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로서의 K팝이 마주하는 문제들
한 사회의 대중문화는 사회 다수의 정서, 취향, 감수성 등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특정한 인종 및 젠더를 어떤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는 곧 우리 사회의 인종 감수성(racial sensitivity),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론적인 중요성에 더하여,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인종과 젠더 담론이 맞이하는 새로운 국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세계적 위상 때문이다. 특히 K팝은 2010년대 들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팬덤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2022년 한국의 음반 수출액은 3,000억 원에 육박한다. 2010년대 중반의 3세대 K팝이 아시아를 넘어 다양한 문화권에서의 수용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탈영토화’가 특징이라면, 2019년을 전후로 형성된 4세대 K팝은 ‘선국내 후국외’라는 기존의 공식을 깨고 주도권이 해외 시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재영토화’ 시기라고 평가되고 있을 정도다.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난 1월 19일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는 “K팝의 인종과 젠더”라는 제목의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연구자와 대중음악평론가가 각각의 관점을 갖고 모인 이 자리에서, 토론의 공통적 전제는 K팝이 해외와 직접적으로 만남에 따라 이전에는 문제시되지 않거나 간과되었던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K팝은 듣는 음악을 넘어 보는 음악으로서 강한 시각적 특징을 갖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중요하게 인지되지 못하거나 너무나 관습화되어 버린 재현의 양식이 국경을 넘어 유통되면서 타 문화권의 감수성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K팝의 인종과 젠더 문제는 K팝이 국내와 해외에서 수용되는 양상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발표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K팝의 해외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K팝은 “안과 밖의 갈림길”(정민재 평론가), “주류와 마이너리티 사이”(이성민 교수)라는 양가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주류적인 음악으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K팝이 해외에서는 하위문화로서 소수자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문화로 향유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는 사회·정치적 이슈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K팝이 해외에서는 윤리적 태도 및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요구에 부딪히고 있다. K팝 산업이 이러한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현시점에, 라운드테이블에서는 K팝 산업의 인종과 젠더 문제를 다양한 이슈와 시각을 통해 톺아보았다.
K팝의 문화적 전유와 표면적 문화 다양성
K팝 산업의 인종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개념은 문화적 전유(또는 문화적 도용)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전유란 타 문화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핵심 요소를 그 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차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본적으로 지배적 문화에 의해 소수 문화가 도용되는 양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K팝의 경우 대표적으로 BTS, NCT U의 멤버나 박재범 등이 드레드락 스타일을 한 것에 대해 흑인 문화를 도용했다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또한, 블랙 핑크의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 힌두교의 가네샤 신상이 등장한 것에 대해 인도 네티즌들이 항의한 사례 또한 국내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되어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K팝 뮤직비디오가 이국성을 연출하기 위해 타 문화권의 요소들을 장식적으로 활용해온 양상에 대한 비판과 논란, 성찰이 최근 3~4년 사이에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K팝의 문화 전유 양상에 대해 김윤하 평론가는 결국 K팝의 ‘혼종성’과 뗄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K팝 자체가 태생적으로 다양한 문화의 흥미롭고 자극적인 요소들을 수집하여 만들어낸 데서 특수성을 지니기에, 해외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문화적 전유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정민재 평론가 또한 K팝이 타 문화의 요소를 그저 ‘예쁜 오브제’로 사용하는 문제적 양상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는 궁극적으로는 한민족 국가에 대한 강한 믿음 하에 타 문화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부족한 한국 사회의 전반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문화적 전유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김윤하 평론가는 문화적 전유 담론 자체가 서구·백인중심주의가 녹아 있지 않은가의 문제를 거론했다. 사회자로 참석한 이규탁 교수 또한 “왜 어떤 서구권의 팝스타의 스타일은 문화적 전유라고 비난받지 않는데, 어떤 K팝 아이돌의 스타일은 문화적 전유라고 비난받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를 언급했다. 즉 문화적 전유는 늘 경계해야 하는 이슈이지만, 이에 대한 판단이 ‘누구의 시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타 문화에 대한 K팝의 둔감성(insensitivity) 문제를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자면, K팝의 국가성 및 ‘K’의 의미에 대한 논의에 가 닿는다. K팝이 소위 ‘다국적 그룹’이라는 명명하에 외국인 멤버들을 포함하고 앨범 제작에 다양한 해외 작곡가 및 아티스트들을 참여시키는 국제화 전략을 지향한 지는 오래되었다. 여러 국제적 음악 장르의 혼합, 형형색색의 헤어·메이크업, 여러 문화적 요소가 가미된 안무와 컨셉 등으로 구성되는 K팝의 혼종성에 대해 ‘초국적성’을 넘어 ‘무국적성’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양상이 문화적 다양성을 확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존재한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표면적 국제화”(이동준 연구원), “전략적 무국적성”(이성민 교수), “비즈니스 전략으로서의 문화다양성”(강신규 연구위원)이라는 표현들 속에서 다루어졌다. 즉, K팝이 재현하는 국제화와 문화적 다양성이란 표피적 전략이고 사실상 K팝은 ‘K’의 강한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민 교수가 지적한 일례로, 다국적 그룹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K팝 그룹이 아시아인 중심의 시각적 재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아시아·한국 중심성이 드러난다. 여러 발표자를 통해 중복적으로 언급된 2009년 일명 ‘재범사건’(당시 2PM 멤버였던 박재범이 과거 소셜 미디어에 한국 생활을 푸념한 글이 오역되며 그룹 탈퇴에까지 이르게 된 사건), 2015년 ‘쯔위 국기 사건’(트와이스 멤버 쯔위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만의 국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중국에서 문제가 되자 쯔위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는 사과 영상을 공개해야 했던 사건)은 K팝의 ‘초국적’ 유통의 역설을 드러낸다. K팝 산업이 지향하는 초국적성은 상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경제 논리와 민족주의 정서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논의된 내용은 K팝의 글로벌 확장과 함께 화두로 떠오른 것이기는 하지만, 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하기 시작한 문제가 아니라 K팝 산업에 오랜 기간 배태해 있던 문제다. 따라서 최근의 이슈들을 계기로 K팝이 ‘K’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 및 활용해왔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성찰하는 작업이 더 늦춰져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성민 교수와 이동준 연구원이 지적한 바대로, K컬처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매개하는 기능을 함에 따라 여러 정책을 통해 정부의 욕망도 개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K팝의 인종과 국가성을 둘러싼 문제는 지속적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주제다.
젠더적 차원에서 K팝의 진보와 한계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젠더 담론 자체가 그러하듯 K팝의 젠더 문제 또한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를 계기로 변화를 맞이했다. 여성 아이돌의 이미지를 성애화하고 물신화하는 산업적 관습에 대해 팬덤과 대중의 비판적 목소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던져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위 ‘4세대 걸그룹’으로 분류되는 르세라핌, (여자)아이들, 뉴진스 등은 남성의 시선에 맞서는 여성 주체를 노래하거나 기존의 사랑 연가를 탈피한 주제를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어, 산업의 제작 영역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는 남성 아이돌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이 만들어졌다. 해외 팬들은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한 한국 남성 아이돌의 모습에서 백인 남성이 갖고 있는 헤게모니에 대한 대안적 이미지를 발견한다. 외모를 가꾸고, 여성적·퀴어적이라고 여겨져 온 요소들을 차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팬들과의 친밀감을 쌓는 방식으로 재현되는 한국 남성 아이돌의 남성성에 대해 팬들과 외신은 ‘부드러운 남성성(soft masculinity)’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이는 백인 남성이 쥐고 있는 ‘독소적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대항하여 남성성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고 평가되곤 한다.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의 등장을 통해 K팝의 젠더적 진보를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가는 라운드테이블에서의 주요한 논점이었다. 즉, 박희아 평론가의 질문을 인용하자면, “그들은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는가?”의 의문이 제기된다. K팝 산업의 문화적 다양성이 상당 부분 상업적 이익을 위한 전략 차원에서 추구된 것과 마찬가지로 K팝 산업에서 이루어지는 젠더적 변화에 대해서도 생산과 수용, 국내와 해외, 주류와 소수의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가령, 박소정 연구원은 K팝의 부드러운 남성성이란 “인종의 렌즈를 거치지 않은 국내 젠더 담론 안에서는 유의미한 전복성을 만들어내기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부드러운 남성성은 서구의 시선 속에서 평가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평가 속에는 서구의 남성을 기준점에 놓고 그 대안으로서 상상된 남성성, 젠더 권력 바깥에서 여성화된 남성성으로서 아시아의 남성성을 사고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한다. K팝 산업은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적정 수준으로 부합할 만한 ‘컨셉’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수용자의 니즈에 응한다.
한편으로 미묘 평론가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얄팍한 표피성’이 K팝 산업의 변화와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진단했다. 그는 4세대 여성 아이돌로부터 “느리지만 주시할 만한 변화”를 이야기했다.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4세대 여성 아이돌 그룹들은 기존의 여성 아이돌 그룹이 다루어(져) 왔던 방식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인다. 성애화된 이미지를 넘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2010년대 이후 아이돌 산업이 추구해온 ‘세계관’ 구축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4세대 아이돌의 여성주의적 메시지가 여성주의에 대한 성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팔린다면 뭐든 상관없다”라는 상업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동시대 수용자들이 요구하는 젠더 감수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산업의 노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생산과 수용 차원에서 의도와 비의도가 뒤섞여 K팝의 젠더 담론이 형성되는 가운데, ‘K팝 산업의 구성원이 누구인가’, ‘K팝 산업 내의 여성 제작자의 존재가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차우진 평론가는 K팝의 생산 과정이 젠더화되어 있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K팝 산업의 조직 문화가 K팝의 젠더 문제를 고찰하는 데에 핵심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뉴진스라는 대형 신인을 제작한 민희진 대표가 K팝 산업의 여성 리더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 라운드테이블에서도 논의할 만한 이슈로 언급되었다. 여성 제작자가 프로듀싱하는 여성성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는 가운데, 박희아 평론가와 박소정 연구원은 K팝 산업의 논리 자체가 젠더화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여성 제작자가 어느 정도 유의미한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비판적 관찰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보 전진과 일보 후퇴가 반복되는 K팝 산업의 젠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K팝 산업의 구성과 작동 원리, 생산자 영역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및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K팝 산업의 더 나은 문화 감수성을 향하여
K팝 산업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인종과 젠더 문제는 비단 K팝 산업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유통되는 환경 속에서 한국 대중문화 산업 전반이 겪고 있는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다른 사례로 2021년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흑인의 문화를 과장되게 묘사하여, <라켓소년단>은 인도네시아 관중을 몰지각하게 그려냈다는 이유로 해외 팬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특정 인종, 국가, 젠더를 재현하는 관습으로 용인되어 왔던 요소들이 글로벌 수용자와의 조우 속에서 문제시된 사례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잠깐의 소음 또는 해프닝으로 간과하지 않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수용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면밀히 검토할 때 K팝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방희경 연구원은 외국인들이 K팝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를 꺼리는 ‘샤이(shy)’ K팝 팬덤 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K팝은 공장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K팝 아이돌은 주체성을 결여한 로봇 같은 존재다”, “팬들은 K팝 산업에 착취당하고 있다” 등 K팝을 향한 서구 주류 문화의 시선이 K팝 팬들을 옷장 속으로 숨어들게 만드는 현상이다. 따라서 K팝 산업이 지금껏 글로벌 수용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해왔다면, 이제는 담론의 생산을 중시해야 할 때라는 진단이 이루어지고 있다. K팝의 인종과 젠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진보적 행보가 이미지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산업 및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수용자들에게 쉽게 읽혀버리고 말 얄팍한 상업주의적 전략을 넘어서 동시대 세계가 중시하는 문화적 감수성과 윤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