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튀르키예 지진(2)
튀르키예 2월 6일 대지진과 5월 14일 대선

한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튀르키예 정치판도가 2월 6일 대지진으로 더욱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원래 계획되었던 5월 14일 조기 총선은 지금의 집권당인 친이슬람정당 AKP와 AKP 출신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지진이라는 변수로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야권연합은 사력을 다해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정당 CHP 당수를 단일후보로 내놓았고, 튀르키예의 제3당인 친쿠르드계 정당 HDP 또한 에르도안의 튀르크 민족주의 강화 정책에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지금까지 에르도안의 지지 기반이었던 지진 피해 지역에서 민심이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림 1> 튀르키예 축구 경기 중 관중들이 인형을 던지며 지진 피해 어린이들을 응원하는 이벤트
출처: BNN Bloomberg
https://www.bnnbloomberg.ca/

26일 대지진

2023년 2월 6일 현지 시각 새벽 4시 17분, 튀르키예 가지안텝(Gaziantep) 지역을 시작으로 발생한 강도 7.8 및 7.6의 대지진은 동남부 10개 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피해 면적은 12만㎢에 이르고 피해지역 1,300만 명 주민 중 150만 명이 집을 잃어 이재민이 되었다. 1주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난 2월 13일에는 희생자가 3만 2,000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참사 지역 곳곳의 야외 주차장에 생존자들이 가족들의 시신을 식별할 수 있는 임시 시신안치소가 설치되었다. 튀르키예 내무부 산하 재난관리국(T.C. İçişleri Bakanlığı Afet ve Acil Durum Yönetimi Başkanlığı: AFAD)은 이날부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도 발견 5일 이내에 매장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추정 규모를 튀르키예 국내총생산(GDP)의 10%까지 보았다. 3월 15일에는 희생자가 최소 57,740명에 육박했고 설상가상으로 튀르키예 동남부에 홍수 피해까지 덮쳤다. 전 세계의 이목이 튀르키예를 주목하며,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역사·정치적으로 불편한 그리스와 아르메니아까지 세계 각국의 구호대원 및 구호물품들이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튀르키예로 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진 발생 바로 다음 날인 2월 7일에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구호대(KDRT)를 1진으로 튀르키예에 파견했고 이후에는 의료팀 구호대 비중을 높인 2진과 교대하였다. 10억원 규모의 민·관 합동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현지 상황을 파악한 2진 구호대에 이어 3월 15일에는 3진이 튀르키예를 향했다. 특히 우리가 먼저 튀르키예 복구와 재건을 위해 파병을 제안한 지 한 달 만인 3월 13일에는 우리 군 공병부대를 보내는 방안을 두고 두 나라 정부가 실무 협의 중인 것으로 국내 한 방송사가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튀르키예 내부의 복잡한 정치 사정으로 파병 요청을 주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협의가 빠르게 시작된 것이다.

AKP 20년 집권의 민낯

튀르키예에서 20년간 정권을 잡고 있는 친이슬람정당 정의발전당(Adalet ve Kalkınma Partisi: AKP)과 대통령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2002.07~2014.08; 총리 역임, 2014.08~현재; 대통령 재임)은 이번 대지진으로 집권 기간 내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장기 집권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공고화하려는 에르도안의 마지막 도전이 바로 올해 5월 14일 대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에르도안이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5월, 조기 선거를 통해 승리한다면 이론적으로 2033년까지도 집권할 수 있어 30년간 튀르키예의 일인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제28대 대국민의회(Türkiye Büyük Millet Meclisi) 선거도 치러지는데 총선은 5년마다 600명의 의원들이 아래 <그림 2>와 같이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한 87개 선거구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그림 2> 2023년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선거 지역별 의석수:
주) 노란색은 이스탄불, 빨간색은 앙카라, 파란색은 이즈미르를 표시, 초록색은 지진 피해 지역 10개 주 표시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보수민주주의(Muhafazakar Demokrasi)’라는 정강으로 2002년 정권을 잡은 AKP와 에르도안은 20년의 집권 기간을 통해 본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AKP 정당을 지지했던 정치학자 야부즈(Hakan Yavuz) 박사는 2019년 논문에 “튀르키예는 AKP와 에르도안에게 완전히 속았다.”며 “에르도안이라는 지도자가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대표주자가 되었고 지금 튀르키예는 에르도안 지배하에 있는 한, 민주주의도 이슬람법 샤리아의 세계도 아니고 오히려 독재에 가깝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AKP를 집권 세력으로 만들어 준 주역이자 온건한 이슬람주의자들인 귤렌지(Gülenci: 귤렌 운동의 지지자)들 또한 AKP를 완전히 떠난 상태이다. 미디어, 쿠르드 문제, 헌법 개정, 외교, 젠더 문제 등 세계화 흐름과 시대의 부름에 완전히 역행하여 AKP는 튀르키예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 대세이다. 이미 세 개의 대도시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의 시장이 야당인 공화인민당(Cumhuriyet Halk Partisi: CHP) 출신으로 당선된 것을 보면 민심이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

26일 대지진과 AKP

사실 AKP는 1999년 8월 17일, 이스탄불 동남쪽 90km에 위치한 코자엘리(Kocaeli)에서 발생한 강도 7.5의 대지진이 몰고 온 경제 불황과 정치 불안으로 세속주의에 회의를 느낀 국민들의 지지를 얻게 된 신생 정당이었다. AKP의 ‘보수민주주의’ 슬로건 아래 ‘빵과 민주주의’, ‘깨끗한 정부’라는 구체적인 모토에 민심이 움직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1999년 대지진으로 AKP는 정권을 잡는 기회를 얻었고, 2023년 대지진으로 정권을 잃을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강진 발생 이후 구조 작업 지연 등의 초동 대처 실패(지진 발생 후 35시간이 지나서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가 투입)와 지진세(약 6조 원 규모)의 불분명한 용처, 부실 공사 책임론(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은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불법건축물이 대부분으로, 집권당과 건설업체 사이의 정경유착 문제 부상), 이재민 발생에 따른 후속 조치 미흡 등 정부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진 지역이었던 에르진(Erzin)이 야당 CHP 출신의 외케쉬 엘마소울루(Ökkeş Elmasoğlu) 시장의 철저한 내진 규제 강화법에 따른 불법건축물 단속으로 지진 피해가 전혀 없자 에르도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커졌다. 비난 여론이 우세해짐에 따라 에르도안은 당국의 대응이 신속하지 않았다며 지진 발생 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정부의 잘못을 인정했다. 처음 AKP와 에르도안의 지진에 대한 반응은 “이렇게 큰 천재지변은 인간이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국민의 울분을 샀었다. 이에 로이터 통신은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지진 예방 조처를 하지 않아서 죽은 것이라며 극도로 악화된 민심을 보도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들은 거주 불가 지역이 되어 갈 곳 없는 이재민들만 남은 유령도시가 되었다. 남은 사람들 사이에는 실체 없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다니고 치안은 갈수록 불안해지는데 정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부재한 상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구호기관이 보낸 구호물품과 기금들이 정부의 무능한 대응으로 효율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어, 사각지대에 놓인 이재민들의 생사가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에르도안은 대지진 관련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트위터를 막는 등의 반민주주의적 행동을 과거와 마찬가지로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2월 26일 이스탄불 보다폰 경기장(Vodafone Stadium)에서 베식타쉬(Beşiktaş)와 안탈랴스포르(Antalyaspor) 축구 경기 중에는 전반전 4분 17초(지진이 발생한 시간이 새벽 4시 17분)에 맞춰 관중들이 준비한 인형을 운동장에 던지며 강진으로 피해 입은 어린이들을 응원하는 거대한 이벤트를 진행했다<그림 1 참조>.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 즉, “에르도안 물러나라”는 구호도 함께 들렸다.

514일 선거의 주요 변수, 대지진

조기 대선이 에르도안에게 불리한 입장이라 선거일을 연기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에르도안은 5월 14일에 당당히 선거를 치르겠다고 3월 10일 공식 발표하였다.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36개의 정당은 아래 <그림 3>과 같다.

<그림 3> 2023년 5월 14일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들
주) 노란색 표시는 여당으로 공화연합을, 빨간색 표시는 국민연합을, 보라색 표시는 노동·자유연합을, 초록색 표시는 사회주의연합을, 검은색 표시는 조상연합을 의미한다. 제1당은 공화연합의 친이슬람 정당 AKP, 제2당은 국민연합의 세속주의 정당 CHP, 제3당은 노동·자유연합의 친쿠르드계 정당 인민민주당(Halkların Demokratik Partisi: HDP)이다.
출처: TRT Haber,
https://www.trthaber.com/

에르도안의 장기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야당은 단일후보를 내는 일에 사력을 다했다. 야권연합은 이슬람에 뿌리를 둔 정당부터 좌파, 우파, 세속주의 정당까지 연합한 형태이다. 현재 모두 CHP 출신인 이스탄불과 앙카라 시장을 대선 후보로 지지한 국민연합의 중도우파 민족주의 정당인 좋은 당(İyi Parti)은 CHP 당수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Kemal Kılıçdaroğlu)가 단일후보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야권연합이 에르도안을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분열을 막고 단일후보를 내어야만 했다. 이에 이스탄불 시장과 앙카라 시장이 좋은 당(İyi Parti)의 당수를 직접 만나 설득함으로써 야당은 단일후보를 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결국 2023년 5월 14일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는 AKP의 에르도안과 CHP의 클르츠다르오울루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대선후보 등록 마감이 4월 초에 있어 양자 구도로 갈지는 아직 두고 보아야 한다.

AKP의 장기 독재와 경제 불황, 무엇보다 지진이라는 변수로 정권 변화가 예상되지만, 2월 23일부터 27일까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나온 “국민의 40% 이상이 여전히 에르도안을 지지한다.”는 결과는 5월 14일 선거의 결과를 쉽게 예단할 수 없게 한다.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두터운 지지층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기관이 여론조사를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야권연합이 단일후보를 낸 3월 6일 이전에 진행했던 조사이기 때문에 분석가들도 선거를 치러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지진 피해지역 10개 주 중 아다나와 하타이를 제외한 8개의 모든 주가 2018년 선거 때 에르도안에게 압승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결정에 에르도안의 대통령 선출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번 5월 14일에 치러질 선거에서는 대지진으로 인해 유세 기간에 음악이나 노래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가운데, 2023년 2월 6일 발생한 지진이 AKP와 에르도안의 3연임을 가르는데 어떤 역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지진 이후, 위로가 필요한 튀르키예가 선거를 통해 성공적으로 복구와 재건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18호 (2023년 4월 10일)

Tag: 튀르키예지진,튀르키예선거,AKP,에르도안,CHP,HDP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김대성 (2008). “터키 정의발전당의 창당과 집권에 대한 연구: 2002년 총선을 중심으로.” 『지중해지역연구』, 10(4).
  • 한하은 (2013). “터키에서 정치 이슬람의 부상과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과 박사학위논문.
  • Jalali, Rita (2002). “Civil Society and the State: Turkey after the Earthquake.”Disasters, 26(2).
  • Yavuz, M. Hakan (2009). Secularism and Muslim Democracy in Turke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Yavuz, M. Hakan and Öztürk, Ahmet Erdi (2019). “Turkish secularism and Islam under the reign of Erdoğan.” Southeast European and Black Sea Studies.

저자소개

한하은(elifhan@hanmail.net)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 연구소 초빙연구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공동연구원

주요 논문

“세속주의 국가 튀르키예에서 친이슬람정당 AKP 20년 집권에 따른 정치 이슬람 연구; AKP 정책 변화를 중심으로,” 『Muslim-Christian Encounter』 15(2), 2022.
“터키에서 정치 이슬람과 히잡 착용 관계 연구: 에르도안 대통령 선출 이후, 여성운동가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한국중동학회논총』 41(3), 2021.
“여성문제로 본 터키와 이집트의 정치 이슬람: 베일문제를 중심으로.” 『중동연구』 34(1), 2015.
“터키에서 정치 이슬람의 부상과 여성의 정체성: 앙카라 거주 초등 중등 여교사를 대상으로.” 『지중해지역연구』 15(3), 2013.
“To veil or not to veil: Turkish and Iranian hijab policies and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 24(1) (Ed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