의 보편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특정 그룹의 팬덤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K-Pop 아이돌 산업 전체를 논하는 커뮤니티들이 빠른 속도로 확장했다. 이러한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의 존재는 수용자인 K-Pop 팬덤이 공급자로부터 자율적인 상태에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단기간에 조직되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집단행동을 수행할 수 있게끔 해주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온라인을 통해 조직된 K-Pop 팬덤은 곧이어 투쟁성이라는 두 번째 특징을 만들어냈다. 모든 K-Pop 팬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그룹이 K-Pop 산업 생태계 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기를 원한다. 이는 한국 수용자들이 보여주는 강력한 서열 의식과 관련이 있다. K-Pop 팬들은 음원 차트와 앨범 판매량, 콘서트 동원력, 방송 3사 음악방송 1위 횟수 등을 종합하여 어떤 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그룹의 가치는 이러한 서열로 환원되며, 팬덤의 가치 또한 마찬가지다. K-Pop의 서열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모습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에게 매우 강력한 압박을 주고, 아이돌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압박은 동시에 팬에게도 향하는데, 이는 K-Pop 생태계의 문법에서 아이돌과 팬은 ‘성공 가도를 향한 공동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고도로 경쟁적 환경에서 K-Pop 팬은 일견 파괴적인 수준까지도 발전하는 집단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받는 것을 일종의 의무이자 윤리로서 받아들인다. 대표적으로 음원차트의 순위를 올리기 위해 하루 종일 집단적으로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제의인 ‘스밍 총공’, 앨범 판매 순위를 올리기 위해 듣지도 않을 CD를 수십 장씩 사는 행동은 바람직한 팬 활동으로 추켜세워진다. 한편으로는 팬덤은 견제해야 하는 그룹을 여론으로 공격할 수 있는 태세를 항상 갖추어야만 하며, 반대로 그런 공격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그룹에 들어왔을 때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야만 한다. 그리고 팬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계속해서 해당 그룹의 매력을 알리는 콘텐츠를 제작해서 플랫폼에 전파하기도 한다. 요컨대 이런 투쟁을 거치면서 K-Pop 팬덤은 모두 집단행동과 온라인 정치에 단련된 ‘전사’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K-Pop의 지구적 확장은 이러한 전투적 팬덤 문화도 지구적으로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K-Pop 팬덤과 정체성의 투사
상기한 내용을 정리해보자. 첫째, 대중음악 팬덤은 대중음악 소비의 과정에서 의미를 추구하고, 팬덤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상상을 투사한다. 둘째, K-Pop 팬덤은 온라인에 기반하여 팬덤 간 투쟁에 몰입하는 한국 소비자의 특성으로 인하여 매우 활동적인 집단행동 양식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K-Pop 팬덤이 대중음악을 넘어서 정체성과 사회적 상상을 투사하는 가장 격렬한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한국의 맥락에서 K-Pop 팬덤은 2016년에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온라인 공간에서 촉발된 페미니즘 대중화 흐름)’와 그 뒤를 이은 청년 남성의 정체성 운동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이는 한국적 맥락에서 K-Pop 팬덤 문화가 다른 사회문화 영역으로 투사된 결과로서 발생한 일이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처럼 한국과 다른 맥락에서 K-Pop을 수용하는 이들은 다른 방향으로 집단행동을 표출했다. 이와 같은 ‘K-Pop의 지리적 다양성’에 관한 종합적 논의는 많지 않으나, K-Pop 팬덤의 집단행동이 개별 국가 차원에서 보도되고 연구되고 있기에, 여기서는 비교적 차원으로 몇 가지의 사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감각적으로 화려한 K-Pop은 일반적으로 종교적으로 엄격한 보수적 기성세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적 돌파구로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K-Pop이 단순히 서구적 대중문화를 완벽히 소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K-Pop은 한국 사회의 보수적 윤리 기준에 맞추기 위하여 가사와 안무, 영상 표현에 있어서 상당한 절제를 추구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K-Pop은 ‘아시아적 보수성과 서구적 감각’을 모두 수행하는, 즐기기에 적합한 음악으로 간주된다. 미국과의 핵 협상 결렬 이후 국제적 고립감을 느끼는 이란의 청년층은 지구적 K-Pop 팬덤 활동에 참여하면서 미국을 거치지 않은 연결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을 경계하는 기성세대의 감시로부터도 다소나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이란에서는 K-Pop 팬덤 활동을 통해 청년층이 권위주의적 체제로부터 상당히 자율적인 연결망을 국내외적으로 동시에 구축할 수 있었던 셈이다.
강해지는 이슬람주의 영향 아래서 이란과 유사한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튀르키예에서는 K-Pop 팬덤이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는 한다. K-Pop은 최소 2018년부터 튀르키예에서 사회적 의제로 논의되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무하림 인제 후보는 튀르키예가 한국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보수 성향 신문 예니 샤파크에서는 한국은 문화 식민지이며 K-Pop은 세계를 미국화하는 첨병일 뿐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실은 칼럼이 게재된 바가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의 K-Pop 비판이 가시화되자, 튀르키예의 K-Pop 팬덤은 트위터에서 해시태그를 통한 집단적인 트윗 운동으로 K-Pop을 비판하는 논평가들을 공격하거나, K-Pop 검열에 반대한다는 항의를 전개하는 등 온라인 공간에서의 문화 투쟁에 나섰다. K-Pop을 둘러싼 튀르키예 보수주의자들의 반감과 K-Pop 문화를 자유롭게 소비기를 원하는 팬덤의 의지는 2021년 8월에 이스탄불에서 가출한 10대 소녀 셋이 “한국에 가고 싶어서 가출했다.”라고 밝히면서 더욱 격렬히 충돌하기도 했다.
태국에서 K-Pop은 2014년 쿠데타 이후 계속해서 집권 중인 쁘라윳 짠오차 정부 및 군부, 사회적 상층에 대한 반감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다. 2020년 태국 시위에서는 K-Pop 팬들이 시위대를 위해 상당한 금액을 모금하기도 했으며, 시위 현장에서 2016년 한국 촛불시위와 연관되는 곡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등의 참여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시위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태국 출신 아이돌에게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22년 1월에 걸그룹 H1-KEY(하이키)가 데뷔했을 때, 태국의 K-Pop 팬들은 하이키의 태국 멤버인 시탈라 웡크라창을 두고 트위터에서 대대적인 집단행동을 벌였다. 그의 아버지 사란유 웡크라창이 반탁신 계열 옐로셔츠의 핵심적 인물이었다는 것이 보이콧의 이유였다. 태국 K-Pop 팬들은 한국의 여론에도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5.18 광주항쟁 등의 역사적 사례로 비유를 들며 태국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문화적 보수주의에 항의하는 수단으로서 K-Pop을 활용하는 이슬람 세계와 일정 정도는 유사하게, 태국에서 K-Pop 팬덤 활동은 태국 사회의 모순과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감과 결합하여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튀르키예, 이란, 태국 등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중국의 사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이며, 그 점에서 K-Pop 수용의 문화적, 지리적 다양성을 진정으로 드러내 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 특히 권위주의 성향의 정부와 불화하는 K-Pop 팬덤과 달리 중국에서 K-Pop을 비롯한 한류 팬덤은 오늘날 중국의 온라인 민족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들이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인 『아이돌이 된 국가: 중국의 인터넷 문화와 팬덤 민족주의』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애국주의적 청년세대를 상징하는 표현인 ‘소분홍’은 온라인 대중문화의 중요한 축인 장르소설 커뮤니티에서 발생했으며, 이들의 행동 양태는 중국의 초기 K-Pop 팬덤 문화에 직접적으로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최근 중국의 급속한 국력 신장을 보며 획득한 자신감과 국가주의적 애착을 온라인 공간의 집단행동을 통해 투사하는데, 그 투사의 영역과 문법은 모두 한국 대중문화와 강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2015년에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계 멤버 쯔위가 TV에서 대만 국기를 방송에서 들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중국의 ‘팬덤 민족주의자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 인터넷 공간에서도 격렬한 항의를 표출했고, 쯔위가 마침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중국 팬덤 민족주의 활동의 하나의 전기가 되었으며, 그 뒤에도 중국과 관련된 각종 국제적 사안에서 앞장서서 여론전을 펼치는 주체가 되었다. 대중문화 소비에 활발한 청년 여성층은 팬덤 민족주의 활동과 한류 콘텐츠 소비를 병행할 때도 많은데, 이로 인하여 한국 콘텐츠가 중국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으며, 중국 문화를 한국의 것으로 왜곡하여 선전한다는 등의 반발을 보일 때가 잦다. 이는 한국 K-Pop 팬덤과 중국 팬덤이 마찰을 빚는 직접적인 경험을 형성했는데, 이 경험들은 한국 청년층 내의 ‘혐중 정서’ 확산에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러 K-Pop들’의 지역적 맥락
온라인에 기반을 둔 K-Pop 문화는 그 이전의 다른 대중문화 패러다임과 비교해서도 수용자들의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이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K-Pop이 디지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문화로서 디지털 네이티브인 청소년, 청년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 소비자들 특유의 서열 지상주의와 경쟁 지향적 성향은 K-Pop을 온라인 세계에 펼쳐진 전장(戰場)으로서 집단행동의 문법을 학습시키는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한편, 대중문화는 그 자체로 수용자들에게 의미의 원천이 되어주고, 정체성을 투사하는 가교가 되어주기에, K-Pop 팬덤 문화는 자연스럽게 팬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폭발적 기세의 집단행동을 전개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K-Pop이 지구적인 규모로 확장되며, 팬들이 K-Pop을 매개로 자신들의 집단행동을 펼치는 양상은 놀라운 지역적 다양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한국에서 K-Pop은 현재 청년층의 가장 첨예한 갈등 전선인 젠더 갈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반면에, 종교에 근간을 둔 문화적 보수주의가 강력한 이슬람 세계에서 K-Pop은 기성세대의 문화적 보수주의와 신세대의 문화적 자율성 추구의 타협으로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타협으로 시작한 K-Pop 문화는 국가의 사회적 장악력을 우회하는 자율적 연결망의 기초가 되기도 했으며, 문화적 보수주의에 따라 사회를 규율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태국에서 K-Pop은 현재 청년층이 큰 반감을 느끼는 군부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각종 사회적 행동을 유도하는 여러 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K-Pop 팬덤이 중국공산당이 내세우는 여러 의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K-Pop 팬덤의 투쟁 문법은 해외의 네티즌들과의 투쟁에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모든 초국적 문화는 그 수용과 발현에 있어서 지역적 다양성을 지닌다. 지구적 문화로서 K-Pop도 지역적 다양성을 보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런 ‘여러 K-Pop’들이 갖는 의의란 무엇일까? 첫째는 K-Pop이 지역적으로 다르게 표출되는 양상을 살펴보면서 해당 지역의 첨예한 문제들, 특히 청년층의 관심사, 정체성, 사회적 상상을 K-Pop을 매개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K-Pop 수용의 지역적 변이를 비교하며 우리는 K-Pop을 수용한 개별 사회들의 특성을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 둘째는 K-Pop의 지역적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상기한 현상들이 모두 청년층의 온라인 집단행동이라는 형태로 표출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는 K-Pop 문화 자체의 특성, 그리고 그 문화를 배태한 한국 문화의 특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화는 어째서 이렇게 강력한 온라인 집단행동과 투쟁의 문법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이런 문법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지구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K-Pop들’이 K-Pop 자체는 물론이고 아시아 청년층, 나아가 한국 사회와 문화의 속성까지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